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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상세정보

부군폐합에 관한 지방 민심의 건(경기도)

부군폐합에 관한 지방 민심의 건(경기도)

철제목: 면폐합 관계서류
* 해당 철의 내용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생산년도:1914년
기록물 유형:일반문서류(문서대장)
생산기관:지방행정
소장위치:대전국가기록정보센터
공개여부: 공개
관리번호:CJA0002564

기록물 번역문


[부군폐합에 관한 지방민 심의건(경기도장관 : 1914.2.12)]

[부군폐합에 관한 지방민 심의건(경기도장관->조선총독 : 1914.2.4)]
비제155호(보고)
이번에 실시되는 부군폐합에 대해서는 지방민심의 동요를 초래하지 않도록 미리 힘써 지도할 것을 부윤과 군수에게 훈칙으로 전달해 두었는데, 각 부군은 모두 매우 평정합니다. 그런데 오직 경성부(京城府)의 일부 내지인의 경우 일찍이 증세(增稅)에 대해 반대운동 ...... 행동하는데, 이에 조선의 인정과 풍속에 정통한 도참의관(道參與官)을 폐합으로 비교적 불리불편(不利不便)을 느끼는 각 군을 순시하면서 민심을 시찰하게 했더니 다음과 같은 복명을 하였습니다. 매우 정밀하므로 참고삼아 이것을 보고합니다.

좌기(左記)
남양군(南陽郡)
1. 1월 22일 오후 2시경 남양군에 도착하여 이번에 반포된 부군폐합에 대한 인민의 감상을 물었는데, 이 지역의 인민 등은 남양군은 원래 비교적 큰 군으로, 산업도 상당히 발전하는 경향이어서 다른 군에 병합되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바, 갑자기 폐군(廢郡)되었으므로 일시적으로 민심에 동요를 초래하였다. 유지로 불리는 한 두 사람은 당국에 탄원할 것을 주장하여 원서를 작성한 후 군청에서 면장회의를 위해 각 면장을 소집한 기회를 이용해 각 면장에게 연서하게 할 것을 군수에게 요구했으나, 군수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그만두게 했으나, 여전히 이에 응하지 않고 원서에 연서할 것을 운동하였다. 인하여 경찰관헌과 연락을 취해 중지하게 했다고 한다.
이것을 살펴보니, 주창자는 읍내의 영업자로서 군청의 존재 유무에 따라 자기 영업의 이해가 크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일반적인 상황은 일시적으로 다소 동요한 듯하지만 시세가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어떠한 행동도 없이 평온하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부의 이해관계자가 선동을 감히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보증하기 어려우므로 장래 이러한 자들의 행동만 주의하면 지장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것을 군수와 경찰관헌에 주의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민에게 부군폐합의 일을 전제로 해서 설득할 때는 오히려 의심을 야기할 우려가 있으므로, 회동자에 대해서는 주로 근검저축과 식산흥업의 것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부군폐합의 이유와 이에 대해 오해하지 않을 것을 설명해 두었다. 그 참석자 수 및 장소와 기타 설명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참석자 수 : 군참사, 각 면의 이장, 기타 유지 200 수십 명
2. 설명장소 : 남양공립보통학교 앞 마당
3. 설명요령 : 본관이 당지에 온 것을 전후를 통해 5번인데, 올 때마다 여러분의 근검치산(勤儉治産) 정도가 얼마씩 향상하고 있어 실로 기쁘기 그지없다. 이번에도 생각하지 않은 많은 여러분에게 이야기 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자못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1914년 봄이다. 옛사람이 말한 것처럼 1년의 경영은 바로 이 시기에 있으니, 여러분은 장래의 치산(治産)의 계획을 지금 세워야 한다. 즉 농업을 하는 자는 종자의 선택, 비료의 집합, 관개의 이용 등에 유의하며, 상공업자도 각각 각자의 직업발전의 길을 고심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와 같이 유의한다 하더라도 자력(資力)이 없다면 이를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때문에 평소에 힘이 닿는 한 근검하면서 자력을 쌓고 자기가 계획한 대로 돈을 운용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계획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더욱 더 자산을 늘려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곧 장래를 잘 고심하면서 근검저축을 한 사람은 자연이 부자로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빈곤을 면하지 못하는데, 빈곤한 만큼 괴로운 사람이 없으니 여러분은 깊이 유의하여 근검저축에 노력하기를 바란다.
저축의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믿는 것으로부터 논지를 세우면, 부녀자를 저축하게 하는 것이 첩경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저축하려고 해도 검약하는 방법을 도모하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이와 반대로 부녀자를 저축하게 한다면 자연히 검약을 고수하여 저축과 검약을 병행하게 되니 일거양득의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부녀자로서 저축에 노력하는 자는 없지 않지만, 남자된 사람이 도리어 이를 방해하여 결국 저축심을 해이하게 하는 폐단이 왕왕 있는데, 실로 한심스러운 바이다. 바라건대 여러분은 당국의 지도를 잘 준수하여 근검치산에 노력하기를 거듭 바란다.
다음으로 말할 것은 아동의 교육이다. 진실로 사람으로서 보통의 교육을 천시하면 금수와 다르지 않다. 또한 아동을 교육하는 것은 부형의 의무일 뿐 아니라 세운(世運)의 발달과 함께 더욱더 심해지는 생존경쟁에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도저히 생존을 유지할 수가 없다. 때문에 반드시 자제를 교육하여 시세에 뒤처지지 않도록 신중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말하면 이것이 마지막인데, 이번 순서로 이번에 반포된 부군폐합에 대해 한 말씀 드리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날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필경 일류 생존상의 원칙이라고도 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수십 년 전을 되돌아보며 지금의 상태와 비교하면 실로 소양한 감이 있다. 수십 년 전에는 경성에서 남양으로 오려고 하면 2일 이상의 일정이었는데, 지금은 반나절이 못되어 도착한다. 이와 같이 발달하여 문명의 영역으로 나아간 것은 좋은 기계를 이용한 것 외에는 있지 않다. 즉 기차, 기선, 전신, 전화 등 여러 기계에 의해 지금의 1,000리는 옛날의 100리보다도 가깝게 운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결코 땅의 면적이 축소된 것에 있지 않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각 사람의 관념이 자연스럽게 향상된 것이다. 때문에 옛날에 정한 군계(郡界)를 적절하게 폐합하는 것은 이 시세의 추이로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군의 구역이 협소하다면 인민의 부담도 많아진다. 면장, 이장 등이 인재를 골라 쓰는 데에도 불편함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군의 구역이 확대됨에 따라서 인민의 부담도 10사람 분을 100사람이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인재도 널리 고르는 데에 이르렀다. 국가경제는 내버려두더라도 인민의 편익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번 부군폐합은 실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도모한 데서 나온 것이다. 여러분은 총독부 인정(仁政)의 취지를 잘 체득하여 더욱 그 업무를 권장하면서 그 가운데에서 편안하기를 바란다.
이상과 같이 설명하면서 설득했는데, 모두 정숙하게 경청하였다.

