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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진)UN군 참전기념(영국), 1951, DH20000084

UN군 참전기념(영국), 1951, DH20000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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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N군 참전기념(영국), 1951, DH20000085

UN군 참전기념(영국), 1951, DH2000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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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병력을 한국에 파견했다. 영국의 참전은 유엔군 창설 이전에 이루어졌다. 영국 육군은 먼저 홍콩에 주둔 중인 2개 대대와 지원부대로 제27여단을 구성해 곧바로 낙동강 방어작전에 뛰어들었으며, 제27여단은 압록강으로의 북진작전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후 영국은 추가로 제29여단을 편성해 참전했다.

제29여단이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제8군의 작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중공군 5차 전역(4월 공세) 당시 벌인 임진강 남안의 설마리 전투에서이다. 제29여단은 1951년 4월 22일 한국군 제1사단의 방어선이 붕괴돼 우측의 글로스터(Gloucester) 대대가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3일간 진지를 굳건히 지켜 좌우측의 아군을 위기에서 구출했다.

이후 영국은 영연방 국가의 부대들이 도착하자 모두 통합해 1951년 7월 28일 영연방 제1사단을 창설했다. 영연방 제1사단은 영국을 비롯해 호주·캐나다·뉴질랜드·벨기에·룩셈부르크 등 모두 6개국 군으로 구성됐는데, 이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영국 해군은 1950년 6월 29일께 항공모함 1척, 순양함 2척, 구축함 2척, 프리깃함 3척을 파견해 미 극동해군사령부의 작전지휘하에서 미 해군함정과 함께 동서 해상의 작전에 동참했다. 이후 영국은 연인원 약 1만 7천 명의 해군병력이 한국작전에 참가했으며, 50여 척의 함정이 종전 때까지 교대로 해상작전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