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부메뉴 바로가기

기록물 상세정보

제2호 조사서(면의 명칭 및 유래)

제2호 조사서(면의 명칭 및 유래)

철제목: 면폐합 관계서류
* 해당 철의 내용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생산년도:1914년
기록물 유형:일반문서류(문서대장)
생산기관:지방행정
소장위치:대전국가기록정보센터
공개여부: 공개
관리번호:CJA0002552

기록물 번역문


제2호 조사서

면명칭의 유래
<달성군(達城郡)>
성북면(城北面)
동중(東中)·동하(東下)의 2면을 병합해서 성북면이라고 한 것은 옛날 달불성(達弗城, 현재의 대구면)의 북쪽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공산면(公山面)
해서촌(解西村)·해북촌(解北村)의 두면을 병합해서 공산면이라고 칭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 공산성(公山城)의 소재지로서 공산이란 명칭이 사람들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해안면(解顔面)
해서부(解西部)·해동촌(解東村)의 2면을 병합해서 해안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 해안현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수성면(壽城面)
하수서(下守西)·수동(守東)· 수북(守北) 및 수현(守縣)의 4면을 병합해서 수성면이라고 한 것은 옛날 수성현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가창면(嘉昌面)
상수서(上守西)·상수남(上守南)·하수남(下守南)의 3면을 병합해서 가창면이라고 한 것은 당시 가창현의 속지였기 때문이다.
달서면(達西面)
서중(西中)·달서(達西)의 2면을 병합해서 달서면이라고 한 것은 이 면 중에 달서면이 점점 저명해짐으로써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다사면(多斯面)
하동(河東)·하남(河南)의 2면을 병합해서 다사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이 옛날 다사현의 속지였기 때문이다.
하빈면(河濱面)
하서(河西)·하북(河北)의 2면을 병합해서 하빈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 하빈현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성서면(城西面)
성서(城西)·감물천(甘勿川)의 2면을 병합해서 성서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 달불성(현재 대구면)의 서쪽에 위치하고 또 이 2면 중 성서면의 명칭은 점점 저명해짐에 따라서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조암면(祖岩面)
월배(月背)·조암(祖岩)은 2면을 병합해서 조암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조암면은 점점 저명해짐으로써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화원면(花園面)
화현내(花縣內)·인흥(仁興)의 2면을 병합해서 화원면으로 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의 화원현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옥포면(玉浦面)
옥포(玉浦)·법타(法他)·성평곡(省平谷)의 3면을 병합해서 화원면이라고 한 것은 옥포면은 수륙의 편의가 풍부하고, 물자의 집산지로서 이 3면 중 조금 저명하기 때문이다.

현풍면(玄風面)
현내(縣內) 및 마산(馬山)의 2면을 병합해서 현풍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현풍군의 소재지로써 폐군(廢郡) 후 현풍이란 명칭을 존치함에 따랐다.

유가면(瑜伽面)
유가(瑜伽)·우만(雩萬)·말역(末亦)의 3면을 병합해서 유가면이라 한 것은 이 3면 중 유가면은 유가사(瑜伽寺)의 소재지로서 조금 저명하기 때문이다.

구지면(求智面)
구지(求智)·오산(烏山)의 2면을 병합해서 구지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구지면은 옛날의 구지부곡의 소재지로서 저명하기 때문이다.

논공면(論工面)
논공(論工)·호장(芦長)의 2면을 병합해서 논공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논공면이 조금 저명하기 때문이다.

<고령군(高靈郡)>
고령면(高靈面)
읍내(邑內)·내관(內館)의 2면을 병합해서 고령면이라고 한 것은 고령군의 소재면이므로 그것을 면명으로 한다고 한 것이다.

덕곡면(德谷面)
덕곡(德谷)·인곡(仁谷)의 2면을 병합해서 덕곡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덕곡면이 조금 저명하기 때문이다.

운수면(雲水面)
운수(雲水)·장음(長音)의 2면을 병합해서 운수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운수면은 운라산(雲羅山) 및 흑수(黑水)의 소재지로서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성산면(星山面)
가현(加縣)·소야(所也)의 2면을 병합해서 성산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의 성산군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개진면(開津面)
개진(開津)·양천(良泉)의 2면을 병합해서 개진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개진면은 수륙의 편의가 크고, 물자의 집산지로서 저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다산면(茶山面)
벌지(伐知)·다산(茶山)의 2면을 병합해서 다산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다산면은 옛날 다기산단(茶基上團)의 소재지로서 저명하기 때문이다.

우곡면(牛谷面)
왕곡(旺谷)·우하(牛下)의 2면을 병합해서 우곡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원래 우곡면을 중심으로 해서 그 명칭을 습용하여 부활한 것이다.

가야면(伽倻面) : 임천(林泉)·쌍동(雙洞)의 1면을 병합해서 가야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 대가야단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청도군(淸道郡)>
화양면(華陽面)
상읍(上邑)·차읍(次邑)의 2면을 병합해서 화양면이라고 한 것은 본 면은 원래 화양군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아마 본 면은 그것을 청도면(淸道面)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작년 외서면(外西面)을 밀양군(密陽郡)에 편입하고 현재 그것을 청도면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가까운 군에 동일한 면명을 사용하는 것을 피하여 이상과 같이 정한 것이다.

