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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기틀을 놓다

 

국가의 기틀을 놓다

1919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대한민국은 세계 여러 나라에 독립국가의 모습을 당당하게 알렸고, 안으로는 제헌의회 및 초대 내각구성, 헌법제정 등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원고
대한늬우스. 밀물처럼 터져 나온 그 인파, 그 함성. 대한민국만세. 해방과 광복의 새 역사를 시작한 그날.
1945년 8월의 그 감격. 광복과 더불어 제작하던 조선시보를 정부수립 후에는 대한전진보로, 53년부터 대한늬우스로 제작, 전국에 배포했습니다.
그때그때 우리 생활, 우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도하고 기록을 보존해왔습니다. 국토분단 초기, 공장이 많던 북한과는 달리 38선 이남에는 재래식 농촌이 많았습니다.
지역마다 닷새 만에 하루씩 서는 오일장, 향수에 젖게 하는 우리 모두의 고향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광복의 새 역사를 시작한 그 날, 그 감격. 해외 망명했던 민족지도자들의 귀환을 최초의 대한늬우스인 조선시보가 수록해놓았습니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에는 38선이 그어지고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한에 각각 진주했습니다.
그 무렵의 서울 거리와 농촌의 풍경. 1946년과 47년, 우리의 장래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미소 공동위원회가 열렸으나 성과 없이 결렬됐습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지역에서만 유엔 감시 하에 총선거가 실시돼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했습니다.

이때부터 대한늬우스는 대한전진보라는 제명으로 매달 한편씩 제작, 상영했습니다.
정부수립 경축식 기록물썸네일
정부수립 기념아치 기록물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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