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에서 1933년 함경도·평안도·강원도 지역의 관유재산(官有財産)이 어떻게 불하(拂下)되었는가를 알려준다. 표지 다음장에는‘소화(昭和) 7·8년 갑종(甲種) 2,802호’라는 기록물철 번호와 함께 건명목록(件名目錄)이 첨부되어 있다. 위 기록물철들은 1929년에서 1933년 함경도·평안도·황해도·강원도 등 주로 북한지역의 관유재산 매불(賣拂)상황을 알려준다. 관유재산(官有財産)의 매불(買拂)은 각 도(道)의 의견이 존중되어 처리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관유재산의 매불을 요청한 이유를 보면, 면유림(面有林) 조성·학교부지나 운동장 사용·금융조합(金融組合) 사무실 혹은 조합원의 화물창고 건축·삼림조합(森林組合)의 수묘 양성(樹苗養成)·저습지 매립(低濕地埋立) 등 공용(公用)의 목적이 많았다. 그러나 가옥 건축(家屋建築)·주조장(酒造場) 건설·경작지(耕作地) 전용·토지개량·과수 재배(果樹栽培) 등 개인적 이유도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기록물철을 통해 당시 토지 및 건물·선박 등의 공시지가 및 실거래 가격·이용계획·이용주체 등을 파악할 수 있어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전반기 조선의 경제 상황을 엿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