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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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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연 지나조사위원 관계3(진정회견록관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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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외사 > 국제연맹중국조사위원회 관계
생산년도
: 소화7년 ~ 소화7년(1932년 ~ 1932년)
생산부서
: 외사
관리번호
: CJA0002326
문서번호
: 66
M/F번호
: 88-695
총쪽수
: 55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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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물철은 만주사변에 대한 국제연맹조사위원회의 현지 조사활동과 관련된 서류들 중 일부이다. 만주 각지의 일본영사관 관리들과 국제연맹조사위원간의 회견 및 외무대신과 국제연맹조사위원간의 회담 내용, 그리고 기타 이와 관련된 자료들을 함께 모은 것이다. 훵티앤(奉天), 창춘(長春), 치치하얼(齊齊哈爾), 지린(吉林) 등지의 일본 영사관에서 외무대신이나 조선총독부 외사과장에게 보고한 문건들이다. 문서는 국제연맹조사위원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일본 관리들의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1931년 만주사변을 전후한 시기의 만주 상황과 일중관계, 재만조선인의 상황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31년 류티아오꺼우사건(柳條溝事件)을 조작해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이 사건을 국제연맹에서 확대하지 않을 것임을 언명했지만, 관동군이 진저우(錦州)폭격, 11월에 료우시(遼西)진공작전 등을 계속 수행함으로써 국제연맹의 불신을 크게 사게 되었다. 고립 상태가 된 일본은 국제연맹 사무총장 드루몬드(J.E.Drummond)의 제언으로 현지에 조사위원회를 파견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국제연맹이사회에서 이것이 가결되었다. 조사단은 위원장으로 리튼(V.A.G.R. Lytton)이, 위원으로 맥코이(F.R.McCoy), 끌라우델(H.Claudel), 쉐니(H.Schnee), 알드로반디(L.Aldrovandi)가 임명되었다. 리튼 등 국제연맹조사위원들은 3월 초 도쿄에서 일본정부 수뇌들과 회견한 후, 중국으로 가서 상하이,난징(南京), 베이징, 만주 등지에서 현지조사를 수행하였다. 이 문서는 국제연맹조사위원회가 도쿄에서 일본 외무대신과 만나 나눈 회담과 5월 만주 현지조사과정에서 일본영사들과 나눈 회견 내용을 담고 있다. 만주사변과 관련된 국제연맹조사위원 관련 문서는 이밖에도 ≪국련지나조사위원관계서류(1)≫(CJA0002324), ≪국련지나조사위원관계서류(2)≫(CJA0002325), ≪국련지나조사위원관관계서류(4)≫(CJA0002327)에도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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