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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로 보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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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자기

분       야
문화
생산연도
1977
감       독
한호기
생산기관
국립영화 제작소
관리번호
CEN0004887
재생시간
24분 2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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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야
문화
생산연도
1977
감       독
한호기
생산기관
국립영화 제작소
관리번호
CEN0004887
재생시간
24분 24초

영상해설

(00:00:16)서기 918년부터 1392년까지 약 500년간에 걸쳐 한반도에는 고려가 있었다. 그 고려인의 솜씨로 만든 경천사 십층석탑 탑신에는 불보살과 인물, 용, 화초 등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00:00:53)수많은 고려의 문화유적 중에 영주 부석사(浮石寺)는 유일한 현존 고려 목조건물로서, 그 뛰어난 목조건축의 정교함을 오늘에 이어주고 있다. 고려 500년은 불교가 크게 일고,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00:01:19)고려는 북방의 거란족과 20년, 세계를 지배한 몽고족과 50년을 싸워 전국이 초토화되면서도 독립을 유지하고 문화의 꽃을 피웠으며, 더욱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부처님의 힘으로 몽고병의 침입을 막고자 16년에 걸쳐 전란(戰亂) 중에 완성시킨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면서 우리는 고려의 높은 문화 수준과 나라를 지키려는 굳은 의지를 느낄 수 있다. (00:02:27)그 가운데 고려 문화의 정수는 고려자기이다. 고려자기는 11세기로부터 세련되기 시작해서 12세기 전 반경에 순청자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이것은 청자과형화병(靑瓷果形花甁). 청자조각구형주자(靑瓷彫刻具刑誅磁). 청자미의 첫째는 담담하고 갓 맑은 푸른색에 있다. 청자양각죽절문병(靑瓷陽刻竹節文甁)이다. (00:03:00)청자색을 비색(翡色)이라 하는데, 중국의 청자는 비밀의 뜻인 비색(?色)이라 부르지만, 고려청자는 비취(翡翠) 옥색 같다는 비취색(翡翠色) 비색이라 부른다. 순청자(純靑磁) 시대에는 자기 표면에 소문, 음각, 새문, 양각의 무늬를 넣고, 상서로운 동물, 식물, 인물 등을 조각한 투각(透刻) 작품에도 뛰어났다. (00:03:28)12세기 전반부터 청자엔 상감기법(象嵌技法)이 개발되어 중엽에 최고로 세련됐다. 태토(바탕흙)에 홈을 파서 무늬를 넣는 상감기법이야말로 고려 도공들의 창의이고, 세계 도자기 사상 독보적인 것이다. (00:03:48)흰 구름과 백학은 청자의 높푸른 바탕 위에 잘 어울린다. 고려 도공들의 망막을 스치고 새겨졌을 이들 무수한 운학(雲鶴)은 지조 있고 높은 데를 향하려는 그들의 소망이었다. 청자의 무늬에는 운학, 들국화, 버들, 연꽃, 모란, 오리, 원앙, 백조 등 당시 귀족사회에서 즐겨 그리던 그림과 시의 소재나 도공들의 주변 경물이 많았다. (00:04:29)청자상감국모란문과형화병(靑瓷象嵌菊牡丹紋果形花甁). 청자에서 들국화는 가장 흔한 무늬다. 일하던 고려 도공의 발밑에서도 피어났던 꽃이다. 불교가 국시였음을 말해주듯, 연화당초(蓮花唐草)도 고려청자에 많이 쓰인 소재이다. 이것은 청자투각칠보향로(靑瓷透刻七寶香爐). (00:04:58)청자상감모란문홍(청자상감모란문항, 靑瓷象嵌牡丹紋缸)이다. 한 폭의 시원한 모란꽃이 항아리의 몸통을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청자상감와옥인물문편호(靑瓷象嵌瓦屋人物紋片壺). 청자 기와로 집을 지으면 얼마나 호화로울까. 여기 한 벌의 청자기와가 화려했던 고려의 사회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00:05:32)춤추는 여인의 자태. 온몸에 흐르는 부드럽고 유연한 선의 아름다움은 고려청자의 선이기도 하다. 비색(翡色)의 아름다움, 독창적인 상감기법, 선의 유연함이 바로 청자의 3대 특징이다. (00:06:07)고려자기를 굽던 요지(窯址)는 전남 강진군 대구면, 전북 부안군 보안면, 경기도 인천 일대가 대표적인 곳이다. 