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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사진)UN군 참전기념(캐나다), 1951, DH20000086

UN군 참전기념(캐나다), 1951, DH2000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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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N군 참전기념(캐나다), 1951, DH20000087

UN군 참전기념(캐나다), 1951, DH2000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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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접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ltantic Treaty Organization)의 일원이었던 캐나다는 북한의 배후에는 소련의 팽창욕구가 있다고 판단하고, 유엔의 공동노력으로 이를 강력히 저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전쟁 발발 5일 후 캐나다 하원은 "집단안보의 효율성을 과시하기 위한 정부의 어떠한 조치도 적극 지지한다"고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날 루이스 로랭 총리는 "유엔의 권위 아래 평화회복을 위한 집단안보 활동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터키처럼 여단급 규모의 병력을 파견했으며 최초로 파견된 제2대대(PPCLI)는 영국 제27여단에 소속돼 작전을 수행했다. 1951년 5월 초 제25여단의 본대는 한국에 도착한 이후 새로 창설된 영연방 제1사단의 일부로서 전투에 임했다.

캐나다군은 영국군과 교리 면에서 매우 유사했고, 터키가 겪어야 했던 언어소통 문제도 전혀 없었다. 캐나다 제2대대는 가평전투에서 탁월한 전투능력과 전투의지로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