풍각면(豊角面)
현내(縣內)·이동(二同)의 2면을 병합해서 풍각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 풍각현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각남면(角南面)
초동(初同) 및 내서(內西)의 2면을 병합해서 각남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풍각면 시대에 각남면이었기 때문이다.

이서면(伊西面)
상북(上北)·차북(次北)의 2면을 병합해서 이서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 이서국(伊西國)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종도면(終道面)
일위(一位)·동상(東上)의 2면을 병합해서 종도면이라고 한 것은 옛날 내종도면(內終道面)·외종도면(外終道面)이라고 했던 연혁에 따른다.

매전면(梅田面)
상남(上南)·중남(中南)의 2면을 병합해서 매전면이라고 한 것은 옛날 매전부곡의 옛터였음에 따른다.

운문면(雲門面)
고니·이위(二位)의 2면을 병합해서 운문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운문산(雲門山), 운문천(雲門川) 및 운문사(雲門寺) 등이 있어서 운문이라는 명칭이 사람들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그것을 면명으로 한 것이다.

금천면(錦川面)
중동면(中東面)을 금천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저명한 금천(錦川)이 본 면의 중앙을 관통해 흐르기 때문이다.

대성면(大城面)
하남(下南)·용산(龍山)의 2면을 병합해서 대성면이라고 개칭한 것은 본 면은 옛날의 대성군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경산군(慶山郡)>
경산면(慶山面)
읍내(邑內)를 경산면이라고 개칭한 것은 하양군(河陽郡) 및 자인군(慈仁郡)을 병합한 경우에 있어서 역시 읍면(邑面)이라고 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음에 따라서 신군의 소재면이기 때문에 바꿔서 경산면이라고 개칭한다고 한 것이다.

고산면(孤山面)
서면(西面)을 고산면으로 개칭한 것은 방위에 따른 면명칭이 각 군에 존재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음에 따라 이 면내에 저명한 고산(孤山) 및 고산서원(孤山書院)의 명칭으로써 고유의 명칭으로 한 것이다.

남천면(南川面)
남면(南面)을 남천면으로 개칭한 것은 남면이라는 면명칭이 각 군에 존재해서 적당하지 않으므로 이 면내에 저명한 남천(南川)을 면명으로 한 것이다.

압량면(押梁面)
동면(東面)·서면(西面)(원래 자인(慈仁))을 병합해서 압량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 압량국(押梁國)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자인면(慈仁面)
읍내(邑內)·상북(上北)의 2면을 병합해서 자인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 자인군의 소재지이므로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 습용하는데 따른 것이다.

남산면(南山面)
상남(上南)·하남(下南)의 2면을 병합해서 남산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저명한 남산 및 남산화라는 명칭을 면명으로 한다는데 따른 것이다.

용성면(龍城面)
상동(上東)·하동(下東)의 2면을 병합해서 용성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 저명한 용산성(龍山城)이라는 고적이 있음에 의한 것이다.

하양면(河陽面)
읍내(邑內)·북면(北面) 및 마양(磨陽)의 3면을 병합해서 하양면이라 한 것은 현재의 하양군 소재지임으로써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 존치하고자 하는데 따른 것이다.

미촌면(尾村面)
미촌(尾村)·남면(南面)의 2면을 병합해서 미촌면이라 한 것은 이 2면 중 미촌면이 조금 저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습용하게 한 것이다.

진량면(珍良面)
중림(中林)·악산(樂山, 이상은 원래 하양(河陽))·중북(中北)·하북면(下北面, 이상은 원래 자인)의 4면을 병합해서 진량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의 진량현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영천군(永川郡)>
신녕면(新寧面)
현내면(縣內面)·치산면(雉山面)을 병합해서 신녕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은 현재의 신녕군 소재면에 관계되어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서 습용한 것이다.

화산면(花山面)
아촌(牙村)·대량(代良)·원림(遠林)의 3면을 병합해서 화산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는 저명한 화산(花山)이라는 산악이 있으므로 그것을 면명으로 한 것이다.

화곡면(花谷面)
명산면(鳴山面)·고현면(古縣面)·지곡면(知谷面)을 병합해서 화곡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는 저명한 화곡지(花谷池)가 있어서 그 명칭이 사람들 입으로 전해져서 그것을 면명으로 하는데 따른 것이다.

신촌면(新村面)
자천면(慈川面)·신촌면(新村面)을 병합해서 신촌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신촌면은 옛날 신촌부곡의 옛터로서 조금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영천면(永川面)
내동(內東)·내서(內西)·완산(完山)·우곡(又谷)의 4면을 병합해서 영천군이라고 한 것은 신녕군을 병합한 후 영천군 소재면으로 할만하기 때문에 그 군명을 면명으로 습용한 것이다.

임비면(臨鼻面)
아천면(阿川面)·황이면(還移面) 및 북안면(北安面)을 병합해서 임비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옛 임비국(臨鼻國)의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청경면(淸鏡面)
추곡면(追谷面)·고촌면(古村面) 및 북안면(北安面)의 일부를 병합해서 청경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저명한 청경역(淸鏡驛)의 명칭을 면명으로 하는데 따른 것이다.

청통면(淸通面)
북습(北習)·산저(山底)의 2면을 병합해서 청통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저명한 청통역(淸通驛)의 명칭을 면명으로 하는데 따른 것이다.

