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상 자막 ]
[광복과 정부수립, 그리고 대한민국의 성장 등 9편]
돌이켜보면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광복의 새 역사를 시작한 그날의 감격을 최초의 대한뉴스인 조선시보가 수록해 놨습니다. 해외에 망명했던 민족지도자들의 환국
해방된 조국을 남북으로 갈라놓은 3.8선이 그어지고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미군과 소련군이 남과 북한에 각각 진주했습니다. 그때의 서울과 농촌.
1948년 5월 10일에 제헌국회의원 총선거.
해방 3주년인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 선포식을 가졌고, 이때부터 대한뉴스는 대한전진보라는 이름으로 매달 1편식 제작, 상영했습니다.
신생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됐으나 3.8선을 지키는 옹진반도에서는 총 대신 죽창으로 지켰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3년 1개월에 걸친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같은 해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9월 28일에 서울수복, 10월에는 평양에서 우리정부가 북녘 동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중공군이 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한 많은 흥남철수작전을 전개해야했고, 수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문맹퇴치 운동]
정부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금년 4월까지 다섯 달 동안을 문맹교육기간으로 설정, 본격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지난 13일에는 문맹교육봉사단 결단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들 문맹교육봉사단원은 시내 문맹자 교육의 선봉이 될 것입니다.
한편 겨울방학을 틈타 스스로 나선 학생들의 농촌계몽활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데, 이들 계몽반은 재건체조와 더불어 일과가 시작되면은 낮에는 농민들과 더불어 같이 일하고 밤에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한글지도를 해서 문맹자를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화폐개혁]
정부에서는 이 나라 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 6월 10일을 기해 환화를 10대 1의 원화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날부터 액면 50환 이하의 환화를 제외한 구 환화는 유통과 거래가 금지되고 10일 아침부터 전국에 걸쳐 각 동회에서는 구화의 신고가 실시되고 이어서 각 금융기관에는 구화를 예입하고 새 돈으로 바꾸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줄지어 섰습니다.
[미니스커트 등장]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미니스커트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장발족 단속]
장발단속,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청년들. 자신은 멋으로 알고 기르는지 모르지만은 장발은 위생에도 좋지 않고 보기에도 흉합니다. 남이 기른다고 덩달아 기르고 그 지저분한 모양이 과연 멋있게 보인다고 생각하면은 큰 잘못입니다. 치안당국은 머리가 귀밑까지 내려가는 등 성별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장발자들에게는 머리를 깎아주고.
[야간통행금지 해제]
야간통행금지가 해제 된지도 만 1년이 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광복이후 37년간이나 야간통행금지라는 규제된 시간으로 적지 않은 불편을 받아왔습니다. 야간통금으로 인해 시민의 생활시간이 단축되고 산업활동도 그러했지만은 국민들의 의식구조 또한 어둡게 했던 밤의 장벽이었습니다.
[해외여행자 과소비현상 캠페인]
아직도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온 이들 중에는 외제물품을 많이 사들고 돌아오는 이가 있습니다. 더욱이 올 여름에는 유난히도 해외여행이 많았고 김포세관의 경우 압류물 창고가 모자랄 정도이며 3천억 원어치가 넘는 값비싼 외제품들이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진정 한심한 일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