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올림픽타운

오늘날 서울 동남부의 중심 거점으로 자리 잡은 잠실 일대는,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여름철이면 홍수가 범람하던 한강 속의 섬이었다. '잠실도(蠶室島)'라 불리던 이 섬은 1963년 서울시의 행정구역이 한강 이남으로 확대되면서 성동구에 편입되었고, 이후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 송파구가 신설되면서 오늘의 행정구역에 이르게 된다. 1966년 최초로 수립된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이 일대는 기존 잠실도의 모습을 유지한 채 주거지역과 경공업 지역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잠실대로와 남부순환도로 등 간선교통망의 기본 골격만이 그려져 있었을 뿐, 지금과 같은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변화의 계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한강 연안 개발의 흐름에서 비롯되었다. 1967년 9월 한강대교 남단에서 영등포 입구에 이르는 첫 제방도로(현 노들로)가 완공되면서, 제방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신규 택지를 매각해 개발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1969년 수립된 "여의도 및 한강 연안 개발계획"은 이러한 개발 방식이 적용된 한강 연안의 마스터플랜이었는데, 여기에서 처음으로 잠실도를 뭍으로 잇는 육속화(陸續化) 구상이 등장한다. 공유수면매립을 통해 육지가 된 잠실에 대규모 주거 용지를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을 토대로 서울시는 잠실지구 공유수면매립 인가신청서를 제출하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여의도 및 한강연안개발 계획

여의도 및 한강연안개발 계획

1969년 여의도 및 한강 연안 개발계획에서의 잠실 일대

1969년 여의도 및 한강 연안 개발계획에서의 잠실 일대

그러나 잠실 개발에 결정적인 동력을 제공한 것은 국제 경기 시설에 대한 절박한 필요성이었다. 서울은 1966년 제6회 아시안게임 유치에 성공했으나 이를 치러낼 기반 시설이 없어 불과 2년 뒤인 1968년에 개최권을 반납하고 말았다. 당시 수도 서울이 가진 경기시설이라고는 서울운동장(옛 동대문운동장, 현 DDP 자리)과 효창공원 축구장, 그리고 1962년 말에 준공된 장충실내체육관이 전부였다. 국제 대회 반납이라는 뼈아픈 경험은 국제 수준의 종합경기장, 즉 '메인스타디움' 건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실 종합경기장 후보지의 물색은 그 전부터 이어져 오던 터였다. 그러나 여러 차례 후보지가 지정되고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해 구체적인 건립 계획은 번번이 진전을 보지 못했고, 결국 이 요구가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곳은 매립으로 새로운 택지가 만들어지고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대규모 공공시설 용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잠실지구였다.

이에 따라 1970년 12월,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가 수립한 "잠실지구 종합개발계획"이 발표되었다. 이 계획은 15만 평의 종합경기장 시설계획을 포함하여 총 210만 평(공유수면 매립지 83만 평과 토지구획정리사업구역 127만 평)의 잠실지구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종합계획안이었다. 인구 약 10만 명을 수용하는 지구로서 격자형 가로망과 근린주구 방식의 주거지 계획을 담고 있었지만, 이 단계에서 잠실의 위상은 어디까지나 "도심과 부도심을 연결하는 베드타운(Bed Town)", 즉 종합경기장이라는 특수 기능을 품은 주거 환경 지구에 머물러 있었다. 계획과 함께 매립공사도 속도를 냈다. 1971년 6월 건설부고시로 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명령이 내려지면서 공유수면 매립공사가 공식 착공되었다. 여름이면 물에 잠기던 잠실도가 한강변의 현대적인 시가지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서울특별시도시계획잠실토지구획정리사업계획서(안)

서울특별시도시계획잠실토지구획정리사업계획서(안)

중단없는 전진을(대한뉴스 제816호)

중단없는 전진을(대한뉴스 제816호)

잠실의 매립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2년, 서울시는 강남 개발의 핵심지역인 영동·잠실지구의 도시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토지구획정리사업 방식이 평면적인 계획으로 단시간에 시가지를 조성하는 데에만 치우쳐 있다는 문제의식과 더불어, 아시안게임 반납 이후 보다 계획적이고 이상적인 현대도시를 만들어 국제적 위상을 높이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영동·잠실지구를 "선진 대도시 수준의 세계적인 이상 도시"로 개발한다는 지침 성격의 "영동·잠실 신시가지 조성계획"을 발표했는데, 잠실 매립지의 자연 수면을 이용해 호수를 조성한다는 구상, 즉 오늘날 석촌호수의 원형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 계획에서였다. 이어 1973년 10월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이 구획정리 위주 개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종합적인 개발계획의 수립을 지시하자, 1970년의 계획은 중단·전면 수정되어 1974년 7월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으로 다시 태어났다. 두 계획 사이의 차이는 토지이용의 방향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1974년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 조감도 (출처 :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 서울특별시, 1974)

1974년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 조감도
(출처 :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 서울특별시, 1974)

1970년 계획이 주택용지 위주의 베드타운 조성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1974년 계획은 공원녹지의 비중을 대폭 높이고 업무지구를 새롭게 배치하여 일과 여가와 상징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담았다.

