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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배경 총설 배경 조선총독부 관사-1. 설립위치  
배경 다쓰노 긴코의통감관저계획 배경 조선총독부 관사-2. 공간적 특징  
배경 통감부관사 배경 조선총독부 관사-3. 지방행정기관 관사  
배경 총독관저 배경 조선총독부 관사-4. 창성정아파트  
배경 다쓰노 긴코의통감관저계획
 일제는 1906년 2월,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통감 정치를 시작하였다. 통감 정치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당시의 왜성대(현재의 중구 예장동 2-1 일대)에는 조선정부에서 공여 받은 땅에 2층 목조건물로 지은 일본 공사관이 있었는데, 1906년 통감정치가 시작되면서 이 건물은 통감관저로 전환되어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1910년 이후로도 계속 총독관저로 사용되었는데, 한일병합 이전의 공사관 청사를 그대로 개조한 것이어서 사용에 문제가 많았다는 기사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조선총독부 총독의 주 관저가 경복궁 뒤편의 경무대로 옮겨간 1939년 9월 이후, 이 자리는 1940년 11월 22일 개관한 시정기념관(始政記念館)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이후, 1946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바뀌어 사용되었다.
 반면,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시기 건축도면 중에는 ‘한국통감관저신축상세도’라는 제목의 도면들이 31매 소장되어 있다. 이 도면들은 통감관저를 신축하기 위한 도면들인데, 각종 서적과 사진에서 확인되는 당시의 통감관저(이전의 일본공사관)와는 그 모양이 다르다. 즉 이 도면들은 당시 일본제국이 새로운 통감관저를 신축하려는 계획을 수립했었음을 보여주는데, 이 계획은 실제로 시행되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제시기 건축도면 대부분은 설계자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은 반면, 이 통감관저신축 관련 도면들에는 모두 일괄적으로 설계자의 정보를 담은 도장이 찍혀 있어 매우 흥미롭다. 이 도장은 통감관저를 계획한 사람들의 정보를 담고 있으며, 도장의 내용은 ‘공학박사 다쓰노 긴코(工學博士辰野金吾), 공학사 카사이 만지(工學士葛西萬司), 공학사 가타오카 야스시(工學士片岡安), 계획지인(計劃之印)’이다.
 다쓰노 긴코(辰野金吾, 1854-1919)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유명했던 건축가 중의 한 명으로 동경대학교 조가학과(造家學科)에서 교수와 학장을 역임하였으며,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조선은행 본관(현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경성역사(현 서울역 구 역사) 등의 많은 설계 작품을 남겼다. 카사이 만지(葛西萬司, 1863-1942) 역시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동경대학교 조가학과를 졸업하고, 1903년 다쓰노 긴코와 함께 다쓰노카사이 건축사무소(辰野葛西建築事務所)를 설립하여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가타오카 야스시(片岡安, 1876-1946)도 근대시기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건축가로 1897년 동경대학교 조가학과를 졸업하고, 1905년부터 다쓰노와 함께 다쓰노가타야마 건축사무소(辰野片岡建築事務所)를 개설하여 활발한 건축활동을 하였다.
  [도판1]은 ‘한국통감관저신축도면 제1호 / 계상평면도 / 계하평면도’로 신축관저의 평면도가 기재되어 있다.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장방형의 2층 건물이며, 전체 약 1500㎡에 이르는 매우 큰 건물이다. 전면의 중앙부는 안쪽으로 굽어서 좌우 날개부분이 앞쪽으로 튀어나오게 계획되었으며, 전면의 중앙에는 현관과 포치, 그리고 곡선의 차량출입구(車寄せ)가 계획되었다. 건물은 중앙에 2개의 중정을 두고 사면의 외곽에 개실이 배치되었으며, 두 중정 사이에는 큰 계단실이 계획되었다. 이외에도 수직동선으로 건물의 좌측부에 2개소의 계단실이 더 설치되었다. 건물 전면 중앙의 현관을 들어서면 넓은 홀(廣間)을 만나게 되며, 그 너머로 두 중정에 둘러싸인 큰 계단실이 이어지게 된다.
 건물의 주요벽체는 벽돌을 이용한 조적조로 구성되었으며, 대계단실 등의 일부 기둥에는 H형 철제빔과 철제 브라킷을 사용하는 계획도 확인할 수 있다.([도판2] 참조) 각층의 바닥면에도 H형 철제빔과 목재를 혼합하여 사용하려는 계획을 볼 수 있으며, 박공지붕을 위한 지붕틀은 목재로 구성되었다.([도판3], [도판4], [도판5] 참조)
 입면은 주로 석재를 활용하여 장식되었는데, [도판6]은 ‘한국통감관저신축도면 제7호 / 정면건도 / 북측건도 / 남측건도’로 이 건물의 입면 계획을 볼 수 있는 도면이다. 건물의 전면에는 각 창호 사이에 르네상스풍의 기둥들을 장식하고, 석재를 활용한 가로띠를 의장요소로 적극 활용하였으며, 세부적인 장식들 또한 매우 화려하게 구성되어 있다. 창호의 구성 또한, 1층 부분에는 아치를 사용한 각 창호가 짧은 기둥들로 연결되어 연속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중세 서구의 석조 회랑(arch vault)의 느낌으로 구성된 반면에, 2층 부분에는 창호 사이사이에 높은 기둥 장식을 놓고, 각 창호는 출입구와 같은 형태로 구성하여,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전 양식의 느낌을 주고 있다. 이렇게 매우 화려하게 계획된 전면에 비하여 그 좌우의 입면은 훨씬 간소하게 계획되었으며, 석재와 벽돌을 활용한 가로띠 등의 장식 외에는 전면처럼 화려하게 장식되지는 않았다.
 전면의 입면처럼 내부의 각 개실 또한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도판7] 등의 내부 상세도들에서는 내부 입면 계획을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내부의 출입문, 벽난로, 벽면 등의 모든 구성 요소가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내부 개실의 천정 또한 마찬가지였다.([도판8] 참조)

<참고도판>
도판1. 한국통감관저신축도면 제1호 / 계상평면도 / 계하평면도, 1906-10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2. 한국통감관저신축상세도 제23호 / 대계단, 1906-10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3. (무제, 도면일부유실), 1906-10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4. 한국통감관저신축도면 제4호 / 일계량배치도 / 이계량배치도, 1906-10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5. 한국통감관저신축도면 제5호 / 고옥조배치도/상세도, 1906-10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6. 한국통감관저신축도면 제7호 / 정면건도 / 북측건도 / 남측건도, 1906-10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7. 한국통감관저신축도면 제16호 / 대식당, 1906-10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8. 한국통감관저신축도면 제6호, 1906-10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