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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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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주지취직인가 본말 사법 중 개정 기타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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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사회교육 > 종교 관계 > 불교 관계
생산년도
: 소화3년 ~ 소화3년(1928년 ~ 1928년)
생산부서
: 학무국 종교과
관리번호
: CJA0004778
문서번호
: 88-48
M/F번호
: 88-937
총쪽수
: 9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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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명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지취직인가와 사법개정, 그리고 장안사의 사격(寺格)이나 천은사의 사법해석에 관한 기록을 함께 편철한 것이다. 우선 주지취직인가 관련 기록은 용주사, 석왕사, 봉선사, 봉은사, 영명사, 패엽사, 위봉사, 화엄사, 보현사, 지림사, 고운사, 은행사 등의 인가신청과 이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인가조치 기록이다. 이 기록들에서는 몇 가지 특징을 추출할 수 있다. 첫째, 대처승들의 주지 진출이 현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조선불교계의 ‘식육대처’ 의 경향에서 야기된 진정서 제출과 이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현장조사 관련 기록 가운데 용주사·봉은사·보현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즉 용주사의 주지인가신청 관련 기록에는 1926년 8월에 학무국 종교과 속(屬) 데구치(出口勇吉)와 촉탁 홍석모(洪錫謨)가 1923년 이후 1926년 7월까지의 회계사무 전반에 걸친 조사를 했으며 그 결과에 대해 학무국장 이윤호(李輪鎬)에게 보고한 복명서가 첨부되어 있다. 예산과 복무 등 일반적인 문제, 수지대장 및 증빙서류가 갖추어지지 않은 점등에 대한 ‘실질적 감사’ 가 이루어지고 있는 데에서 조선불교계에 대한 제도적 통제가 인사권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잘 보여준다. 또한 봉은사 주지 나청호(羅晴湖)의 주지취직인가는 1928년 2월에 이루어졌다. 조선총독부 종교과의 1월 19일∼22일까지의 봉은사 출장복명서에 의하면, 사찰안에 주지 나청호 이하 13세대 약 60명이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찰의 풍기문제를 포함하여 나창호는 서약서와 각서를 제출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대처승려의 가족들을 사찰 외에 적당한 부지를 선정하여 이거시키겠다는 내용이 있다. 보현사의 경우에는 조선총독부 학무국 종교과장이 직접 출장한 결과 박보봉(朴普峰)의 대첩(帶妾) 행위로부터 야기된 사찰 분규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해서 평안북도 영변군의 군속(郡屬) 재야희일(齋野喜一)는 조선 불교계의 주지 대부분이 처대 또는 첩대자이므로 사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보고를 하고 있다.(1928년 2월 6일자) 비구승으로 제한된 주지자격과 선거권 자격을 완화시킨 1926년 5월의 조선총독부의 통첩안 이후 각 사찰의 주지선출과 관련한 분쟁을 막기 위한 관권의 개입이 현저한 사례는 은해사의 경우이다. 즉 은해사 주지인가신청에 첨부되어 있는 은해사회의록의 말미에는 영천군수와 군속, 면장, 영천경찰관 주재소 순사부장과 순사의 서명날인이 함께 되어 있다. 이 기록물철에 들어 있는 각 사찰의 본말사법개정 관련 건들은 용주사, 법흥사, 영명사, 귀주사, 보석사, 고운사, 유점사, 월정사, 봉은사, 마곡사, 석왕사, 동화사, 패엽사, 송광사, 건봉사, 통도사, 해인사, 성불사 등의 것이다. 이 시기 본말사법개정은 본산주지들의 전횡에 따른 사찰운영의 폐해가 배경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28년 1월 각 본사주지들의 경성 회동 때 예산·기채·기타 중요사항은 집회에 붙여 의결에 의해 집행하고, 수입지출은 모두 예산에 편입하여 출납을 엄정하게 하기 위한 사법개정안을 의결시켰다. 이를 토대로 같은 해 1월 20일 학무국장 명의로 각 도지사앞으로 ‘각사본말사법중 개정에 관한 건’ 이라는 통첩을 발송하였다. 이에 따라 각 본산들의 사법개정인가신청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법개정의 또 하나의 배경은 사법에 규정된 주지 임기만료 3개월전 후임의 선출절차를 밟지 않아, 결직(缺職)의 폐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개정안을 마련하여 통첩을 발송하였다. 이를 토대로 각 본산들의 사법개정인가신청이 이루어졌다. 기타의 건으로는 금강산 장안사의 승격을 요구하는 <사격갱정에 관한 청원의 건>(1928년 9월 20일), 화엄사 명칭변경(花嚴寺),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 보존공사인가 관련 기록이 있다. 이 가운데 금강산 장안사의 승격 요구에 대해서는 1924년의 화엄사 승격 사실과 함께 조선불교계의 전통사격을 고려하지 않은 30본사체제, 이후의 31본산체제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관련된 사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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