양성(陽城), 죽산(竹山), 양지(陽智)의 3군
양성, 죽산, 양지의 3군은 군 폐합에 대해 어떠한 동요를 일으키는 것 없이 매우 평온하다. 양성의 경우, 경제상 시장의 관계, 기타 지리상으로 안성군(安城郡)에 병합된 것을 민심은 오히려 기뻐하는 경향이 있다.
폐군으로 당장 곤란을 느끼는 자 및 경제상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점은 각 군을 통해 다음과 같다.
1) 군청 소재지에 거주하는 음식점, 여인숙, 주점, 잡화점과 군청에서 일하는 고인.
2) 군청 소재지의 토지가옥은 매우 하락하여 거의 반액으로 되었음.
3) 부동산증명 신청에 매우 바쁨.
양지군에서도 인심이 매우 평온하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이다. 오직 용인(龍仁), 즉 양지를 병합한 군명에 양지 2자 중 어느 1자를 넣지 않았음을 다소 유감스러워 하는 경향이다. 그리고 양지의 현 군수 민○○을 용인군수로 이임할 것을 당국으로 청원하기 위해 각 면사무소에 100여명씩 집합했던 것을 군에서 신중히 설득함과 동시에 경찰관헌과 협의하여 설득한 후 해산시킨 일이 있었다.

