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청사(광화문)치안시설·전매시설

경찰관 파출소

파출소는 주재소와 함께 일제강점기 경찰조직의 최하위 기관이었다. 일제강점기 초기, 치안 업무는 1910년 6월에 공포되고 7월에 시행된 <통감부경찰관서관제(統監府警察官暑官制)>를 그대로 계승하여 운영되었다. 즉, 외국(外局)으로서 경무총감부(警務摠監部)가 치안 조직의 최고기관으로 설치되고, 그 산하에 각 지방의 경무부를 두고, 그 휘하에 각 경찰서 및 파출소를 두는 방식이었다. 당시 파출소가 설치된 지역과 명칭은 1910년 8월에 고시된 조선총독부고시 제170호 <순사파출소 및 순사주재소의 명칭 위치의 개정(巡査派出所及巡査駐在所ノ名稱位置中左ノ通改正ス)>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도합 85개소의 파출소가 전국에 설치되었는데, 대체로 부(附)에 속한 지역에 파출소가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후 파출소는 계속해서 증설되었는데, 1914년 관제 개편으로 인해 그 수가 108개소로 증설되며, 기존의 헌병경찰제가 보통경찰제로 개편되는 1919년에는 경찰 조직에 대대적인 관서관제의 개편이 단행되어, 경찰 직무를 수행하던 헌병관서를 인수하게 되면서 대략 160~210여개의 파출소와 2,330여개의 주재소가 일제 강점기 후반까지 운영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파출소 관련 도면의 수량은 모두 44매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출소 관련 도면
명칭 설치지역 최초 설치연도 관할경찰서 도면수
전동 순사파출소 경성 1908년(추정) 중부 경찰서 1
수유리 순사파출소 경성 1908년(추정) 동부 경찰서 1
남산 순사파출소 경성 1910년 남부 경찰서 1
영락정 순사파출소 경성 1910년 남부 경찰서 1
모교 순사파출소 경성 1910년 서대문 분서(북부) 3
신정 순찰파출소 경성 1910년 남부 경찰서 1
동대문 순사파출소 경성 1910년 동대문 분서(남부) 1
장곡천정 순사파출소 경성 1914년 남부 경찰서 1
청량리 순사파출소 경성 1914년 고양 경찰서 1
동묘 순사파출소 경성 1914년 동대문 분서(북부) 1
황금정 일정목 경관파출소 경성 1914년 황금정 분서(남부) 2
견지동 순사파출소 경성 1914년 북부 경찰서 2
황금정 순사파출소(3정목 추정) 경성 1914년 황금정 분서(남부) 2
광화문전 순사파출소 경성 1914년 북부 경찰서 1
욱정 경찰관파출소 경성 - 본정 경찰서 1
영성문 순사파출소 경성 - - 5
경성 경찰서 각 부 파출소 경성 - - 2
경성 내 순사파출소 경성 - - 1
경성 내 도 내 동지 파출소 경성 - - 1
화정 순사파출소 경남 - 부산 경찰서 1
보수정 순사파출소 경남 1910년 부산 경찰서 1
부산 정차장전 순사파출소 경남 1910년 부산 경찰서 1
절영도 순사파출소 경남 1910년 부산 경찰서 2
서문 순사파출소 경북 1914년 대구 경찰서 1
대구 정차장전 순사파출소 경북 - 대구 경찰서 1
대구 순사파출소 경북 - 대구 경찰서 1
목포경찰서 해안 순사파출소 전남 1914년 목포 경찰서 1
목포 정차장전 순사파출소 전남 1914년 목포 경찰서 2
군산경찰서 해안 순사파출소 전북 1914년 군산 경찰서 1
상리 파출소 함남 1914년 원산 경찰서 1
원산 정차장전 경찰관파출소 함남 - 원산 경찰서 2

* 파출소 설치 년도 및 관할경찰서는 조선총독부고시 제170호 <순사파출소 및 순사주재소의 명칭 위치의 개정(巡査派出所及巡査駐在所ノ名稱位置中左ノ通改正ス)>의 내용과 조선총독부고시 제338호 <순사파출소와 주재소의 명칭위치 대정 3년 9월 1일 별표의 개정(巡査派出所及巡査駐在所ノ名稱,位置大正3年9月1日ヨリ別表ノ通改正ス)>의 내용을 참고 하여 작성하였다.

파출소 관련 도면 중 작성연대를 알 수 있는 도면은 동대문순사파출소(1915), 견지동 파출소(1919), 황금정 일정목 경관파출소(1918), 군산경찰서 해안순사파출소(1923)의 4개 시설의 도면뿐이다. 반면, 작성 연도가 기재되지 않은 나머지 파출소 도면의 연대를 구체적으로 추정하기가 어렵다. 파출소는 1919년 대대적인 관제개편 이후 꾸준히 증가되었고, 따라서 일제강점기 후반까지 파출소의 정비나 신축이 빈번히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파출소와 관련한 국가기록원 소장 도면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경성 지역의 파출소 도면이다. [도판1][도판2]는 ‘경성경찰서 각부 파출소 신축도면’으로 도면에 중부경찰서가 기재되어 1908년에서 1910년 사이에 작성된 도면으로 추정된다. 중부경찰서는 1908년 설치되어 1910년 <통감부경찰관서관제>의 시행과 함께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두 도면에는 총 7개 파출소의 배치도가 포함되었다. 배치도를 살펴보면 파출소 정면에 따로 표문이나 담장을 설치하지 않고 건물이 바로 길가에 면하여 그 입지를 정하였음이 확인된다. 이는 치안조직의 말단 시설로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순찰 등의 실제적인 치안 업무를 편리하게 하고 민원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나아가 [도판3]은 경성 내 효교·석교·금교·십자교 순사파출소 등의 위치를 표시한 것으로 이러한 파출소 설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도면이다. 이 도면에는 서대문 인근, 경복궁 인근, 종로 5가 인근의 배치도가 기재되어 있다. 특히, 경복궁 동쪽에는 수문동(水門洞) 분서(分署)가 기재되어, 분서가 설치되었던 1910년에서 1914년 사이에 도면이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도면은 서대문·경복궁·종로5가 근처의 도로와 필지 상황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것이다.

