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족계획사업
박정희 정부
도입·착수
1961년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 결의로 국가 시책으로 채택
변경
1963년 6월, 보건국 모자보건과에 가족계획계 설치
종료
1995년까지 시행, 1995년 2월 제1차 인구정책발전위원회 개최를 통해 출산억제정책을 대채할 새로운 인구정책 검토착수
소관기관 부서
보건사회부 모자보건과 가족계획계
목적
급격한 인구증가 억제, 경제·사회발전 촉진, 모자보건 향상
1961년 가족계획사업을 국가시책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가족계획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방안을 수립해 나갔다. 가족계획사업을 국가의 정책으로 채택한 것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였다. 1962년부터 1995년까지 진행된 가족계획사업은 연도별로 차이를 보였다. 처음에는 ‘알맞은 수의 자녀 갖기 운동’에서 출발해서 점차 세 자녀, 두 자녀, 한 자녀 갖기 운동으로 변화되었고, 1991~1995년 시기 표어는 ‘적게 낳아 건강하게 키우자’였다. 가족계획사업의 성공을 위해 정부는 피임에 대한 계몽·홍보와 더불어 피임기구를 보급했다. 피임 지식의 전달과 피임약제 및 기구의 공급은 가족계획요원들이 담당했으며, 1968년부터는 행정적 지원 하에 ‘가족계획어머니회’를 조직하여 마을 단위에서 가족계획의 실천을 독려했다. 가족계획사업은 정부가 외국 정부의 지원 하에 유관기관을 설치하여 적극적인 협력하에 사업을 추진했다. 보건사회부 모자보건과 산하에 둔 가족계획 조사 평가반은 스웨덴 정부의 지원으로 국립가족계획연구소로 전환되어 연구 및 전문 교육을 실시하였고, 대한가족계획협회도 사업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