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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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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내 관유재산 관리환

기록물 이미지를 준비 중입니다.

분류
: 세무 > 관유재산관계 > 매불, 대부,양여, 교환, 기부 관계 > 경성부 관련 기록물철
생산년도
: 소화4년 ~ 소화5년(1929년 ~ 1930년)
생산부서
: 재무국 세무과
관리번호
: CJA0003977
문서번호
: 88-38
M/F번호
: 88-873
총쪽수
: 9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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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30년 조선총독부 재무국(財務局) 세무과(稅務課)가 경성부(京城府) 내에 위치했던 관유재산(官有財産)의 관리환(管理換)과 관련하여 생산·접수한 문서들이 편철되어 있다. 기록물철번호는‘소화(昭和) 4·5년 갑종(甲種) 1,358호’이고 재무류(財務類) 관유재산목(官有財産目) 관리환절(管理換節)의 유목절(類目節) 체제를 따르고 있다. 이 기록물철은 1923년 10월 13일 정무총감(政務摠監)이 각 국부장(局部長)·소속관서의 장에게 보낸 <각성 관리관유재산의 관리환에 관한 건(各省管理官有財産ノ管理換ニ關スル件)>(관통첩(官通牒) 제92호)과 관련이 깊다. 즉, 정무총감은 현재 각 국부(局部)에서 관리하고 있는 관유재산 중에 일본의 각 성(省)이 관리했던 것에 대해 직접 관리환(管理換) 상황을 일본 각 성(省)에 조회하고 이를 내무국 토목부(土木府)에 신고토록 하였던 것이다. 이는 일본 육군(陸軍)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이 기록물철에서도 보이듯이 1910년대 일본 육군(헌병)이 사용했던 건물·부지를 10 여년이 지난 1929년에서 1930년 시점에서 조선군 경리부장(朝鮮軍經理部長)과 조선총독부 재무국장(財務局長) 사이 수수증(授受證)을 통한 인계인수(引繼引受)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매 건은 조선총독부 재무국장(財務局長)과 각 도지사·조선군 경리부장(朝鮮軍經理部長)간 주고받은 문서와 <관유재산수수증(官有財産授受證)>·관련 도면 등이 첨부되어 있다.

목록

번호 기록물건명 생산년도 생산부서 쪽수 공개구분 원문보기
5 표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1 공개가능 원문보기
4 원한 강통 헌병출장소의 일부 및 건조물 관리환에 관한 건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15 공개가능 원문보기
3 색인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1 공개가능 원문보기
2 경성부한 강통소재 육군용지 관리환의 건(지도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23 공개가능 원문보기
1 경성부 동사헌정 소재육군 용지를 도로부지로 관리환의 건(지도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51 공개가능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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