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목: |
면폐합 관계서류 * 해당 철의 내용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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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년도: | 1914년 |
기록물 유형: | 일반문서류(문서대장) |
생산기관: | 지방행정 |
소장위치: | 대전국가기록정보센터 |
공개여부: | 공개 |
관리번호: | CJA0002553 |
[울산군(蔚山郡) 면의 폐합에 관한 건(경상남도장관 : 1913.9.23)]
지령안(지1제55호)
1913(대정2)년 9월 19일 경남지수발제940호로 품청한 울산군 면의 구역 및 명칭 변경의 건을 인가한다.
조선총독
이유
본 건은 현재 20여개 면을 14개 면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도장관이 의견을 제출한 대로 적당한 조치라고 인정되어 본 안 대로 인가토록 한다.
또한 본 군은 군폐합의 결과 언양군(彦陽郡)과 병합하려고 한다.
[면의 폐합에 관한 건(경상남도장관->조선총독 : 1913.9.19)]
신청(경남지수발제940호)
5월 30일자 지1제483호 정무총감 통첩에 따라 관내 울산군(蔚山郡)에서 면의 구역 및 명칭을 별지도령안과 같이 변경하고자하는 바, 인가해주시기 바라며 조사서를 첨부하고 이에 신청합니다.
(1) 도령안
[조선총독부에서 경상남도장관에게 보내는 령]
울산군 관내 면의 구역 및 명칭을 다음과 같이 변경하고 1914(대정3)년 4월 1일부터 이를 시행한다.
대정 년 월 일 도장관
1. 상부면(上府面)과 내현면(內峴面)을 합하여 부내면(府內面)으로 칭한다.
1. 농동면(農東面)과 농서면(農西面)을 합하여 농소면(農所面)으로 칭한다.
1. 내상면(內廂面)과 하부면(下府面)을 합하여 하상면(下廂面)으로 칭한다.
1. 현북면(峴北面)과 현남면(峴南面)을 합하여 대현면(大峴面)으로 칭한다.
1. 청량면(靑良面) 내의 산하동(山下洞), 송암동(松岩洞), 월도동(月島洞), 처용동(處容洞), 사방동(士方洞) 및 온북면(溫北面) 내의 산성동(山城洞)을 온산면(溫山面)에 편입한다.
1. 온북면(산성동을 제외)과 온남면(溫南面)(화마동(禾麻洞)을 제외)을 합쳐서 온양면(溫陽面)으로 칭한다.
1. 외남면(外南面) 및 온남면 내의 화마동을 서생면(西生面)에 편입한다.
(2) 조사서
(가) 새 명칭의 유래
부내면(府內面)본 면은 원래 지금의 상부면 및 하부면의 일부를 부내면이라고 칭했던 시대가 있어 다시 이를 양분하여 그 한 쪽을 상부라고 칭하고 다른 한 쪽을 하부라고 칭하였으므로 이번 합병에 즈음하여 그 명칭 중의 각 1글자를 채택하여 상부면의 옛 명칭인 부내면을 붙이는 데 있다.
농소면(農所面)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에 지금의 농동, 농서는 1개 면으로 농작이 풍족한 데에서 농소면으로 칭하여 왔는데,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이르러 중앙을 관통하는 동천을 경계로 하여 동서로 2분하여 농동과 농서로 칭하기에 이르렀는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 양면을 하나로 합치고 명칭도 또한 옛 것을 따르게 했다.
하상면(下廂面)본 면은 원래 부내면에서 분리된 하부면과 옛 진위대병영으로 인하여 붙여진 내상면의 각 1글자를 따서 하상면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대현면(大峴面)이 지방은 큰 고개가 있어 예부터 대현이라고 칭해져 왔는데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이를 삼분하여 내현(內峴), 현북(峴北), 현남(峴南)이라고 이름붙인 데 연유하여 이번에 그 현북, 현남을 합하여 옛 이름 대현을 부활시켜 칭하게 되었다.
온양면(溫陽面)현재 온북, 온남 양 면은 예전에 이 지방에서 솟아나는 온천으로 인하여 온양면이라고 칭했던 후에 양분되어 지금의 명칭을 붙이기에 이르렀으므로 면의 구역 및 명칭이 모두 옛날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서생면(西生面)이 면은 현재 외남 및 서생의 두 면을 합한 것으로 서생은 그 구역이 작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 지역에 성을 쌓은 곳으로 일본과 조선의 역사 상 그 이름이 눈에 띄는 곳이므로 예부터 다른 면과 합쳐지는 일이 없었고, 이번에 외남면과 합병하는 것은 행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나 그 명칭을 역사상 기록하는 바인 서생으로 칭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