금호면(琴湖面)
고견(古見)·거여(巨余)·창수(蒼水) 및 칠백(七百)의 4면을 병합해서 금호면이라 한 것은 이 지방은 금호강(琴湖江)에 연하고, 또 금호학교조합(琴湖學校組合)의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대창면(大昌面)
북안면(北安面)의 비지(飛地), 대창동(大昌洞)을 원사면(元沙面)에 편입해서 대창면이라고 개칭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의 대창부곡의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북안면(北安面)
원당(元堂)·북소(北召)·원곡(原谷) 및 북안(北安, 다른 면에 편입한 곳을 제외)의 4면을 병합해서 북안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의 북안부곡의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경주군(慶州郡)>
양북면(陽北面)
장기군 내남면(內南面)을 경주군에 편입할 때는 재래의 내남면과 동일해서 행정상 불편한데 대해 양남면(陽南面, 원래 장기)의 북쪽에 위치하는 관계로 양화면(陽北面)이라고 개칭한 것이다.

<영일군(迎日郡)>
장기면
원래 장기군 현내면(縣內面)을 장기면이라고 개칭한 것은 현재의 장기군 소재지임에 따라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 습용하는데 따른 것이다.

봉산면(峯山面)
원래 장기군 서면(西面)을 봉산면으로 개칭한 것은 이 땅은 옛날 봉산현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창주면(滄洲面)
내지(內地)·외북(外北)의 2면을 병합해서 창주면이라고 한 것은 이 땅에서 저명한 창주천(滄州川)과 창주시(滄州市)라는 명칭이 저명하다고 하는데 따른 것이다.

오천면(烏川面)
일월(日月)·고현(古縣)의 2면을 병합해서 오천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의 오천현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대송면(大松面)
남면(南面)·동면(東面)을 병합해서 대송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조금 저명한 대송역(大松驛)의 명칭을 면명으로 하는데 따른 것이다.

연일면(延日面)
읍내면(邑內面)·서면(西面)을 병합해서 연일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 연일군의 소재면이므로 폐군 후 그것을 습용하는데 따른 것이다.

포항면(浦項面)
북면(北面)·동상면(東上面, 원래 흥해(興海))의 2면을 병합해서 포항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옛날 포항진(浦項鎭) 및 포항창(浦項倉)의 소재지로서 포항의 각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짐으로써 그것을 면명으로 한 것이다.

흥해면(興海面)
동하(東下)·동부(東部)·서부(西部)의 3면을 병합해서 흥해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흥해군(興海郡) 소재지이므로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 습용한 것이다.

달전면(達田面)
서면(西面)·남면(南面)을 병합해서 달전면(達田面)이라고 한 것은 홍유(鴻儒) 회재(晦齋)선생의 분묘지(墳墓地)를 달전이라고 하고, 회재의 이름과 함께 달전도 또한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곡강면(曲江面)
북상(北上)·북하(北下)의 2면을 병합해서 곡강면이라고 한 것은 2면의 경계를 관통해 흐르는 하천을 곡강(曲江)이라고 하고, 옛날 군명이었던 연혁이 있기 때문이다.

청하면(淸河面)
동면(東面)·현내면(縣內面) 및 서면(西面)을 병합해서 청하면(淸河面)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청하군(淸河郡) 소재지이므로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 습용했다고 한다.

송라면(松羅面)
내북면(內北面) 및 북면(北面)을 병합해서 송라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송라역(松羅驛) 및 고(古) 송라원(松羅院)이라는 명칭이 저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면명으로 한 것이다.

<영덕군(盈德郡)>
영덕면(盈德面)
읍내(邑內)·중남(中南)의 2면을 병합해서 영덕면이라고 한 것은 영덕군 병합 후에 읍내면이라고 했지만 적당하지 않음에 따라서 군의 소재면인 관계상 군명으로써 면명으로 했다는 것이다.
오보면(烏保面)
동면(東面)을 오보면으로 개칭한 것은 동면 남북을 면명으로 한 것인데, 군명으로 하기에 적당하지 않음에 따라 이 면은 옛날의 오보부곡(烏保部曲)의 소재지였던 관계상 이상과 같이 개칭한다.

지품면(知品面)
북면(北面)을 지품면으로 개칭한 것은 앞과 같은 이유에 따르고, 이 면은 옛날의 지품부곡(知品部曲)의 소재지였던 관계상 이상과 같이 개칭한다.

달산면(達山面)
서면(西面)을 달산면이라고 개칭한 것은 앞과 같은 이유에 따르고, 이 면 내에는 저명한 달산성(達山城)의 고적(古蹟)이 있는 관계상 이상과 같이 개칭한다.

남정면(南亭面)
외남면(外南面)을 남정면으로 개칭한 것은 이 면내에는 저명한 남정역(南亭驛)이 있는 관계상 이상과 같이 개칭한 것이다.

축산면(丑山面)
무곡면(畝谷面)의 일부를 남면(南面)에 편입하고 축산면이라고 개칭한 것은 앞과 같은 이유에 따르고, 이 면내의 축산항은 옛날 관방 축산진(丑山鎭)의 소재지로서 축산이라는 명칭이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한다고 한 것이다.

영해면(寧海面)
읍내면(邑內面)·무곡면(축산면에 편입한 것을 제외) 및 북초면(北初面)의 일부를 병합해서 영해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영해군의 소재면임에 따라 폐합 후 그것을 면명으로 습용한 것이다.

