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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들었어요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돌아가신 후에 편찬되었습니다. 왕이 사망하면 임시로 실록청을 설치하여 실록 편찬을 공정하게 실행하였습니다. 실록청에서는 사관이 작성한 사초(史草)와 시정기(時政記), 《승정원일기》 등 여러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실록 편찬을 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책은 편찬이 완료되면 왕에게 보여드렸지만, 실록은 왕도 볼 수 없었습니다. 왕이 실록을 보게 되면, 실록 편찬의 임무를 담당하는 사관의 독립성이 보장을 받지 못하고 사실이 왜곡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만들어진 실록이 모두 완료되면 실록을 사고(史庫)에 봉안합니다. 이때 실록 편찬에 사용되었던 기록들은 모두 물로 빨아 내용이 보이지 않게 합니다. 이것을 ‘세초(洗草)’라고 합니다. 이렇게 세초를 한 이유는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들이기 때문에 그 기밀이 유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세초를 하지 않고 모두 소각했으나, 조선왕조는 종이를 아끼기 위해 재생해서 사용했습니다. → 선조들의 절약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세초는 세검정 부근에 있는 차일암(遮日巖)에서 실행되어 종이를 만드는 기관인 조지서(造紙署)로 보내져 재활용 되었습니다. 세초가 모두 끝나면 국왕은 신하들에게 세초연을 베풀어 실록편찬을 축하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조문명(趙文命,1680∼1732)이 『숙종실록』을 편찬한 뒤 세초연에 참석하여 쓴 시 입니다.

寸管那能盡畵天
작은 붓으로 어찌 하늘을 다 그려 내리요?
於休盛德百王前
아아! 성대한 덕은 백왕보다 앞서도다.
十年始訖編芸役
십년 만에 비로소 실록 편찬의 일을 마치고
暇日初開洗草筵
한가한 날에 사초 씻는 잔치를 막 열었네.
晩後溪炊當美饌
저녁에 시내에서 밥 지으니 맛난 음식이요,
雨餘山水勝鳴絃
비온 뒤의 물소리는 거문고 소리보다 낫네.
舊時簪筆今如夢
지난날 붓을 들었던 것이 이제 꿈결 같은데
手閱成書更泫然
직접 완성된 책을 보니 다시금 눈물이 흐르네.
(조문명, {학암집} 권2, <세초연(洗草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