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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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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국새 둘러보기

국새 제작배경

국새는 예로부터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나라의 사회적 배경, 요구, 사상에 바탕을 두고 제작되었다. 따라서 국새는 그 나라의 시대성과 국력, 문화를 반영한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제2대 국새는 1962년 말에 제작되어 37년간 중요 외교문서, 훈·포장증, 임명장 등에 매년 16,000여회 이상 사용되어 인면(印面)이 손상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문(印文)의 서체는 한자 전서체(篆書體)를 모방하여 한글의 독창성을 상실하였다는 학계의 지적을 받아 왔으며, 국새 인뉴(印鈕)-손잡이-의 거북이 형태 조각은 과거 중국의 천자가 제후들에게 하사하던 국새의 형태로서, 사대주의의 잔재라는 논란이 있었다. 또한 국새의 재질은 옥(玉) 또는 금(金)으로 제작되던 과거의 전통과 달리 은(銀)으로 제작하였으며 제작경위도 분명치 않은 등 여러 문제점들이 제기되어 새 국새를 제작하게 되었다.

3대 국새 인영

3대 국새의 외형과 특징

3대 국새의 인영(印影)은 훈민정음 판본체의 서체에 충실하며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당시 기본인 천(天)·지(地)·인(人) 3재(才)를 모두 표현하였다. 서체는 현대적 감각을 살려 단순하고 명쾌하며 정중함과 부드러움도 함께 지니도록 하고자 하였다.

변(邊)을 두텁게 하여 외세로부터 국토보위를 굳건하게 함을 상징하였고, 여백은 시원스럽게 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 정신과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다짐하는 뜻을 표현하였으며, 정사각형의 인면은 바른 정치와 공직사회의 굳건한 기강을 의미하도록 하였다.

국새 인뉴, 즉 손잡이는 봉황이 무궁화 꽃잎을 함께 물고 창공을 나는 모습으로 조형미를 극대화시키고 적극적, 개척자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봉황의 형상을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하였다.

하늘의 이상을 실현하는 상징인 봉황이 무궁화 꽃잎을 함께 물고 있는 것은, 21세기에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 국가지도자와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화합·협력하는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그리고 창공을 나는 봉황의 모습은 국가와 민족의 영원한 번영과 영광을 기원하며, 국운이 승천하는 모습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국새의 크기는 인면부가 10.1*10.1*3cm이며 인면부를 포함한 국새의 높이는 10cm이다. 중량은 2.15kg이고 재질은 금 18k(금 75.2%, 은 11.8%, 동 11.6%, 아연 1.4%)이다.

역대(1~3대) 국새 인영(印影)

정부수립 이후 사용된 역대(제1대~3대)국새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역대국쇄에 비교
구분 제1대 국새 제2대 국새 제3대 국새
사용 기간 1949.5~1962.12 1963.1~1999.1 1999.2~2008.2 ,2010.12~2011.10.24
인영
(印影)
제1대 국새 인영 제2대 국새 인영 제3대 국새 인영
크기 6.06*6.06cm 7*7cm 10.1*10.1cm
재질 은(銀) 은(銀) 금(金)합금
중량 - 2.0kg 2.15kg
규정 국새규정(1949)
(대통령령 제83호)
국새규정(1962)
(대통령령 제643호)
국새규정(1999)
(대통령령 제16096호)
인뉴
(손잡이)
- 거북이 봉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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