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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보는 남북회담

  • 첫걸음 1972 7.4 남북공동성명
  • 1991 남북기본합의서
  • 1992 한반도비핵화선언
  • 2000 베를린선언 햇볕정책
  • 2000 6.15남북공동선언
  • 2007 남북정상회담

남북회담이란

  • 남북회담 개요
  • 남북회담 - 한눈에 보기
  • 남북회담 - 회차벼8ㄹ 남북회담

남북회담 개요

해방과 동시에 분단된 남과 북은 1960년대까지 국제체제의 냉전 상황 하에서 거의 남북분단의 해체 노력에 적극 나서지 못한 채 매우 제한된 형태의 문제제기 혹은 정치적 선전의 장에 머물렀다.

1970년대

그러나 1970년대 초에 냉전적 국제사회의 화해·협력 분위기가 도래함으로써 남과 북은 남북대화의 장에 나서는 등 1970년대 초부터 과거와 달리 활발하게 상호 대화와 접촉을 적극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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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8월 남한의 제의에 따라 분단 26년만에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됨으로써 인도적 분야에서부터 남북대화가 시작되었다. 남북고위당국자간에도 비공개접촉과 방문을 통해 1972년 분단 이후 최초로 합의문서인 <7·4 남북공동성명> 이 발표되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3원칙을 합의하였다.

남북적십자회담 모습

그러나 1970년대에는 여전히 남과 북의 주민들간에 실질적인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에 들어와 남과 북은 당국차원에서 교류·협력의 증대를 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사회문화분야에서는 <체육회담> 과 <적십자회담> 등이 있었고, <남북경제회담> 과 <국회회담> 을 위한 예비접촉 등 정부와 정치분야에서의 공식적인 접촉이 행해짐으로써 남북대화의 창구도 다양화시키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특히 1984년 9월 북한의 대남 수재물자 제공 제의를 남한이 받아들임으로써 동년 11월 <남북경제회담> 을 시작으로 <적십자회담> ,<국회회담>,<체육회담> 등 일련의 남북회담이 열리고, 1985년 9월에는 분단사상 최초로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이 성사되는 남과 북의 주민들간에 교류물꼬가 트이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1990년대 초에 들어와 남과 북은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국가권 붕괴를 계기로 탈냉전이 가속화되는 국제질서의 대흐름에 영향을 받아 1990년 9월 분단사상 최초로 남북총리의 수석대표로 한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하였고, 1991년 9월 UN에 동시 가입하였고, 1992년 2월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 와 <한반도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1994년 7월 남과 북은 분단사상 최초로 <남북정상회담> 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으나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그 회담이 성사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제도화된 틀 속에서 남과 북의 교류·협력은 199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하였으며, 1990년대 말부터 상당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주었다.

2000년대

결정적으로 2000년에 들어와 남과 북은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한반도의 분단사상 최초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을 개최하였고, 이 회담의 결과로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한의 두 정상에 의해 합의·서명된 문서인 <6·15 남북공동선언> 을 대내외에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이처럼 <남북정상회담> 의 개최에 따른 <6·15 남북공동선언> 이 합의·발표됨으로써 남북관계는 냉전적 대결에서 공존적 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맞이하였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냉전체제·동서체제·양극체제가 이미 20세기의 유물로 사라졌다. 그 가운데 국제사회는 기본적으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의 진전에 지지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미·일·중·러 등 한반도의 주변4국은 한반도에서 긴장고조를 원하지 않는 가운데 표면적으로나마 남북관계의 해빙을 지지하고 있다.

심지어 2002년 북한핵문제의 발생이후에도 미·일·중·러 등 한반도의 주변4국은 북한핵문제의 해결에 있어서1990년대초와 달리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대화와 설득을 중시하며 6자회담의 구도로 접근하고 있다. 남·북한 관계의 차원에서는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다양한 남북대화의 진행, 인적·물적 교류의 획기적 증대, 이산가족교류의 활성화, 한반도의 긴장완화 등 다방면에서의 의미 있는 진전이 아주 크게 이루어졌다.

2007 남북정상회담 개최

2007년 남과 북은 8월5일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합의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는데 합의했다. 그리고 또다시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2007년 남북정상의 상봉은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과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확대발전시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는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남북한 두 정상은 10월 4일, 8개 항목과 2개의 별도 항목을 포함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을 발표하였다.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을 발표하였으나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거부하고 남북대화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을 시작으로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실험발사, 천안함 폭침사건 등을 도발함으로써 남북관계는 경색되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개최되었다. 남과 북은 지난 3월 29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남북고위급회담을 진행하였고, 이 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문제들을 협의하고, 회담 일자와 장소를 합의한 후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양 정상은 회담직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고,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천명하였다.

35208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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