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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6ㆍ25 사변일

  • 6ㆍ25 사변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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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사변일 소개

6·25전쟁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는 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51년부터 시작되었다. 1951년 ‘6·25 항공총궐기일(抗共總蹶起日)’, 1952년 ‘6·25 멸공통일의 날’, 1953년 ‘6·25 북진통일의 날’이란 명칭으로 국민행사가 진행되었다. 1954년부터는 별도의 명칭 부여 없이 ‘6·25의 날’로 기념식이 거행되기 시작했다.

1962년부터는 대규모 국민행사 보다는 각 단체나 지역별로 6월 25일 즈음한 시기에 반공웅변대회, 전시회,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가 거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전쟁의 명칭은 초기에는 ‘사변(事變)’, ‘동란(動亂)’, ‘적침(敵侵)’ 등으로 불리다가, 1957년 ‘6·25사변’으로 통일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3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제정시 ‘6·25사변일’이란 명칭으로 기념일에 포함되어 매년 기념식과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여러 행사가 거행되었다. 2013년에는 「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6·25 명칭에 맞추어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6·25전쟁일”로 변경되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기록물은 ’50∼’90년대 기념행사를 담은 것으로, 문서 4건, 영상 8건, 사진 8건 등 총 20건이다.

  • 6·25 항공총궐기일 행사에 관한 건(1951), 6·25사변 제3주년을 계기로 한 국민행사 기준에 관한 건(1953) 등 문서 5건
  • 상기하자 6·25(1953), 6·25 제4주년 기념행사(1954) 등 영상 7건
  • 6·25 항공총궐기일 기념식(1951), 멸공통일의 날 행사장 전경(1952) 등 사진 8건
  • 1951년 최초의 6·25 기념행사를 ‘6·25 항공총궐기일(抗共總蹶起日)’로 명칭을 통일하고 대대적인 국민행사를 개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 휴전협상이 진행중이던 1953년에는 ‘6·25 북진통일의 날’로 정하고 대규모 시위를 계획한 문서를 볼 수 있다.
  • 특히 1961년 행사에서는 국가재건운동과 보조를 맞추어 신생활복을 입은 여배우들의 행진 모습이 담긴 사진이 이채롭다. 1970년에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발전을 거듭하는 대한민국을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영화 상영, 반공웅변대회, 전시회, 음악회 등 다양한 기념행사 모습을 볼 수 있다.
  • ’80년대 이후에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늘어남에 따라 전후세대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기념행사, 참전용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행사 모습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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