여기는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그 옛날 청자를 굽던 도요지(陶窯地)로써, 지금도 길거리, 논두렁 어디서나 청자의 파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00:06:40)여기 옛 청자의 미를 오늘에 재현하려는 도공 해강 유근영 옹을 소개한다. 청자는 고려의 패망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 하고, 이씨 조선 500년간 그 생산이 완전 단절됐기 때문에 그 만드는 비법이 오늘날 알려지지 못했다. (00:07:12)84살의 노(老)도공 해강의 청자 빚는 일은 경건히 마음을 가다듬는 데서 시작된다. 속세에 집착함이 없는 기원의 세계에 젖어 들어 500년 전 고려 도공의 마음을 읽고 솜씨를 생각해내는 것이다. (00:08:06)여기는 경기도 이천. 해강 유근영 옹의 청자 요지이다. 이곳에서 부인, 두 아들 내외 손자들과 함께 고려자기를 만들고 있다. 청자는 흙의 예술품이기에 좋은 흙의 선택이 좋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본이다. 흙은 점토(粘土), 사토(沙土), 고령토(高嶺土) 등 여러 종류의 것을 필요한 비율에 따라 배합해서 사용한다. (00:08:48)이런 흙들을 물에 섞어서 고운 채로 쳐서 물속에서 앙금이 지도록 한다. 물에 가라앉은 흙은 햇빛에 말리는데, 이것이 바로 도자기의 재료가 되는 태토(胎土, 바탕흙)가 된다. 태토는 성형하기에 앞서 차질게 반죽을 한다. 흙의 입자 사이에 접착력을 강하게 하고 기포를 없애는 데 목적이 있다. (00:09:39)성형은 발로 물레를 돌리고 손으로 흙을 빚으며 이루어진다. 청자 만드는 기술을 해강은 특히 두 아들에게 전수시키고 있다. 성형은 굽도리, 몸통, 어깨, 입 부분의 순서로 태토의 두께를 고르게 하며 전체적인 모양을 보면서 이루어진다. 특히, 입 부분을 마무리 짓는 손질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00:10:35)대표적 고려자기의 하나인 매병(梅甁)이다. 조그마한 입은 기품 있게 마감 쳐져야 하고 헌칠하게 흐르는 하반신과 조화되며 어깨는 풍만하고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려와야 한다. 성형이 완성되면 적당히 말린 후 표면을 말끔히 깎아낸다. (00:11:14)이제 태토(바탕흙)의 표면을 투각으로 조각하는 기법과 홈을 파서 문양을 내는 상감기법(象嵌技法)을 살펴본다. 원래 해강은 투각(透刻)을 잘했으며, 투각과 상감기법을 장남에게 전수시키고 있다. 지금 상감(象嵌)하고 있는 것이 상감청자운학문매병(象嵌靑磁雲鶴文梅甁)이다. 굽도리와 입 부분에 연편문대(연판문대, 蓮瓣文帶)와 여의두문(如意頭文)을 상감하고 몸통 전체를 구름과 학으로 가득 채운다. 어떤 모형을 보면서 상감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수련으로 익힌 손재주로 즉흥적으로 파나간다. (00:12:23)운학(雲鶴) 무늬 테두리에 흑토를 넣는 모습이다. 구름과 학에는 백토를 넣는다. 흑토와 백토가 어느 정도 마르면 홈 안에 흑토와 백토만 남도록 주위를 긁어낸다. 흑토로 상감하는 것을 흑상감(黑象嵌), 백토로 상감하는 것을 백상감(白象嵌)이라 부르고, 산화동(산화구리)을 이용했으면 진사채(辰砂彩), 금을 사용하면 화금청자(畵金靑瓷)가 된다. 상감하지 않고 태토에 흑토로 그냥 그림을 그리면 회청자가 되는 것이다. 학의 다리와 머리에 흑상감을 함으로써 매병(梅甁)의 상감은 마무리 졌다. (00:13:45)해강이 청자투각포도문이중호(靑瓷透刻葡萄文二重鎬)를 투각하는 모습이다. 이중 항아리에 포도문을 투각하는 것으로, 옛 청자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옛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몸통 가득히 용이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 용 투각 항아리. 고구려 벽화 좌청룡의 그 기상이 좋아서 옛 부터 즐겨 다루었다는 소재의 작품이다. (00:14:37)신비의 청자색인 비색을 얻는 유약. 청자의 유약 제조법은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비법이다. 유약은 700~800도에서 한 번 초벌구이를 한 후에 도자기 표면에 입히게 된다. 500년 단절된 청자 재현(再現)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유약이다. (00:15:12)유약에는 장석, 규석, 석회석, 토석과 재를 섞어 쓴다. 