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유치, 국가의 총력전
국제종합경기대회의 서울 유치
1978년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와 1979년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이를 계기로 올림픽대회의 유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문교부가 작성한 「88올림픽 유치건의안」에는 한국의 경제 발전과 국력 과시, 한국 체육의 국제적 위상 제고, 스포츠를 통한 국제 친선 증진, 공산권 및 비동맹국과의 외교 관계 확대, 국민적 자긍심과 일체감 고취 등이 유치의 주요 목적으로 제시되었다.
정부는 1979년 8월 3일 국민체육진흥심의소위원회에서 올림픽 유치 안건을 심의하고, 같은 해 9월 19일 제2차 국민체육진흥심의위원회에서는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유치 계획을 추진하기로 의결하였다. 이어 10월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제24회 하계올림픽의 서울 유치 추진을 공식 발표하였다. 그러나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과 비상계엄 선포, 10.26사건으로 정국이 급변하면서 올림픽 유치 추진은 진행되지 못했다.
올림픽 유치 추진은 1980년 7월 조상호가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대한체육회는 같은 해 11월 30일로 예정된 유치 신청 마감일을 앞두고 본격적인 유치 활동에 나섰다. 한국이 불참한 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대회 현지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을 대상으로 유치를 위한 교섭을 시도하는 한편, 대한체육회 조직을 유치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사 중심으로 정비하였다.
그러나 유치 신청 마감을 불과 며칠 앞둔 1980년 11월 27일, 서울특별시는 당시의 경제적·재정적 여건으로는 올림픽 개최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올림픽 유치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대한체육회와 문교부에 전달하였다. 이에 문교부 장관 이규호는 11월 29일 전두환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였고, 대통령은 다음 날 유치 계획을 포기하지 말고 기한 내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서울특별시는 1980년 12월 2일 IOC에 유치신청서를 제출하였다. 당초 서울을 비롯해 일본 나고야, 호주 멜버른, 그리스 아테네 등이 유치 경쟁에 나섰으나, 멜버른이 유치를 포기하고 아테네도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서울과 나고야의 경쟁으로 좁혀졌다.
이후 서울은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제24회 하계올림픽대회 개최 도시로 최종 선정되었다.
제24회 하계올림픽대회의 서울 유치를 추진하던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정부 및 서울특별시와 협의하여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도 서울에 유치하기로 하였다. 올림픽에 앞서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대회 운영을 사전에 점검하고 국제종합경기대회 개최 경험을 축적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1980년 아시아경기연맹(AGF)에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이후 이라크와 북한도 유치 의사를 표명하면서 서울·평양·바그다드 간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다. AGF 조사단은 1981년 10월 평양과 서울, 바그다드를 차례로 방문하여 개최 여건을 조사하였다.
같은 해 11월 26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AGF 총회에서 서울이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단독 개최 후보지로 상정되었으며, 참석 대표들의 만장일치로 개최 도시로 최종 확정되었다.
서울아시안게임유치교섭단, 86 아시안게임 유치 결과보고
대한올림픽위원회, 제10회 아시안게임유치보고서
장애자올림픽대회(Paralympics)는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올림픽 개최국에서 함께 개최되는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1981년 9월 제24회 하계올림픽의 서울 개최가 확정된 이후, 한국은 국제척수장애인경기연맹(ISMGF)으로부터 장애자올림픽대회 개최를 권유받았다. 이에 주무 부처인 보건사회부는 관계 부처와의 협의와 검토를 거쳐 1984년 1월 20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국제장애인스포츠기구조정위원회(ICC)에 대회 유치를 신청하였다. 이후 ICC 총회에서 승인되면서 1988년 장애자올림픽대회의 서울 개최가 확정되었다.
88 국제신체장애자 올림픽 서울 개최 문제
보건사회부, 1988년 장애자올림픽 개최 검토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