병곡면(柄谷面)
북초(영해면에 편입한 것을 제외)·초이(初二)의 1면을 병합하고 병곡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저명한 병곡역(柄谷驛)의 명칭을 면명으로 하는 것에 따랐다.

창수면(蒼水面)
서면(西面)·오서면(烏西面)을 병합해서 창수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창수원(蒼水院)이 조금 저명함으로써 그것을 면명으로 하는 것에 따랐다.

<영양군(英陽郡)>
영양면(英陽面)
읍내면(邑內面)·동면(東面) 및 남면(南面)의 일부를 병합해서 영양면이라고 한 것은 영양군의 소재면임에 따라 군명으로써 면의 명칭으로 하게 된 것이다.

입암면(立巖面)
남면(南面, 일부를 제외)·북면(北面, 원래 진보(眞寶))을 병합해서 입암면이라고 한 것은 동래의 명칭이 모두 적당하지 않고 2면 내를 관통해 흐르는 하천 연안이 유명한 입암석문(立巖石門)의 명승지임으로써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청기면(靑杞面)
청초(靑初)·청이(靑二)의 2면을 병합해서 청기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의 청기부곡 및 청기창(靑杞倉)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일월면(日月面)
북초면(北初面)·북이면(北二面)을 병합해서 일월면이라고 한 것은 저명한 일월산(日月山)이 면내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석보면(石保面)
석보면·동면(東面, 원래 진보)을 병합해서 석보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의 석보부곡이었기 때문이다.

<청송군(靑松郡)>
청송면(靑松面)
부내면(府內面)을 청송면으로 개칭한 것은 청송군의 소재지인 관계상 적당하다고 인정됨에 따랐다.

안덕면(安德面)
현내면(縣內面)·현북면(縣北面)을 병합해서 안덕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의 안덕현(安德縣)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현서면(縣西面)
현서면·현남면(縣南面)을 병합해서 현서면이라고 한 것은 현동면(縣東面)을 독립존치시킨 관계상 현서면이라는 명칭을 습용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됨에 따랐다.

읍천면(邑川面)
부서면(府西面)·남면(南面, 원래 진보)을 병합해서 읍천면이라고 한 것은 서면내를 거쳐 관통하는 읍천(邑川)의 명칭으로써 면명으로 하는데 따랐다.

진보면(眞寶面)
서면·상리면(上里面)·하리면(下里面)을 병합해서 진보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 진보군의 소재면인 관계상 폐합 후 그것을 면명으로 해서 존치한데 따른다.

안동군(安東郡)

와룡면(臥龍面)
동선면(東先面)·북선면(北先面)을 병합해서 와룡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는 저명한 와룡산이 있음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삼촌면(蔘村面)
동후면(東後面)·임북면(臨北面)을 병합해서 삼촌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 삼촌부곡이 있었던 곳임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임하면(臨河面)
임현내면(臨縣內面)·인서면(臨西面)울 병합해서 임하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 임하면의 영역이었음에 따랐다.

길안면(吉安面)
임남면(臨南面)·길안면을 병합해서 길안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길안면은 옛날 길안현의 소재지로서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습용하였다.

풍산면(豊山面)
서선면(西先面)·풍현내면(豊縣內面)을 병합해서 풍산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 풍산현의 영역임에 따랐다.

예안면(禮安面)
읍내면(邑內面)·동상면(東上面)·동하면(東下面)을 병합해서 예안면이라고 한 것은 이 면은 현재의 예안군 소재면인 관계상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 습용한 것이다.

녹전면(祿轉面)
북면(北面)·서면(西面)을 병합해서 옥전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는 저명한 녹전산이 있음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도산면(陶山面)
의동면(宜東面)·의서면(宜西面)을 병합해서 도산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 내에는 유명한 도산서원(陶山書院)이 있음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의성군(義城郡)>
의성면(義城面)
남부(南部)·북부(北部)의 2면을 병합해서 의성면이라고 한 것은 이 면은 의성군의 소재지였기 때문에 그것을 면명으로 하려 한데 따랐다.

금곡면(金谷面)
내곡면(內谷面)·외곡면(外谷面)을 병합해서 금곡면(金谷面)이라고 한 것은 원래 금곡면을 분할한 것이었음에 따랐다.

단촌면(丹村面)
단촌면·구산면(龜山面)을 병합해서 단촌면이라고 한 것은 이 1면 중 단촌면은 조금 저명함으로써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산운면(山雲面)
상천면(上川面)·산운면을 병합해서 산운면이라고 한 것은 이 1면 중 상운면은 조금 저명함에 따라서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소문면(召文面)
소문면·억곡면(億谷面)을 병합해서 소문면이라고 한 것은 옛날 소문국(召文國)의 소재지로서 소문면이 저명함에 따랐다.

봉양면(鳳陽面)
봉양면·금뢰면(金磊面)을 병합해서 풍양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풍양면은 풍양천에 의해서 조금 그 이름이 저명함에 따랐다.

안평면(安平面)
석전(石田)·안평(安平)·외북(外北, 원래 비안(比安))의 3면을 병합해서 안평면이라고 한 것은 이 3면 중 안평면은 안병창(安平倉)의 소재지로서 저명하기 때문이다.

비안면(比安面)
신동(身東)·내북(內北)·군내(郡內)의 3면을 병합해서 비안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 비안군의 소재면임에 따라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서 존치한다는데 따랐다.