보통 풀이나 나뭇잎을 태운 재를 유약에 섞어 쓰면 푸른색이 나온다. 그러나 어떤 나뭇잎이 청자 비색에 가장 가까운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유근영 옹도 젊은 시절부터 산을 헤매며 모든 나뭇잎을 수집해 실험해오고 있다. (00:15:55)유약은 자기 표면에 고르게 입혀야 한다. 만약 아주 적은 부분이라도 유약이 묻지 않으면 흠집이 생겨 전체를 못 쓰게 만든다. 유약을 바른 후에 청자는 비로소 가마에 들어가 불을 때기 시작한다. (00:16:38)유근영 옹은 지금도 불을 지피기 전에 고사를 지낸다. 간단한 제상을 마련하고 막걸리를 떠놓고, 불 때는 데 참여하는 남자들만 모여 정성껏 가마에 머리를 숙인다. (00:17:26)고사라기보다 모든 정성을 다하자는 마음 다짐이요, 청자기가 잘 구워지기를 바라는 기원이다. (00:17:52)우리나라 전래의 도자기 굽는 가마는 등요(登窯)이다. 등요란 경사진 곳에 길게 만든 가마로서, 한 칸으로 된 것도 있지만 보통 여러 칸으로 막아, 맨 밑의 아궁이에서 때는 열기가 윗 가마에 충분히 미치지 못하면 윗 가마 옆에 보조 아궁이를 만들어 불을 때는 가마이다. (00:18:23)청자는 섭씨 1,300도의 온도에서 구워진다. 1,300도의 온도를 계속 유지하자면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불길을 지켜봐야 한다. 1,300도의 열기가 모자라면 청자기는 덜 익어 제빛을 내지 못하고, 과열하면 표면이 산화하여 황갈색을 띠게 된다. 1,300도의 온도 속에서 백열을 내며 익어가는 청자의 모습들이다. (00:19:04)밤새워 연기와 싸운 유근영 옹. 이번에는 몇 점이나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인지. 한평생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미리 예측하지 못한다. 밤새워 불을 땔 때는 식구 모두가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안사람들 역시 남편과 부모의 시중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 한 점의 청자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정성이 한 곳으로 모여 응결되는 것이다. (00:20:06)1,300도의 붉은 청자가 차츰 식으면서 비취색 비색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이다. 불 때기가 끝나면 이틀 동안 청자들이 가마 속에서 저절로 식기를 기다렸다가 꺼낸다. 이때가 가장 긴장된 순간들이다. 한 점 한 점 그 결과를 검토하는 때가 또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기도 하다. 옛말에도 청자는 백 점을 구워 한 점을 얻기가 힘들다고 했다. (00:21:23)조그만 흠이나 그 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미련 없이 깨버려야 한다. 자신의 혼이 깃든 작품이 영원히 사람들에 의해서 소중하게 다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것이 완전한 것을 향한 도공(陶工)의 집념이 된 것이다. 큰 동산처럼 쌓인 청자의 파편들. 해강이 17살부터 평생 쌓아 올린 노력의 흔적이다. (00:22:12)500년 단절된 청자미를 다시 찾으려고 흙 속에 몸담아온 지 반세기. 자기가 해온 일에 아직도 만족치 못하는 84살의 해강 유근영 옹은 오늘도 고려 도공의 마음을 헤아리며 청자의 비색을 찾아서 무아의 경지에 몰두한다. (00:22:48)한 무리의 청자를 보며 우리는 문인 박종화 씨의 청자부(靑瓷附)를 생각한다. “선은, 가냘픈 푸른 선은 아릿다웁께(아름답게) 구을러 보살같이 아담하고, 날씬한 어깨여 사월 훈풍에 제비 한 마리, 방금 물을 박차 바람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청자기. 빛깔, 오호! 빛깔, 살포시 음영을 던진 갸륵한 빛깔아. 조촐하고 깨끗한 비취여. 가을 소나기 막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 물방울 뚝 뚝 서리어 곧 흰 구름장 이는 듯하다. 그러나 오호 이것은 천년 묵은 고려청자기. 술병, 물병, 바리, 사발, 흙이면서 옥이더라. 구름무늬, 물결무늬, 꽃무늬, 백합무늬. 토공이오, 화가더라. 진흙 속 조각가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청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