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경제협력(중동 건설붐)
박정희 정부한국의 건설회사들은 1950년대 전후 복구, 1960년대 공업화를 맞이하며 건설 경험을 축적하며 성장했다. 1965년 현대건설이 처음으로 해외 수주를 달성했고, 한국 건설사들이 베트남전쟁 복구 사업에도 참여하면서 해외 건설 경험을 축적했다.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경제호황을 누린 산유국은 막대한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도로, 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 고속도로를 수주한 것을 시작으로 동아건설의 리비아 대수로, 현대건설의 주베일 산업항 등 대형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1985년까지 약 700억 달러를 수주하였으며, 이는 1981~1984년 석유 수입 대금의 36%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그에 따라 1974년부터 한국의 중동 인력 진출이 빠르게 증가했다. 1975년 해외 진출 한국인의 30%가 중동으로 파견되고, 1980년에는 그 비중이 80%까지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1976년 1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중동경제협력위원회’를 구성했고, 그 산하에 경제기획원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중동경제협력실무위원회’를 두었다. 실무위원회는 산하에 ‘중동경제협력 종합전담반’을 두었고, 전담반은 정부 15개 부처에 관련 업무를 보게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는 현지 공관 전담반을 구성하기도 했다. 1978년 노동청은 해외근로국을 설치하여 해외 노동 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이후 국내와 해외 인건비 차이가 줄고, 중동 현지 건설업 상황이 나빠지면서 1982년을 정점으로 중동 건설 인력은 점차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