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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열매를 맺다

 

기적의 열매를 맺다

전쟁의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개발을 본격 추진하여 눈부신 경제발전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중화학공업 등 국가기간사업을 적극 육성하고 국토개발을 통해 지역발전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또한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새마을운동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었다.
한편 한일회담을 전후로 일어난 4·19혁명과 6·3항쟁은 시대의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 시기 우리는 잘 사는 미래를 위해 멀리 중동 등에서 땀을 흘렸으며 그 결과 '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원고
그러나 1961년 5월 16일 새벽. ‘혁명공약. 첫째, 반공을 제 1의 국시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 둘째,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면서 농촌에서부터 시작한 새마을운동. 이때부터 대한뉴스도 천연색 뉴스를 제작, 상영했습니다. 74년에는 지하철 시대가 열렸습니다. 자동차수출국 대열에 오른 우리나라는 77년에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습니다. 10억 달러 돌파 후 7년만의 일입니다. 쌀이 부족해서 한때 생산을 중단했던 쌀 막걸리가 쌀 증산으로 인해 다시 생산, 판매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습니다.
동해의 먼 지평선에 태양이 떠오르면, 먼저 그 햇빛을 받는 고장이 울산입니다. 고래잡이로 이름난 장생포를 지나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워 이긴 학성공원에 어우르는 태화강과 동천강의 어구가 평화롭게 내다보입니다. 이 두 개의 강을 끼고 넓게 자리 잡은 울산은 인구 8만의 농어촌을 겸한 이상적인 고장입니다.
널따란 평야, 그 사이를 흐르는 강, 그리고 수심이 깊은 바다는 공업도시로서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우리는 이를 버려둔 채 지내왔습니다.
재건의 기치도 드높이 조국의 근대화를 외치며 1962년 2월 3일, 마침내 울산은 우리나라 자립경제의 초석이 될 새로운 터전이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3만을 헤아리는 역사의 증인들이 모인 가운데, 그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의 의장은 울산을 한국 최대 공업지구로 건설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이날의 공업센터 기공식을 출발점으로 내각수반 직속하의 울산개발 계획본부, 건설부 소속하의 울산특별건설국 등의 기구를 두어 공업센터 건설의 기본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공장이 서게 될 땅의 선정과 그 정지계획을 위시해서 교통조건, 공업용수 그리고 홍수를 우려한 강우량 조사와 사방계획 등 갖가지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울산은 정유공장, 비료공장, 제철공장, 화력발전소 등 4개의 공장건설이 계획됨으로써 새로운 공업지구로 그 면모를 바꾸게 됐습니다.
공업지구 건설 준비가 완료되자 1963년 3월 12일, 대한석유공사에서 정유공장을 착공함으로써 힘찬 건설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정유공장의 착공에 아울러, 울산특별건설국에서는 건국적인 건설지원사업이 실시되었습니다.
여기에 동원된 장비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규모로써 그 건설의 우렁찬 소리는 동해 멀리 메아리쳐 갔습니다.
정유공장은 6만 7천 평의 논과 6만 3천 평의 밭, 그리고 이 밖에 인근 하천 등 도합 47만 평의 공장 부지를 흡수해서 그 방대한 지역의 부지공사를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한편 특별건설국에서는 공업지구 도시계획에 의한 도로공사와 부산과 울산을 연결하는 산업도로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폭 20m 내지 25m의 이 산업도로 공사에는 1개 대대의 국토건설단과 3개의 민간회사가 동원되어 연인원 약 5만의 인력으로 그 박차를 가했습니다.
한편 울산만의 장생포에서 공업항구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그 항만공사가 진행됐습니다.
이번 공업지구 건설에서는 실업자 구제를 그 일부의 목적으로 하는 곤궁투자정책의 뒷받침에 따라 되도록이면 기계를 쓰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그래서 항만공사의 방파제 구축작업도 거의 인력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50만 명으로 불어날 이곳 주민들의 식수와 공장에 쓰일 공업용수의 공급을 위한 저수지 공사도 또한 작업을 서둘렀습니다.