구천면(龜川面)
내서(內西)·외서(外西)·단동(丹東)의 3면을 병합해서 구천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구천면이 저명함으로써 그것을 면명으로 하려는데 따랐다.

단밀면(丹密面)
단서면(丹西面)·단남면(丹南面) 및 단북면(丹北面)을 병합해서 단밀면이라고 한 것은 이 땅은 원래 단밀현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안계면(安溪面)
정동(定東)·정서(定西)의 2면을 병합해서 안계면이라고 한 것은 정서면 안계역(安溪驛)은 원래 안정현(安貞縣)의 소재지인데, 이 지방의 경제 중심인 안계시장 소재지로서 저명함으로써 그것을 면명으로 하려 한 것이다.

신평면(新平面)
정북(定北)·우곡(羽谷)·신하(申下, 원래 용궁(龍宮))의 3면을 병합해서 신평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원래 신평부곡이 있던 곳임에 따랐다.

다인면(多仁面)
현내(縣內)·현동(縣東)·현남(縣南)의 3면을 병합해서 다인면이라고 한 것은 이 구역이 모두 원래 다인현의 영역임에 따랐다.

<군위군(軍威郡)>
군위면(軍威面)
서리(西里)·현내(縣內)·남면(南面)의 3면을 병합해서 군위면이라고 한 것은 군위군 소재면이 틀림없는 관계상 군위면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하다는데 따랐다.

소보면(召保面)
화곡(花谷)·소본(召本)·석본(石本)의 3면을 병합해서 소보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원래 소보부곡의 소재지였음에 따랐다.

효령면(孝令面)
중리면(中里面)·효령면을 병합해서 효령면이라고 한 것은 이 3면 중 효령면이 원래 효령현의 옛 터로 저명했기 때문이다.

악계면(岳溪面)
악서면(岳西面)·악남면(岳南面)·현내면(縣內面)을 병합해서 악계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모두 원래 악계현의 영역이었음에 따랐다.

반보면(反保面)
내화면(內化面)·반보면(反保面)·우산면(牛山面)을 병합해서 반보면이라고 한 것은 이 3면 중 반보면은 조금 저명하므로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의흥면(義興面)
읍립면(邑立面)·중리면(中里面)·하리면(下里面)을 병합해서 의흥면이라고 한 것은 의흥군의 소재면임에 따라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 습용하려는데 따랐다.

산성면(山城面)
악동면(岳東面)·신남면(身南面)을 병합해서 산성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는 유명한 산성이 있어서 그 명칭이 사람들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그것을 면명으로 하려한데 따랐다.

고로면(古老面)
소청면(小靑面)·소야면(巢野面)을 병합해서 고로면이라고 한 것은 이 땅이 원래 고로부곡의 소재지였음에 따랐다.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읍내면(邑內面)·북면(北面)을 병합해서 인동명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인동군 소재지인 관계상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서 습용한 것이다.

석제면
장곡면(長谷面)·우량면(又良面) 및 명적면(名赤面)을 병합해서 석제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저명한 석제원이 있는 관계상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약목면(若木面)
약목면·기산면(岐山面)을 병합해서 약목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약목면이 옛날의 약목현 및 현재 약목역의 소재지로서 저명하기 때문이다.

왜관면(倭館面)
호곡면(芦谷面)·파미면(巴彌面)을 병합해서 석전면(石田面)이라고 한 것은 석전이라는 명칭은 이 지방(倭館平原)의 통칭인 관계상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가산면(架山面)
동북면(東北面)·동면(東面) 및 석적면(石赤面)의 일부를 병합해서 가산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저명한 가산성(架山城)의 옛 터가 있는 관계상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칠곡면(漆谷面)
팔거면·추천면(追川面)·문주면(文朱面)을 병합해서 칠곡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 군의 소재면인 관계상 폐합 후 그것을 면명으로 습용하려는데 따랐다.

동명면(東明面)
서북면(西北面)·하북면(下北面)을 병합해서 동명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 유명한 동명원이 있는 관계상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지천면(枝川面)
이언면(伊彦面)·상지면(上枝面)·도촌면(道村面)을 병합해서 지천면이라고 한 것은 지천이라는 하천이 흘러 이 지역의 중앙을 관통함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성주군(星州郡)>
성주면(星州面)
용산(龍山)·남산(南山)·본아(本牙)·북산(北山)의 4면을 병합해서 성주면이라고 한 것은 이 본은 성주군의 소재면인 관계상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선남면(船南面)
오통(吾通)·산남(山南)·선남(船南)의 3면을 병합해서 선남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 고 선남부곡의 옛터였기 때문이다.

화곡면(禾谷面)
화곡(禾谷)·대동(大洞)의 2면을 병합해서 화곡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화곡면의 이름이 조금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습용하였다.

두릉면(杜陵面)
두릉·조곡(組谷)·양곡(羊谷)의 3면을 병합해서 두릉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 자명한 두릉수가 있는데 따랐다.

지사면(志士面)
지사·법산(法山)의 2면을 병합해서 지사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지사면이 고래로 유명한 지사가 많이 거주한 관계상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청파면(靑坡面)
청파·대리(大里)의 2면을 병합해서 청파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창파부곡의 옛터였기 때문이다.