이 밖에도 남산·모교·장곡천정·동묘·청량리·황금정·영성문·원산 정차장·원산 상리·부산 화정·대구 서문·부산 절영도 순사파출소 등 배치도가 확인되는 대부분의 파출소 도면에서 도로에 면한 배치가 확인되어, 이것이 일제강점기 파출소에 일반적인 경향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도판1][도판2]에는 당시 경성 지역 파출소의 기본 평면 계획으로 추정되는 평면도가 실려 있다. 파출소의 평면은 견장소(見張所)와 휴게소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휴게소가 오른쪽에 붙는 것과 왼쪽에 붙는 것의 두 가지 유형이 확인된다. 각 배치도를 보면 두 유형은 선택적으로 적용되었는데, 대지의 여건에 따라 견장소로의 출입이 용이한 유형이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파출소 평면은 장방형인데 그중 장변이 정면으로 계획되었으며, 견장소 안쪽에는 벽장과 반침 등이 설치되었다. 이렇게 장방형 평면을 양분하여 사무실과 휴게실로 사용하는 계획은 파출소 관련 국가기록원 소장 도면 전체에서 나타나는 양상으로, 일제강점기 파출소의 일반적인 평면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본 평면 계획을 바탕으로 대지의 규모, 형상 등에 따라 파출소의 평면 계획은 여러 가지 변형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도판4]의 대구순사파출소는 대지가 좁고 길어, 건물의 단변을 파출소의 정면으로 사용하고, 사무실이 앞쪽에, 휴게실이 뒤쪽에 있다. 또 [도판5]의 황금정일정목파출소에서는 화장실이나 세면실이 부가되면서 장방형 평면을 ‘ㄱ’자 혹은 ‘ㅗ’자로 변형하였다.

한편, 휴게실은 다다미를 깔도록 계획되어 휴식뿐만 아니라 숙직 등의 업무를 위한 공간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다다미와 함께 온돌을 설치한 파출소의 계획이 흥미롭다. [도판7]은 ‘경성 내 도내 동지(冻地) 파출소 신축 설계도’로 작성 연대를 정확히 추정하기는 어려우나 다른 파출소와는 다른 평면 계획을 보여준다. 제목에서처럼 추운 지역에 설치할 용도로, 건물의 장변이 정면으로 사용되고 그 중앙에 현관이 계획되었다. 현관 안쪽으로는 복도가 시설되어 각 실을 연결하였는데 건물의 오른쪽 안쪽에 온돌방이, 온돌방의 맞은편에는 욕실이 배치되었다. 또 건물 뒤편의 창고와 변소가 파출소 건물과 복도로 연결되었다. 즉, 추위를 고려하여 온돌이 설치되고, 변소로의 통로도 실내화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파출소는 매우 간소한 건물이었다. 국가기록원 소장 도면을 통해 확인하면 대부분이 단층 양식목조 건물로, 외벽은 누름대 비늘판벽으로 단순하게 마감되었다.([도판8], [도판9], [도판10] 참고) 그러나 광화문 앞 경찰서, 신정(新町) 파출소·황금정 일정목(黃金町壹丁目) 순사파출소·욱정(旭町) 경찰관파출소는 벽돌조였는데, 당시 이렇게 관립기관의 말단 시설에까지 벽돌조 구법이 적용된 것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즉, 이들 파출소에 벽돌조 구법이 사용된 것은 사람의 왕래가 많은 번화가에 설치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벽돌조 계획은 일제 강점기 치안 조직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도판5], [도판11], [도판12] 참고) 특히, [도판13]에서 확인되는 1923년의 욱정 경찰관파출소는 벽돌조 벽체에 더하여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한 평지붕으로 계획되어 더욱 흥미롭다. 출입구를 구성하는 포치 역시 철근콘크리트로 아치를 만들어 구성되었으며 포치 위 벽면과 패러핏에도 장식을 가미하여, 다른 파출소들에 비해 더욱 권위적인 외양이 완성되었다.

[참고도판]

  • 도판1. 경성경찰서각부파출소신축지도 / 3, 1908~191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2. 경성경찰서각부파출소신축지도 / 2, 1908~191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3. 경성시내효교외오소순사파출소신축배치도 / 24, 1910~14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4. 대구순사파출소신축설계도, 1910~4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5. 황금정일정목 경찰관 파출소 신축 설계도 / 6, 1918 상세보기
  • 도판6. 동부경찰서소관대수유리순사파출소이전모양체병증설설계도 / 11, 1908~191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7. 경성내도내동지파출소신축설계도 / 25, 1910~4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8. 장곡천정순사파출소신축공사설계도, 1914년경 추정 상세보기
  • 도판9. 견지동순사파출소신축설계도, 1919 상세보기
  • 도판10. 부산보수정순사파출소신축설계도 / 55, 1910~4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1. 신정순찰파출소개축공사설계도, 1910~4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2. 광화문전순사파출소신축공사설계도, 1910~4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3. 본정경찰서욱정경찰관파출소신축공사설계도, 1923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