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국방
베트남전 파병
박정희 정부
도입·착수
1964년 9월 11일 제1차 파병, 의무 및 태권도 교관 파견
변경
1965년 3월 10일 비전투부대 2차 파병, 1965년 10월 청룡·맹호 전투부대 파병, 1966년 8월 백마부대 파병
종료
1973년 3월 철군
소관기관 부서
국방부, 외무부, 재무부, 경제기획원, 주월한국군사령부
목적
한·미동맹 강화, 반공전선 강화, 전투 경험 축적, 경제개발 재원 마련, 해외 건설 진출 기반 형성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가 파병을 요청해 오자 한국 정부는 6·25전쟁에 참전한 우방국에 보답한다는 명분과 베트남 전선이 한국 전선과 직결되어 있다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국회 동의를 얻어 파병을 결정하였다. 1964년 9월 11일 제1이동외과병원 요원 130명과 태권도 교관단 요원 10명 등 140명이 제1차 파병되었으며, 1965년 3월 10일 제2차로 후방 지원과 건설 지원 임무 수행을 위해 2,000명 규모의 비전투부대를 파병하였다. 1965년 5월 17~18일 워싱턴에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투부대 파병 합의 후 수도사단과 제2해병여단 파병이 결정되었다. 1966년 10월 1차 전투부대(맹호·청룡) 파병, 1966년 백마사단 추가 파병으로 주베트남 한국군 병력은 1972년 초까지 47,860명 선을 유지하다가 1973년 3월 23일 남베트남 주둔 모든 부대가 철수를 완료하였다. 주로 중부·남부 베트남에서 군사 및 민사작전을 수행하며 게릴라 소탕, 지역 방어, 의료·교육 지원을 병행했다. 이를 통해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외화를 획득해 경제개발 재원을 마련했으며, 실전 경험을 통해 군 현대화를 촉진하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