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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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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유재산 관리환(북)

기록물 이미지를 준비 중입니다.

분류
: 세무 > 관유재산관계 > 매불, 대부,양여, 교환, 기부 관계 > 관유재산 관리환 관련 기록물
생산년도
: 소화4년 ~ 소화7년(1929년 ~ 1932년)
생산부서
: 재무국 세무과
관리번호
: CJA0003991
문서번호
: 88-52
M/F번호
: 88-880
총쪽수
: 87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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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32년 일제의 군대 및 각지에서 요청한 관유재산 관리주체 변경에 대한 결재와 답변 기록물이다. 기록물철 번호는 ‘소화(昭和) 4·5·6·7년 갑종(甲種) 2,343호’이고, 16건의 문건이 편철되어 있다. 이 기록물철은 각지의 조선총독부의 소속기관과 일제 군대 사이에 국유재산 이용에 관해 충돌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많게는 수십여 차례의 문서를 통해 각 기관의 입장을 고수하거나 상대 기관의 오류를 지적하는 등 갈등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여러 기관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철도국(鐵道局)·해당 지역·일본 육군(陸軍) 등이 혼재하여 내무국(內務局)과 회신을 주고받는 등 국유재산을 둘러싼 관리 문제로 다양한 모습들이 표출된다. 이러다 보니 관리주체 변경 사안에 대한 처리속도도 늦어질 수 밖에 없어, 길게는 2년 안팎이 소요되기도 하였다. 이 기록물철들은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 조선총독부와 일본 육군의 관유재산 관리주체 변경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특히 1910년대와 20년대에 지정해 놓은 군용지(軍用地)가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군용지로서의 필요가 없어지면서 각 도는 이를 이용하고자 관유재산 관리주체의 변경을 요청하고 있다는 점에서 1910년대·1920년대 일제의 식민정책이 1930년대 이르러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목록

번호 기록물건명 생산년도 생산부서 쪽수 공개구분 원문보기
13 위원군 소재폐도 부지관리환의 건(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18 공개가능 원문보기
12 북청군 소재육군 용지관리환의 건(지도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8 공개가능 원문보기
11 함북소재 도로용지 상호관리환의 건(도면지도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68 공개가능 원문보기
10 창성군 소재토지 건물관리환의 건(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10 공개가능 원문보기
9 부청사 부지관리환에 따른 육군측 요구에관련된 공작물 등의 인계에 관한 건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1 공개가능 원문보기
8 청진부 소재육군 용지관리환에 따른공사 실시에 관한 건(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17 공개가능 원문보기
7 평양부소재토지관리환의 건(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13 공개가능 원문보기
6 원북하 헌병국경 감시소 건물에 관한 건(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7 공개가능 원문보기
5 청진부 청사부지에 관한 건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2 공개가능 원문보기
4 청진부 소재육군 용지관리환의 건(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29 재무국 세무과 131 공개가능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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