이 선암저수지는 약 200만 톤의 물을 확보해서 약 15일 동안에 공장급수를 가능케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장용수 저수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울산공업지구 건설지원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때 상공부에서는 상공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석유공사와 미국 플로아 건설회사간에 정유공장건설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1600만 불에 달하는 이 건설계약이 맺어짐으로써 정유공장의 건설은 본격화됐습니다.
1963년 3월, 정유공장 기공식을 출발점으로 깨끗이 정제된 47만평의 부지위엔 공사계획대로의 공장조립이 시작됐습니다.
하루 평균 800명의 국내기술자와 노무자가 동원되어 기계조립을 서둘렀으며 플로아 회사의 정밀한 계획과 우수한 기술진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중대한 사명을 띠고 출발한 울산공업지구 건설계획이 수립된 지 1년. 그 건설작업이 눈앞에 이루어지자 온 국민의 성원과 국제적인 협력,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뒷받침으로 정유공장건설작업은 내일의 발전을 확신하며 줄달음쳤던 것입니다.
제품과 원유를 저장할 수 있는 탱크조립이 시작됐습니다.
모래와 (안 들림)로 기초 작업을 하고, 그 위에 크고 작은 철판으로 조립하는 이 탱크는 원유저장용 탱크 3동을 비롯해서 중간제품용 탱크와 완제품용 탱크 등, 도합 33개의 탱크가 조립되어 118만 리터를 저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공사 진척에 따라 대한석유공사에는 공장의 건설상황을 파악했습니다.
정해진 시기에 정상 가동을 위해서 일하는 이곳 기술자와 노무자들은 비가 오나 눈이오나 쉴 새 없이 작업에 전량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유니버설 오일 프로덕트 회사에서 설계한 이 공장을 살펴보면 중간 탱크에 저장한 원유를 분류해서 중간제품을 처리하는 상압증류장치, 상압증류에서 나오는 액화가스와 경질 가솔린 등유 등의 가연효과를 증가시키는 메록스 장치, 저옥탄가의 나프타를 고옥탄의 물건으로 개질시키는 접촉개질장치. 중간제품의 등유, 가스유를 품위가 높은 등유, 가스유로 생산하는 추첨타르장치. 아스팔트와 블론아스팔트를 생산하는 감압증류장치 등이 있으며, 이 이외에도 유류저장탱크, 공장용 연료탱크, 자가 발전기, 원유가열기, 감압가열기 등 수많은 작고 큰 시설들이 있습니다.
1963년 10월경에 이르자 공장건설작업은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완성돼가는 이 정유공장은 그 건설작업을 미국 플로아 건설회사에서 맡아 했으며 성능보장은 조사와 설계를 담당한 유니버설 오일 프로덕트 회사에서 책임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공장은 외화 2500만 불의 도입을 위해 9개 항목의 계약을 맺은 걸프회사와 대한석유공사가 운영을 맡기로 돼있습니다.
하루 평균 3만 5천 배럴의 원유를 처리해서 석유제품을 국내에 공급함은 물론 해외에까지 수출해서 연간 2천만 불의 외화를 절약하게 되는 이 정유공장은 크나큰 국가적 이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정유공장의 중요부분이 완성 되가는 무렵 바다의 부위와 원유탱크를 연결하는 바다 속에 가는 송유관이 거의 완성을 보게 됐습니다.
이 송유관은 해안에 자리 잡은 3개의 원유탱크에 원유를 저장하기위해 마련된 가장 힘든 작업 중에 하나였습니다.
육지로부터 약 2km지점에 바다에 떠있는 부위와 연결하는 이 송유관은 20인치의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으며 유조선에서 보내는 원유를 직접 탱크에 송유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조립공사가 시작된 지 9개월 만에 정유공장의 기기조립은 완전히 끝나고 마지막 손질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 1964년 5월 7일, 역사적인 울산정유공장의 준공의 날은 왔습니다.
그렇게도 바라고 원하던 자립경제의 또 하나의 터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날부터 정상가동을 해오는 정유공장은 월 평균 4회에 걸쳐 멀리 중동 쿠웨이트로부터 4만 5천 톤 내지 7만 5천 톤급의 유조선에 의해서 수입해오는 원유를 해안에 있는 저장탱크에 송유하기 위해서 2km떨어진 해상에서 하역작업을 실시하며, 공장으로 들어가는 원유는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제트엔진연료, 액화석유가스, 솔벤트, 아스팔트 이상 8개 제품으로 생산돼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바다로 멀리 수출되기도 하며, 국내 주요항구에 수송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육지로는 울산공업지구의 산업도로의 교통망을 통해서 전국 각 주요도시에 수송되는 것입니다.
허다하게 쓰이는 휘발유가 이제는 우리의 손으로 우리 땅에서 가공, 생산하게 되었으니 이 거대한 정유공장으로부터 새로운 공업발전의 기틀이 마련되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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