마전군(麻田郡)
마전군수는 군 폐합에 관하여 민간의 오해를 피하고 인심의 동요를 방지할 목적으로 1월 7일 각 면장을 소집하여 우선 그 의향을 물었다.
동면장(東面長) 정○○은 이번에 마전군을 폐지하고 연천군(漣川郡)에 합병되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독립된 행정구역으로서 존재한 마전군도 이후에는 그 명칭을 잃게 되어 실로 유감스럽다고 하였다.
장신면장(長新面長) 서○○은 본면은 원래 장단군(長湍郡)에 속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마전군으로 합병되면 군청과의 거리가 멀어지므로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지만 거리가 가까운 연천군으로 폐합되었으므로 인심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북면장(北面長) 송○○은 마전군은 1895(명치 28)년에 삭영군(朔寧郡)에 합병되었다가 1897(명치 30)년에 분리되면서 다시 마전군을 설치한 관계로 이번에 혹 마전군에 합병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편리한 연천군에 합병하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또한 군 폐합은 경비를 절감하여 인민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목적일 것으로 생각하며, 일반 인민은 별다른 불평을 품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 외에 면장은 별다른 의견이 없었으므로 군수는 이번에 군 폐합의 결과 마전군은 연천군에 합병시키는 것으로 하였다. 그런데 예령(例令) 마전군의 명칭은 없어지지만 마전의 산천초목 및 인민에게는 어떠한 변화 이동이 없다. 국가행정의 요점은 시세에 따라 백성의 수준에 적합한 시설계획을 함으로써 인민의 복리를 증진하고 생명재산의 안전을 보존하는 데에 있다. 이제 각종 각 계급의 행정기관은 완비되고, 운수교통의 기관 또한 완벽함에 가까워지며, 인민이 직접 군청에 출두할 경우는 증명이나 기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외에는 필요 없다. 군의 폐합은 앞서 언급한 실상에 비추어 단행되었는데, 여러 행정상에는 어떠한 지장도 없을 뿐 아니라 행정상 필요로 하는 경비를 절약할 수 있는 상황으로, 군 명칭의 존폐와 같은 것은 더욱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 아니다. 인민 중 만약 이러한 사소한 것을 언급하는 자가 있다면 면장은 마땅히 설명하여 적어도 오해하지 않도록 할 것은 지시했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군민은 별다른 반감을 가지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평온하다. 또한 마전군 헌병파견소장은 관내에 강도범이 있어서 출장 중인데, 쿠보니와(久保庭) 헌병 상등병도 와서는 평온하다는 뜻을 말하였다.

적성군(積城郡)
본 적성군도 군수 및 헌병파견소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군 폐합에 관해서는 우선 평온하다고 하는데, 일부 군민 중에는 동 적성군은 종래 물자의 수급 등으로 문산포(汶山浦)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이와 반대로 연천과는 거의 어떠한 관계도 없으며, 또한 군청과의 거리의 경우 문산으로는 5리, 연천으로는 6리 내지 8리로 연천 쪽이 멀며, 적성군 남면은 하나의 산길이 있다 하더라도 양주(楊州) 읍내와는 겨우 3리이니 연천보다는 훨씬 가까우므로 동면 및 서면은 파주군(坡州郡)에, 남면은 양주군에 합병되면 편리하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연천군에 합병하기로 결정한 이상 갑자기 이를 변경하기는 곤란하므로 경거망동을 삼갈 것을 타이르고 있는데, 두드러진 소요 등을 야기한 경우는 전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후에는 함께 타이르는 데에 노력함으로써 부군폐합 실시에 유감이 없도록 할 것을 주의해 두었다.

풍덕군(豊德郡)
군수는 동면(東面) 영정포(領井浦) 어업계(漁業契) 업무협정을 위해 길기(吉崎)도 기수와 출장가서 부재중이었는데, 군청원 및 헌병분견소장에게 가서 들으니 동 풍덕군은 개성군(開城郡)과는 종래 상거래 및 지주소작의 관계 등으로 매우 밀접하므로 개성군에 병합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로써 모두 평온하다.

이것을 요약하면 마전, 적성 및 풍덕 3개 군은 평온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군 폐합의 결과 군청과의 거리가 비교적 멀어지기 때문에 증명사무의 경우 당사자가 출두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번 기회에 증명을 받아 두는 것이 편리하다고 생각하여 부군폐합을 발표한 후에는 종전에 비해 2배 내지 4배의 증명 신청이 있었지만, 다른 두드러진 것은 없다. 각군 모두 단단히 마음먹고 매듭짓지 못한 문서를 정리하고 있는데, 상급관청의 인가 또는 지령을 받은 것, 또는 처리의 시기가 도달하지 않은 것, 혹은 삼림과 산야의 양여, 대부 출원지 조사(1군에 약 30건 내지 40건) 등 외에는 전부 완결하여 인계할 수 있다. 증명사무의 경우에도 현재 상황으로는 군 폐합 전에 모두 마칠 수 있는 모양이다.

부기
마전공립보통학교 생도는 길 위에서 마중하였으므로 훈화를 주었다고 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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