대가면(大家面)
사천(沙川)·금파(今巴)·대가(大家)의 3면을 병합해서 대가면이라고 한 것은 이 3면 중 대가면이 고려 토벌의 대관(大官) 거주지로서 저명했기 때문이다.

벽진면(碧珍面)
운곡면(雲谷面)·명암면(明岩面)을 병합해서 벽진면이라 한 것은 이 땅이 원래 벽진군 소재지였기 때문이다.

양전면(羊田面)
양전면·유곡면(酉谷面)을 병합해서 양전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양전면이 조금 저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습용하려 한 것이다.

월항면(月恒面)
망성(望星)·당소(唐沼)·유동(柳洞)의 3면을 병합해서 월항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 저명한 월항원이 있는 관계상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김천군(金泉郡)
지례면(知禮面)
하현(下縣)·상현(上現)·외증산(外曾山)의 3면을 병합해서 지례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 지례군의 소재면인 관계상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서 습용한 것이다.

대덕면(大德面)
외남(外南)·상남(上南)·하남(下南)의 3면을 병합해서 대덕면이라고 한 것은 이 면내에는 저명한 대덕산이 있음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석현면(石峴面)
상북면(上北面)·하북면(下北面)을 병합해서 석현면이라고 한 것은 이 면내에는 저명한 석현산이 있음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증산면(甑山面)
내증산면(內曾山面)을 증산면으로 개칭한 것은 원래 증산면을 내외의 2면으로 나누고 ‘증(曾)’이라는 글자를 사용함에 이르렀는데, 지금 면은 외증산면을 지례면에 편입함에 따라 내외의 구별을 세울 필요가 없어 원래의 명칭을 부활한 것이다.

부항면(釜項面)
상서면(上西面)·하서면(下西面)을 병합해서 부항면이라고 한 것은 이 면내의 부항산이 조금 저명함으로써 그것을 면명으로하게 된 것이다.

감천면(甘川面)
남천면(南川面)·고하(古賀)·가대면(加大面)·신곡면(薪谷面, 원래 성주군)을 병합해서 감천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의 중앙을 관통해 흐르는 저명한 감천(甘川)이 있는데 따랐다.

과곡면(果谷面)
과내면(果內面)·과외면(果外面) 및 조마남면(助馬南面)을 병합해서 과곡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원래 과곡원이 있었던 곳임에 따랐다.

금릉면(金陵面)
군내면(郡內面)·미곡면(米谷面)을 병합해서 금릉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이 옛날의 금릉군 소재지였음에 따랐다.

봉산면(鳳山面)
파미면(巴彌面)·황남면(黃南面)을 병합해서 봉산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는 저명한 봉산이 있으므로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위량면(位良面)
구소요면(求所要面)·위량면(位良面)을 병합해서 위량면이라고 한 것은 이 3면 중 위량면의 이름이 조금 저명함으로써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아천면(牙川面)
천상면(川上面)·천하면(川下面)을 병합해서 아천면이라고 한 것은 옛날 아천군의 옛터가 있고, 아천이라는 명칭은 이 지방에서 저명함에 따랐다.

개녕면(開寧面)
부곡면(富谷面)·서면(西面)을 병합해서 개녕면이라고 한 것은 이 면은 현재의 개녕군 소재지인 관계상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서 습용함에 따랐다.

농소면(農所面)
○소면·연명면(延命面)을 병합해서 농소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농소면이 조금 저명하므로 그것을 습용했다.
아포면(牙浦面)
아포면·동면(東面)을 병합해서 아포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아포면은 이름이 조금 저명하므로 그것을 습용했다.

곡송면(谷松面)
곡송면·북면(北面)을 병합해서 곡송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곡송면의 이름이 조금 저명하므로 그것을 습용했다.

<선산군(善山郡)>
선산면(善山面)
서내면(西內面)·동내면(東內面)·무래면(舞來面) 및 독동면(禿同面)을 병합해서 선산면이라고 한 것은 선산군 소재면인 관계상 그것을 면명으로 한다는데 따랐다.

옥성군(玉城郡)
신당면(新堂面)·주아면(注兒面)을 병합해서 옥성면이라고 한 것은 이 면내에 저명한 옥성산(玉城山)의 옛터가 있음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도개면(桃開面)
신곡면(新谷面)·도개면을 병합해서 도개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옛날 도개부곡의 옛터 및 도개방(桃開坊)의 소재지로서 도개라는 이름이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변명으로 한 것이다.

해평면(海平面)
해평면·산양면(産陽面)을 병합해서 해평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해평면이 옛날 해평면 소재지로서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습용했다.

산동면(山東面)
몽대면(夢大面)·산동면을 병합해서 산동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산동면의 명칭이 조금 저명하므로 그것을 습용했다는 것이다.

구미면(龜尾面)
상고면(上古面)·하고면(下古面)을 병합해서 구미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통칭해서 구미(龜尾)라고 하고, 그 이름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고아면(高牙面)
망장면(望長面)·평성면(坪城面)을 병합해서 고아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고아부곡의 옛 터로서 고아라는 명칭이 저명함에 따랐다.

<상주군(尙州郡)>
상주면(尙州面)
내동면(內東面)·내북면(內北面)·내남면(內南面) 및 내서면(內西面)의 일부를 병합해서 상주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 및 장래의 상주군 소재면인 관계상 적당하므로 따랐다.

