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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시기 건축도면들 중에는 당시 한국의 석탑 및 전탑들에 대한 실측도와 수선도가 53매 남아 있다. 이 도면들을 통해서 당시 유적들의 현황 모습과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수선 공사의 내용을 알아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소장 내용은 다음의 표와 같다. 현재의 문화재명을 중심으로 당시 불렸던 도면에 기재된 시설명을 수록하였고, 관련 도면의 수량과 현재 문화재로서의 지정 내용을 기재하였다.
번호 문화재명 도면 시설명 매수 지정 지정일 시대 소지지
1 감산사지삼층석탑 경주군감산사고탑 1 문화재자료  제95호 1985.08.05 통일신라 경주
2 경주구황리삼층석탑 경주군황복사고탑 1 국보  제37호 1962.12.20 통일신라 경주
3 경주남산리삼층석탑(쌍탑) 경주군남산사고탑 3 보물 제124호 1963.01.21 통일신라 경주
4 경주마동사지삼층석탑 경주군마동고탑 2 보물 제912호 1987.03.09 통일신라 경주
5 정혜사지십삼층석탑 옥산탑 1 국보  제40호 1962.12.20 신라 경주
6 안동동부동오층전탑 경북안동군읍남오중전탑 4 보물  제56호 1963.01.21 통일신라 안동
7 안동신세동칠층전탑 경북안동군부내면용상리칠중전탑 3 국보  제16호 1962.12.20 통일신라 안동
8 안동조탑동오층전탑 경북안동군일직면오중전탑 2 보물  제57호 1963.01.21 통일신라 안동
9 상주외남면지사리석심회피탑 경상북도상주군외남면지사리탑동석탑 1 - - 신라 상주
10 미륵사지석탑 전북익산군미륵탑 6 국보  제11호 1962.12.20 백제 익산
11 분황사석탑 경상북도경주분황사구층탑 19 국보  제30호 1962.12.20 신라 경주
12 중원탑평리칠층석탑 충북충주군중앙탑 10 국보  제6호 1962.12.20 통일신라 충주
<총계> 53 -

 

 이 중, 도면이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 있는 ‘분황사석탑(경주)’, ‘미륵사지석탑(익산)’과 ‘중원탑평리칠층석탑(충주)’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루었으며, 이 글에서는 나머지 8개의 탑에 대한 도면 18매를 다루었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탑은 각각 경주시 소재의 석탑 4개소(8매), 안동시 소재의 전탑 3개소(9매), 상주시 소재의 폐탑지 1개소(1매)이다.

