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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로 보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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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집

분       야
정치
생산연도
1966
감       독
라한태
생산기관
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
관리번호
CEN0002944
재생시간
10분 16초
(내용 펼쳐보기 ▼)
분       야
정치
생산연도
1966
감       독
라한태
생산기관
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
관리번호
CEN0002944
재생시간
10분 16초

영상해설

(00:16)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소로 알려진 판문점에 조국 통일을 이룩하려는 온 겨레의 염원을 상징하는 자유의 집이 세워져 지난 9월 30일 그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우렁찬 육군 군악대의 주악과 한국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우리 민요로 시작된 이 식전에는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대표 남철 소장을 비롯해서 유엔 참전국 대표들 그리고 200여 명의 내부 인사들이 모여 이 자리를 빛냈습니다. 지난 6월 25일 착공한 이래 총 작업일 수 31일 만에 준공을 본 이 자유의 집은 민간 기술업자 우림산업회사와의 기술 유대로 육군 제1201공병단 장병들이 세운 것입니다. 건물 앞에 을지문덕 장군의 동상이 서있는 이 자유의 집은 길이 약 115피트(ft), 넓이 약 26피트(ft)인데 건물 2층에는 상황 설명을 위한 휴게실, 전시실 등이 마련돼 있습니다. 또한 2층과 3층에는 조망대가 있어 판문점을 한 눈으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돼있는데 앞으로 판문점을 찾는 관광객들을 포근하게 맞아들일 것입니다. 이 자유의 집은 전 유엔 측 수석대표 블랙본 장군과 한국군 수석대표 장지량 소장 그리고 한미 고위층의 주선하에 이루어지게 된 것인데 이 공사는 6월 16일 그 계획을 완료했습니다. (01:45)드디어 판문점 공사 현장에 육중한 공병 장비가 들어 닥쳤습니다. 이때 북한 괴뢰 공산군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현대식 건설 장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랬습니다. 6월 26일 오전 8시, 제1진의 불도저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터를 닦은 후 당일 간단한 기공식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는 공병감실 안병욱 대령, 1201공병단장 하종구 대령, 우림산업 사장 강승훈 씨 등이 참석, 고사를 올리고 신의 가호를 빌었습니다. 이어서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한편 이 공사 계획이 끝난 후 안양에 자리 잡은 우림 산업사에서는 자유의 집 조립용 건축 자재를 만들었는데 강철 조립과 프리캐스트 철근, 콘크리트 기둥, 프리캐스트 벽 등 특수 건재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건축 자재들이 6월 22일로써 완성을 봤습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건재들은 판문점에 운송되기 전에 안양 현지에서 시험 조립을 했습니다. (04:10)무더운 한 여름 폭양과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사가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먼저 지반을 굳게 하기 위해서 철근 콘크리트 기둥으로 파이링을 하고 갖가지 기초 공사를 했습니다. 기초 공사가 완성된 후 기둥을 세웠습니다. 공사가 계속되는 동안 비무장지대 이남에 있는 공동경비구역 지원부대에서 판문점 공사 현장까지 약 3킬로미터(km)의 거리를 하루하루 자재를 운반해 갔습니다. 기둥과 대들보가 올라선 뒤 1층과 2층 사이에 슬라브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슬라브와 슬라브 사이의 틈을 용접으로 메꿨습니다. 2층의 벽은 블록으로 쌓아 올렸는데 블록과 블록 사이는 철근을 넣어서 튼튼하게 했습니다. 회담장소로 연(連)한 담벽은 프리캐스트 철근 콘크리트 벽으로 쌓았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해서 2층 조망대 난간을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3층에 조망대가 세워져 자유의 집 윤곽은 뚜렷해졌습니다. 이 조망대는 남대문을 신축한 도목수 조원재 씨가 다듬은 것으로써 순수한 우리나라 고전미가 풍기도록 지어졌으며, 이에 단청에는 관록 있는 김을용 씨가 그 솜씨를 보였습니다. 단청과 아울러 2층 지붕 공사가 계속되고 내부도 깨끗이 다듬어졌습니다. 마지막 공사로 건물 앞뜰에 정원과 연못이 만들어졌습니다. (09:30)드디어 9월 28일 말쑥한 자유의 집이 그 자태를 내놓았습니다. 이 자유의 집이 완성되자 공산군이 항상 뽐내던 육각정은 그 빛을 잃었습니다. 이 자유의 집은 북한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에게 자유를 안겨주려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말하는 듯 언제까지나 북녘 하늘을 지켜보고 서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