사벌면(沙伐面)
중북(中北)·외북(外北)·대평(大坪)의 3면을 병합해서 사벌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은 원래 사벌국(沙伐國)의 소재지로서 사벌왕릉이 있는 관계상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낙동면(洛東面)
장천면(長川面)·외동면(外東面)을 병합해서 낙동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낙동강에 연해서 외낙동(外洛東)이라고 하는 지명이 있어서 이 부근의 통칭인 관계가 있음에 따랐다.

청리면(靑里面)
청동면(靑東面)·청남면(靑南面)을 병합해서 청리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 청리현(靑里縣)의 영역이었던 연혁이 있음에 따랐다.

공성면(功城面)
공동면(功東面)·공서면(功西面)을 병합해서 공성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이 원래 공성현의 영역이었던 연혁이 있는데 따랐다.

공검면(恭儉面)
수상면(水上面)·남면(南面)을 병합해서 공검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 유명한 공검호(恭儉湖)가 있으므로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함창면(咸昌面)
현내면(縣內面)·북면(北面)·동면(東面)을 병합해서 함창면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함창군 소재면인 관계상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써 습용한 것이다.

이안면(利安面)
상서면(上西面)·수하면(水下面)을 병합해서 이안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원래 이안부곡이 있었던 연혁이 있음에 따랐다.

<문경군(聞慶郡)>
문경면(聞慶面)
읍내면(邑內面)·양곡면(羊谷面)을 병합해서 문경군이라고 한 것은 본 면이 문경군의 소재면인 관계상 문경이라는 면칭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마성면(麻城面)
신남면(身南面)·신동면(身東面)을 병합해서 마성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서 유명한 마고성(麻姑城)의 옛터가 있으므로 마성이라는 명칭을 면명으로 한 것이다.

가은면(加恩面)
가동(加東)·가현(加縣)·가북(加北)의 3면을 병합해서 가은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이 옛날 가은현의 소재지였던 관계상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농암면(籠巖面)
가서(加西)·가남(加南)의 2면을 병합해서 농암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내에는 이 지방에 저명한 농암시장이 있으므로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호계면(虎溪面)
호서남(戶西南)·호현(戶縣)·산서(山西)의 3면을 병합해서 호계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옛날의 호계현의 소재지였던 연혁이 있었음에 따랐다.

산양면(山陽面)
산동(山東)·산남(山南)의 2면을 병합해서 산양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내에는 이 지방의 경제 중심인 산양시장 및 원래 산양역(山陽驛)이 있었던 관계상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산북면(山北面)
산북면·산좌면(山左面)을 병합해서 산북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산북면이 조금 저명하기 때문이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영순면(永順面)
영순면·서면(西面, 원래 용궁군)을 병합해서 영순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영순면이 영순천(永順川)에 의해 그 명칭이 조금 저명하기 때문이다.

예천군(醴泉郡)
예천면(醴泉面)
동읍(東邑)·서읍(西邑)·남읍(南邑)·북읍(北邑)의 4면을 병합해서 예천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이 예천군의 소재지인 관계상 예천이라는 명칭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용문면(龍門面)
제고(諸古)·유리(流里)·제곡(諸谷)의 3면을 병합해서 용문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는 저명한 용문산 및 용문사가 있으므로 그 면칭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보문면(普門面)
보문면·승도면(繩刀面)을 병합해서 보문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보문면은 보문산 및 보문사에 의해 저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습용했다.

호명면(虎鳴面)
신당면(新塘面)·호명면·위라면(位羅面)을 병합해서 호명면이라고 한 것은 이 3면 중 호명면은 옛날의 호명원 소재지로서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유천면(柳川面)
유천·지서(只西)·당동(堂洞)의 3면을 병합해서 유천면이라고 한 것은 이 3면 중 유천면에 유천시장이 있으므로 저명하기 때문에 습용했다.

용궁면(龍宮面)
신읍면(新邑面)·구읍면(舊邑面)을 병합해서 용궁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이 현재의 용궁군 소재면인 관계상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서 습용했다.

개포면(開浦面)
북상면(北上面)·개포면을 병합해서 개포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개포면에는 삼수산(三水山) 및 삼수진(三水津)이 있어서 그 명칭이 사람들 입으로 전해짐에 따라 그것을 습용한 것이다.

지보면(知保面)
신상면(申上面)·내상면(內上面) 및 내하면(內下面)을 병합해서 지보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 저명한 지보시장 및 지보역이 있었던 연혁상 지보라는 명칭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풍양면(豊壤面)
남상면(南上面)·남하면(南下面)·현서면(縣西面, 원래 비안군)을 병합해서 풍양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 옛날 풍산부곡이 있었던 연혁이 있음에 따랐다.

<영주군(榮州郡)>
영주면(榮州面)
봉향면(奉香面)·망궐면(望厥面)·가흥면(可興面)을 병합해서 영주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이 현재 영천군(榮川郡)의 소재면이지만 장래 영주군이라고 개칭할 것이므로 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다는데 있다.

장수면(長壽面)
두전면(豆田面)·호문면(好文面)을 병합해서 장수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이 원래 장수원의 소재지로서 장수라는 명칭이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문수면(文殊面)
적포(赤布)·각선의 2면 및 ○혈면(○穴面)의 일부를 병합해서 문수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 저명한 문수원이 있었던 연혁이 있음에 따랐다.