 [도판1]은 '경주군마동탑준공도'로, 현재 경주마동사지삼층석탑의 당시 보존공사 준공도이다. 도면에는 탑의 단면과 정면이 기재되어 있는데, 단면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잡석과 자갈, 흙을 이용하여 지반을 튼튼하게 다져 탑의 보존을 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판2]는 ‘옥산탑보존공사설계도’로 현재 정혜사지십삼층석탑의 보존공사 설계도이다. 도면에 ‘옥산탑(玉山塔)’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은 이 탑의 위치가 옥산서원(玉山書院)의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탑이 처음 세워진 시기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조선 후기인 영조 41년(1765)에 이르러 처음 해체 수리 공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시기인 1911년에 11~13층이 도괴되었고, 1922년 복원되었는데, 이 도면은 그 당시의 설계도로 보인다.
 당시 실측도는 소장되어 있지 않아, 당시의 현황은 알 수 없지만, ‘조선고적도보’에 11~13층의 부분이 없어진 사진이 실려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도판3]은 ‘경주군남산사고탑보존공사설계도’로 현재의 경주남산리삼층석탑의 도면이다.
 이 탑은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동서로 두 개의 탑이 놓여 있는 쌍탑으로, 동탑은 모전석탑, 서탑은 일반적인 석탑이었다. 이 탑의 보존공사 역시 지반을 잡석과 콘크리트로 강화하고 수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도판4]는 ‘경주군감산사고탑보존공사설계도’로 현재 감산사지삼층석탑으로 불리는 탑의 도면이다. 이 탑은 이후 붕괴되어, 현재 탑신 1층부까지만 재건되어 있는데, 이 도면을 통해서 본래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쌍탑이었음도 확인된다.
 [도판5]는 ‘경북안동군일직면오중전탑보존공사설계도’이다. 통일신라 시기, 안동 지방에는 전탑들이 많이 세워졌는데, 이 도면은 그 중 현재의 안동조탑동오층전탑의 보존공사설계도이다. 이 탑은 화강석으로 1층을 만들고, 1층의 옥개석부터는 벽돌을 이용하여 탑을 구성하였다. 도면에서는 당시 지반의 변형으로 인하여 기단과 1층의 탑신 부분이 부분적으로 깨지고 갈라지는 등의 손상과 변형된 모습이 기재되어 있다.
 [도판6][도판7]은 현재 안동신세동칠층전탑으로 잘 알려져 있는 ‘경북안동군부내면용상리칠중전탑보존공사설계도’이다. 이 탑에 관한 실측도 역시 현재 소장되어 있지 않아, 당시의 파손 정도는 알기 힘들지만, 이 도면을 통해서 당시 조선총독부가 어떻게 수리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이 설계도에 그려져 있는 모습이 현재 우리가 보는 신세동칠층전탑의 모습이기도 하다.
 당시 탑의 보수 당시 기단의 윗부분에 둥글게 시멘트를 바르는 계획 또한 설계도에서 볼 수 있다. 일제시기 탑의 원형을 보수하지 못하고, 손괴된 부분에 시멘트를 사용하여 보수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신세동칠층전탑과 미륵사지석탑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도판8]은 ‘경상북도상주군외남면지사리탑동석탑지도’로 현재 완전히 멸실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탑으로 이 도면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존재했을 당시에는 상병리탑(上丙里塔), 지사리탑(芝沙里塔) 등으로 불렸으며, 당시 남아 있었던 신라시대의 유일한 석심회피탑(石心灰皮塔)으로 돌로 탑의 몸체를 쌓고 그 바깥쪽에 회를 발라 만든 탑이었다.
 이 탑의 존재 당시 모습을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제4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탑의 6층까지 남아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탑을 조사하고 사진을 촬영했던 세끼노 타다시(關野貞)는 그의 책 ‘조선의 건축과 예술(朝鮮の建築と藝術)’에서 이 탑이 신라시대의 석심토피탑(石心土皮塔)의 유일한 예이며, 아마 7중(重)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6중만이 남아있는데, 신라시대의 석심토피탑은 오로지 이 하나만이 남아 있어, 그 구조는 조(粗)하나 매우 진귀한 유구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후, 1917년 5년 도굴꾼 2명이 도청으로부터 관명에 의해 발굴한다고 주민들을 속이고 탑을 부수고 탑 내의 기물을 훔쳐 달아났는데, 당시 이 탑의 피해조사에 나섰던 기수(技手)키바 사이조(木場才藏)의 복명서(復命書)에는 이 탑이 붕괴되기 전에는 장정 키의 2배반으로 6층까지 있었는데, 초층의 4분의 1을 남기고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정규홍, 앞의책, p.158
복명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도판8]은 이 시기에 작성된 도면으로 보이며, 도면에는 2층 이상의 탑신이 모두 사라져있고, 초층의 일부만이 남아 있음이 기재되어 있다.
 이후 1930년경에는 초층탑의 동남부 일부만이 남긴 채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이후 완전히 부서져 국내 유일의 석심회피탑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도판>
도판1. 경주군마동탑준공도, 1910-20년대 추정 상세보기
도판2. 옥산탑보존공사설계도/1, 1922년경 상세보기
도판3. 경주군남산사고탑보존공사설계도/1, 1910-20년대 추정 상세보기
도판4. 경주군감산사고탑보존공사설계도/2, 1910-20년대 추정 상세보기
도판5. 경북안동군일직면오중전탑보존공사설계도/3, 1910-20년대 추정 상세보기
도판6. 경북안동군부내면용상리칠중전탑보존공사설계도/3, 1910-20년대 추정 상세보기
도판7. 경북안동군부내면용상리칠중전탑보존공사설계도/2, 1910-20년대 추정 상세보기
도판8. 경상북도상주군외남면지사리탑동석탑지도, 1917년경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