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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와 월드컵 세대

외국의 그 어떤 국가 대표팀 서포터스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조직적인 경기 응원과 장관을 이뤘던 길거리 응원의 핵심에는 ‘12번째 태극 전사’로 불렸던 ‘붉은 악마’(Red Devils) 가 있었다.

1995년 12월 PC통신 하이텔의 10여 개 축구 동호회 운영자들이 모여 축구 응원 문화의 개선을 위한 ‘칸타타 선언’을 했을 때 새로운 응원 문화를 보여줄 ‘붉은 악마’의 태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8월 정식 명칭을 확정한 붉은 악마는 ‘치우천왕’(蚩尤天王, 1999년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첫 선을 보임)기를 앞세우며 국가 대표팀의 A매치 때마다 열광적인 응원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Be the Reds’ 를 외치면서 세계인들에게 응원 문화의 전범을 보여주며, 과격한 훌리건(Hooligan)과 온건한 롤리건(Roligan)의 장점을 취한 합성어 ‘콜리건’(Korligan)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붉은 악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 신세대 응원단이 “상업주의의 철저한 배격과 아마추어리즘을 고집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모임의 출발점이었던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훼손하지 않고 지킨 것이, 붉은 악마가 어떤 잡음도 없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낸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단순한 응원 집단을 뛰어 넘어 일종의 문화적 키워드로 받아들여진 붉은 악마는 W세대(월드컵 세대)라는 ‘신인류’의 탄생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의 이들 W세대들은 이념이 아닌 재미와 취향을 구심점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기왕의 4 · 19세대나 6 · 3세대 그리고 386세대와는 차별되는 세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태생적 차이로 인해 W세대들은 이전의 세대들이 보이지 않던 몇 가지 특성을 나타내었다. 우선 이들은 취향과 공통의 재미를 추구할 수만 있다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동화될 수 있다는 특징을 보였다. 이것은 이들이 외국에 대한 배타성이나 과거사와 연관된 열등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화보집(2003)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화보집(2003)

매 경기마다 박빙의 승부를 펼쳤던 한국전에서도 상대팀을 비방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응원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심지어 결승행을 판가름하는 독일과의 준결승전이나 터키와의 3위 결정전에서는 상대팀을 응원하기 위한 응원단을 조직하는 여유까지 선보인 것이다. 즉 이들의 애국심은 배타성이 제거된 것이었고, 이를 두고 기성세대 들은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세대의 등장” 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상상할 수 없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준 W세대들이 들고 나온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표현 양식으로 삼은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국기인 태극기였다. 그러나 W세대들은 오로지 신성의 대상이던 국호와 국기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냈다.

그들은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재발견하여 국호는 응원 구호로 태극기와 붉은 색은 패션 소도구로 삼는 발랄함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기성세대들의 금기를 일시에 깨는 놀라운 발상이었고, 자기희생과 집단주의에 발이 묶여 있던 이전 세대들에게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이었다.

우리나라 경기 길거리 응원 참가 현황

우리나라 경기 길거리 응원 참가 현황
경기 경기일시 경기장소 길거리 응원
참가인원(경찰청 추계)
대 폴란드 6. 4 부산 50만 명
대 미국 6. 10 대구 77만 명
대 포르투갈 6. 14 인천 279만 명
대 이탈리아(16강) 6. 18 대전 420만 명
대 스페인(8강) 6. 22 광주 500만 명
대 독일(4강) 6. 25 서울 700만 명
대 터키(3, 4위전) 6. 29 대구 400만 명
연 인 원 2,876만 명

이번 2002 FIFA 월드컵™ 기간 동안 길거리 응원에 나선 국민의 수는 연인원 약 2천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전 국민의 43%에 달하는 수치로 서울의 경우, 시청 앞과 광화문 네거리에만 여섯 차례에 걸쳐 무려 8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던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응원 방식과 규모였고, 연인원 420억 명에 이르는 지구촌 시청자들은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에너지의 분출이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자발적이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발성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유지된 질서와 청소 같은 뒷정리에서도 발견되었으며, 그 중심에는 W세대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두고 훌리건들의 난동에 익숙해 있던 외국의 축구팬들과 외신들은 앞 다투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보도하였다.

국호를 한국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사회적 금기의 색이었던 붉은 색을 신바람과 활력의 상징으로, 신성의 대상이었던 국기를 친숙한 소지품의 항목으로 치환시킨 W세대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집단주의의 수직적 공동체주의를 벗어나 개인주의에 기초한 수평적 결합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민 개개인의 자발적인 역동성이 미래 사회를 이끌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한 경험이 되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과도한 승부욕에서 벗어나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여유와 유연성 그리고 창의성을 발휘한 W세대들이야말로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발견한 귀중한 보석이자 풍성한 수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