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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독립활동

주요독립활동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정부의 부름을 받지 않고 스스로 무장한 의병이 일제 침략에 무력으로 항쟁한 민족운동. 1894년 갑오 변란과 청·일전쟁부터 시작된 의병운동은 191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으며, 일제하 만주, 연해주일대로 망명하여 독립군으로 전환되는 등 독립전쟁을 전개할 수 있는 인적, 정신적인 연원이 되었다. 이는 한국민족운동의 주조(主潮)로서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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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 배경]

갑오개혁, 을미사변과 이후 단행된 변복령,단발령 등은 의병운동을 일으킨 직접적인 계기였다. 을미사변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침략행위로서 국민들로 하여금 일제와 친일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솟구치게 하였다. 의복제도를 조선의 문화적 긍지의 척도로 인식하고 있던 수구적 지식인들은 변복령 반포를 심각한 문화적 위기로 인식하였다. 단발령은 한민족의 문화적 자존심의 표상이던 상투를 제거함으로 전 국민의 울분을 자아내는 등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혼란을 야기했다. 사상적 배경은 유생들의 중심 이념체계인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과 일반민에 퍼져 있던 척왜양창의론(斥倭洋倡義論)이었다.

[경과 과정]

전기의병은 1894년 7월 서상철(徐相轍)이 안동향교에서 거의한 안동의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갑오변란 직후 이미 지평의 안승우(安承禹), 홍주의 안창식(安昌植), 철원의 홍범도(洪範圖) 등은 모병 단계에서 끝났지만, 안동의병과 김원교(金元喬)의 상원의병은 의병을 모집하여 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을미사변 직후인 1895년 9월 18일 문석봉(文錫鳳)이 유성에서 봉기한 유성의병은 국수보복(國讐報復)을 기치로 시작되었다. 문석봉 외에 을미사변 직후의 의병으로는 강계의병이 있다. 광무황제의 단발소식과 단발강요는 전국적인 의병봉기는 이천,춘천,제천,홍주,강릉,진주,장성,나주 등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특히 제천의병은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 등이 포군장 김백선(金伯先)을 비롯한 포수 400여 명을 주병력으로 하여 1천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원주관아를 점령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천의병은 김백선의 처형사건이 발생하고 제천 남산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한 후 서행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1896년 10월경을 기하여 전기의병은 표면적으로 해산되었다.

중기의병은 러일전쟁,한일의정서,을사늑약 등 일련의 일제의 침략정책에 항거하여 일어난 후 1907년 정미의병 이전까지 전개되었다. 중기의병의 대표적인 의병부대로는 경기,강원도의 원용팔(元容八),정운경(鄭雲慶) 의병부대, 경상도의 신돌석(申乭石)의병과 영천의 산남의진, 충청도의 홍주의병, 전라도의 최익현(崔益鉉),고광순(高光洵)의병, 양서지역의 우동선,전덕원 의병 등이 대표적인 의병부대이다. 이밖에 김하규(삼척),박장호(홍천),최도환(양구),이범주(양평,여주),박석여(죽산,안성)가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의병진은 홍주의병,산남의진 등이었다. 중기의병은 전기의병의 한계로 지적되던 지역성,학통성,혈연성 등을 어느 정도 극복하였다.

후기의병은 1907년 7월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통감부의 간섭을 강화하는 한편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킴으로써 비롯되었다. 일제가 한국 식민지화를 가속화시키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후기의병은 유생을 비롯하여 해산된 군인들과 평민,천민,상인,농민 등 다양한 전계층이 동참하여 항일전을 펼쳤다. 군인출신의 의병 가담은 부대 편성과 전략에 큰 향상을 이룰 수 있었다. 원주진위대와 강화진위대의 해산군인들도 의병에 합류하거나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반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후기의병은 독립전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와 활동면에서 전국적으로 확대,발전할 수 있었다. 1908년 초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진공작전은 규모와 활동에서 이전 의병전쟁과 다른 면을 보여준다. 이것은 일제의 침략야욕이 분명해짐에 따라 위기의식을 느낀 전 민중이 의병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의병전쟁은 1908년 이후 1910년대 초까지도 끊임없이 계속되었으며 국망 이후에 살아남은 의병들은 만주,연해주일대로 망명하여 독립군으로 전환함으로써 독립전쟁을 수행하였다.

[역사적 의의]

의병전쟁은 1894년 갑오의병이 봉기한 이래로 1910년대 초까지 지속된 반제국주의 성격을 보여준다. 의병전쟁은 일제 군사력과 비교도 안 되는 열악한 상태에서 투쟁함으로써 비록 국권회복이라는 목적은 달성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전민족적 항일세력을 형성하여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등 일제강점기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저항정신의 기반을 제공하였다.

글: 김형목(독립기념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