평은면(平恩面)
천상면(川上面)·○혈면(○穴面)을 병합해서 평은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 원래 저명한 평은역 및 평은진이 있었던 연혁이 있음에 따랐다.

이산면(伊山面)
말암면(末岩面)·어화면(於火面)·산이면을 병합해서 이산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내에는 저명한 이산서원(伊山書院)이 있으므로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풍기면(豊基面)
동부면(東部面)·서부면(西部面)·창락면(昌樂面)을 병합해서 풍기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이 현재의 풍기군 소재면인 관계상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써 습용한 것이다.

안정면(安定面)
동촌면(東村面)·생현면(生縣面)·용산면(龍山面)을 병합해서 안정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이 원래 안정현의 영역이었던 연혁이 있음에 따랐다.

봉현면(鳳峴面)
와룡면(臥龍面)·노좌면(魯佐面)을 병합해서 봉현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에 원래 저명한 봉현역이 있었던 연혁이 있음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부석면(浮石面)
봉양면(鳳陽面)·도강면(道講面)·용암면(龍岩面)을 병합해서 부석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은 원래 부석면이라고 하고, 또 저명한 부석사도 있음에 따라 부석이라는 명칭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순흥면(順興面)
대평면(大平面)·동원면(東元面)을 병합해서 순흥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이 현재의 순흥군 소재면인 관계상 폐군 후 그것을 면명으로써 습용한 것이다.

단산면(丹山面)
단산·내죽(內竹)의 2면을 병합해서 단산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단산면이 조금 저명하므로 습용한 것이다.

봉화군(奉化郡)
춘양면(春陽面)
춘양면·상동면(上東面)을 병합해서 춘양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춘양면이 원래 춘양현의 소재지로서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습용했다.

법전면(法田面)
중춘양면(中春陽面)·상동면(上東面)을 병합해서 법전면이라고 한 것은 이 지방 일대가 법전이라고 하는 지명으로써, 이 통칭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명호면(明湖面)
상남면(上南面)·하남면(下南面)·동면(東面)을 병합해서 명호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 내에 명호하고 하는 풍경이 아름다운 명승지가 있으므로 이상과 같은 면명을 붙인 것이다.
상운면(祥雲面)
서면(西面)·임지면(林只面)을 병합해서 상운면이라고 한 것은 본면 내에 운현(雲峴)이라고 하는, 험준하고 높이 솟아 고래로 상운봉일(祥雲奉日)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그 이름이 사람들 입으로 전해짐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하게 된 것이다.

봉성면(鳳城面)
군내면(郡內面)·북면(北面)을 병합해서 봉성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군내면이 원래 봉성현의 소재지로서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면명으로 했다고 한다.

물야면(物野面)
물야면·수식면(水息面, 원래 순흥군)을 병합해서 물야면이라고 한 것은 이 2면 중 물야면이 옛날 물야부곡(물야(勿也)라고도 한다)의 옛터로서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습용했다.

내성면(乃城面)
내성면·수민단면(壽民丹面) 및 화천면(花川面, 원래 순흥군)을 병합해서 내성면이라고 한 것은 이 3면 중 내성면은 내성시장 및 원래 내성현의 소재지로서 저명함에 따라 그것을 습용했다.

기록물 리스트

  • 1 . 표지
  • 2 . 색인 원문보기
  • 3 . 면폐합에 관한 건(경상북도) 원문보기
  • 4 . 달성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5 . 고령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6 . 청도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7 . 경산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8 . 영천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9 . 경주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10 . 영일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11 . 영덕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12 . 영양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13 . 청송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14 . 안동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15 . 의성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16 . 군위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17 . 칠곡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18 . 성주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19 . 김천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20 . 선산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21 . 상주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22 . 문경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23 . 예천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24 . 영주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25 . 봉화군면 폐합일람표 원문보기
  • 26 . 신 구 면수 비교표(경상북도) 원문보기
  • 27 . 면폐합의 건(경상북도) 원문보기
  • 28 . 신 명명의 유래 원문보기
  • 29 . 면의 명칭 및 구역(달성군) 원문보기
  • 30 . 면의 명칭 및 구역 변경의 건(경상북도) 원문보기
  • 31 . 달성군 16면 원문보기
  • 32 . 고령군 9면
  • 33 . 청도군 10면 원문보기
  • 34 . 경산군 11면 원문보기
  • 35 . 영천군 14면
  • 36 . 경주군 12면 원문보기
  • 37 . 영일군 17면 원문보기
  • 38 . 영덕군 9면 원문보기
  • 39 . 영양군 6면 원문보기
  • 40 . 청송군 8면 원문보기
  • 41 . 안동군 20면
  • 42 . 의성군 18면 원문보기
  • 43 . 군위군 8면 원문보기
  • 44 . 칠곡군 9면 원문보기
  • 45 . 성주군 12면 원문보기
  • 46 . 김천군 18면 원문보기
  • 47 . 선산군 9면 원문보기
  • 48 . 상주군 18면 원문보기
  • 49 . 문경군 10면 원문보기
  • 50 . 예천군 10면 원문보기
  • 51 . 영주군 13면
  • 52 . 봉화군 9면 원문보기
  • 53 . 제2호 조사서(면의 명칭 및 유래) 원문보기
  • 54 . 제3호 조사서 원문보기
  • 55 . 면폐합안 중 정정의 건(지도 첨부)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