1974년 계획은 국내 최초로 도시설계 수법이 적용된 새로운 방식의 개발계획이었다. 도시의 밑그림을 먼저 완성한 뒤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시행하는 '선계획 후개발' 방식으로, 인구 25만 명을 수용하는 뉴타운 조성을 목표로 하였다. 계획의 기조는 '도시다움(Urbanity)의 추구'였다. 커뮤니티의 유기성에서 랜드 마크와 업무기능 유치까지 10가지 미래상이 제시되었고, 오늘날 잠실의 골격을 이루는 방사환상형 가로망이 이때 그려졌다. 무엇보다 이 계획은 잠실의 역할을 단순한 베드타운에서 강남의 부도심으로, 나아가 명실상부한 '올림픽타운'으로 격상시켰다. 서울올림픽이 유치되기 7년 전, 잠실은 이미 미래의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1974년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 중심지구 조감도 (출처 :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 서울특별시, 1974)
1974년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 아파트 지구 조감도 (출처 :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 서울특별시, 1974)

1974년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 중심지구 및 아파트 지구 조감도
(출처 :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 서울특별시, 1974)

잠실종합운동장은 1970년 "잠실지구 종합개발계획"의 일부로 '공설경기장 시설계획'이 수립된 이후, 1975년 "잠실종합운동장 신축공사 기본계획"에서 현재의 근간이 되는 기본계획이 마련되었다. 이후의 변경은 1975년안을 중심으로 세부가 조금씩 바뀌어 간 것이므로, 두 계획안을 나란히 놓고 보면 5년 사이 설계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드러난다. 국제 대회의 무대이자 평상시에는 시민의 운동공원이어야 한다는 지향은 같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달랐다.

1970년안이 동서축을 따라 경기장들을 원형으로 늘어세워 기념비적인 '형태'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1975년안은 경기장을 '도시와의 관계' 속에 다시 앉혔다. 곧 지하철역이 들어설 남쪽 도로를 정문으로 삼고, 10만 관중이 쏟아져 나올 주경기장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가장 안쪽 강변에,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들 실내체육관과 야구장은 역에서 가까운 입구 곁에 두는 식이었다. 오늘날 잠실야구장을 나선 관중이 자연스럽게 지하철역으로 흘러드는 동선은 이미 이때 그려진 것이다.

1970년 '공설경기장 시설계획'

1970년 ‘공설경기장 시설계획’

1975년 잠실종합운동장 기본계획

1975년 잠실종합운동장 기본계획

1975년 계획안에서 제2실내체육관은 1973년 여자 탁구의 세계선수권 제패를 계기로 탁구전용회관으로 계획되었다. 이후 체육계의 의견을 수렴한 수정안에서 수영장·사이클경기장·야구장이 추가되었고, 탁구회관도 용도를 넓혀 종합실내체육관으로 변경되었다. 이 체육관(현 잠실실내체육관)은 1976년 잠실종합운동장의 경기장 시설 가운데 가장 먼저 착공되었다.

1977년 잠실체육관 전경(현 잠실실내체육관)

1977년 잠실체육관 전경(현 잠실실내체육관)

1979년 잠실체육관 전경

1979년 잠실체육관 전경

잠실실내체육관 공사 현장

잠실실내체육관 공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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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말부터 지명 현장설계가 실시되었으며, 단지 전체의 마스터플랜이 마련되었다. 이 마스터플랜에서 처음으로 경기장들을 잇는 인공대지(데크)가 계획되어 보행자와 차량을 입체적으로 분리하게 된다. 잠실종합운동장의 각 시설에는 당대 한국 건축의 역량이 집약되었다. 특히 주경기장은 한국 전통 도자기의 부드러운 곡선을 지붕선에 담아낸 것으로 이야기되며 서울의 대표적인 현대 건축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77년 11월 착공된 주경기장은 1984년 9월에야 완공되었다. 부지면적 약 41만 3천㎡에 10만 명을 수용하는 이 경기장에는 공사비 462억 5천만 원이 투입되었다. 그에 앞서 실내체육관(1979년)과 실내수영장(1980년), 야구장(1982년)이 차례로 완공되었으니, 잠실종합운동장은 첫 계획 수립부터 개장까지 14년에 걸쳐 완성된 셈이다. 주목할 점은 주경기장과 야구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이 1981년 올림픽 유치 확정 이전에 이미 완공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잠실에 실내 수영장 개장(대한뉴스 제1313호)

잠실에 실내 수영장 개장(대한뉴스 제1313호)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개관식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개관식

공사가 한창이던 잠실종합운동장은 서울의 개최 능력을 검증하러 방한한 국제 스포츠계 인사들의 필수 방문지가 되었고, 한 차례 국제 대회를 포기해야 했던 서울이 올림픽을 치러낼 수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되었다.

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장 사마란치 잠실 수영장 방문(1)

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장 사마란치 잠실 수영장 방문(1)

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장 사마란치 잠실 수영장 방문(2)

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장 사마란치 잠실 수영장 방문(2)

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장 사마란치 잠실 수영장 방문(3)

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장 사마란치 잠실 수영장 방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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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유치 후인 1982년 체육부의 총합계획에 따라 부지가 협소해진 사이클경기장과 체육학교가 올림픽공원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체육학교가 떠난 자리는 새 시설 대신 조경과 식재를 통해 시민의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현재의 잠실종합운동장이 완성되었다.

1982년 잠실종합운동장 항공사진

1982년 잠실종합운동장 항공사진

1986년 잠실종합운동장 전경

1986년 잠실종합운동장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