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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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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가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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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이재 > 금지금, 화폐, 국고사업비 관계 > 이왕직 예결산 관계 > 이왕가 예산관계문서철
생산년도
: 소화11년 ~ 소화11년(1936년 ~ 1936년)
생산부서
: 재무국 사계과
관리번호
: CJA0003933
문서번호
: 28
M/F번호
: 88-850
총쪽수
: 3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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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물철을 통해서 본 1936년도 이왕가 예산 총액은 세입부 2,070,272원(경상부), 560,000(임시부), 합계 2,430,272원, 세출부 1,949,062원(경상부), 481,210원(임시부) 합계 2,430,272원이다. 전년도인 1935년도 예산총액 2,418,176원와 비교하면 12,096원 감소한 것이다. 이왕가의 세입은 역시 세비가 1,800,000원으로 주를 이루고 나머지는 삼림수입, 채권이자, 주식 배당금, 예금이자, 창경원·덕수궁 입장료 수입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본년도 세입예산이 증가한 것은 주로 전년도 이월금, 잡수입에 있어서는 감소했지만 삼림수입, 기본재산수입, 관람료 수입, 부동산 매각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경상부 세출예산이 감소한 것은 주로 향연비, 장원비, 삼림비, 예비비는 증가했지만 제향비, 친용비, 기본재산조입금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1936년도 세출 중에서 급여를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건·이우공가(李鍵·李公家) 보급금(補給金)이다. 이건 공가에 대한 보급금은 동가(同家)의 수지가 계속해서 맞지 않으므로 부득이 보급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이우 공가는 이건 공가와는 달리 상당한 재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가(同家)의 주요 재원인 곡가의 상승으로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에 특별한 행사로 인한 예정 외의 경비 지출이 있을 경우에만 보급금을 지급해왔다. 그런데 1935년 公의 결혼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본년도에는 공가에 보급금을 지급하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또 본년도에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왕세자가 宇都宮연대장으로 전보됨에 따라서 그에 따른 경비가 상당히 증가되었기 때문에 필요액이 증가 계상되어있다. 이왕가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 고미술 및 기타 진열품은 창경궁의 고건축물과 1900년 창고 겸용으로 건축한 소규모 진열관에 진열하여 일반인이 관람하도록 해왔는데 그 건물은 전혀 진열관(陳列館)으로서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람시설로서도 매우 부적합하였다. 또 기존의 진열건물은 7개소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관리상에 있어서도 비경제적이고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왕가가 소장한 수집품의 총점수는 1만 8천점에나 달하고 그 중 중요한 것도 많다. 이에 전문적인 진열관의 필요를 통감하다가 1934년 덕수궁을 공개하면서 근대양식 건축인 석조전을 개조하여 근대 일본미술, 회화, 조각, 미술공예품 각 부문을 종합하는 상설 진열관으로 사용해왔다. 따라서 이왕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미술을 전문적으로 전시할 공간의 필요가 절실하기 때문에 석조전 옆에 새로 조선고미술 전시관을 건축하여 소장품 중 각 시대, 각 부문별로 걸출한 조선 고미술품을 선별 진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럼으로써 신구(新舊) 미술의 전당으로 널리 일반인들의 관람에 제공할 뿐만 아니라 조선 고미술과 근대 일본미술의 대조 연구, 조선 예술의 함양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이점에 대해서는 이왕가에서도 시의적절한 것으로 인정하여 본년도에 왕가 소유지 중 불용지를 매각한 대금을 재원으로 석조전 바로 옆에 이왕가 미술관을 건축하기로 하였다. 건물은 진열실 외에도 수장실, 창고, 사무실 등을 구비한 지상 3층, 연건평 1천여평으로 계획하고 그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 300,000원을 임시부 영선비에 계상하였다. 또한 고종·순종실록 편찬 사업은 전년도에 마쳤으나 양조(兩朝)에 해당하는 국조보감이 편찬되지 않았기 때문에 1936도부터 3개년 계속사업으로 하기로 하여 1차년도 편찬비로 17,980원이 계상되었다. 1936년 8월에는 예비금 지출의 건을 제출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식회사 조선미술품제작소는 원래 이왕직이 경영하던 이왕가 미술품제작소를 1922년 폐지함과 동시에 그 자산 전부를 현물 출자하여 주식회사로 조직한 것이다. 이왕직은 그 대주주였는데 이후 배당은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고 사업실적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당시 태평로 도로확장에 당하여 사옥을 개축하거나 이전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에 회사는 당시 지가가 앙등했기 때문에 회사 부지를 평당 2백여 원 합계 27만여 원으로 동양척식회사에 매각하기로 하였다. 이 수입으로 종래의 손해를 보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그동안의 업적 부진에 비추어 보고 또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여 이번 기회에 회사를 해산하기로 하고 주주총회를 개최하여 해산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회사에는 경영 당초부터 함께 해온 많은 종사자들이 있고 회사가 해산된다면 졸지에 전원은 실업자가 될 형편이었다. 다행히 주가가 앙등하여 주주들은 대체로 보상받게 되었으므로 사장 이하 종업원, 직공에게 특별히 위로금을 하사하기로 하였으나 기정(旣定)의 예산 범위 내에서 지출하기 어려우므로 예비금중에서 지출을 충당하려는 것이었다. 다시 11월에도 세비 예비금 지출의 건을 제출하게 되었다. 1936년에는 수해(水害)가 있어서 궁전, 능원묘 등 여러 곳에 파손이 생겨서 복구를 해야 할 곳이 많았고 수해를 당한 곳에 의연금 기타 하사금을 지급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예비금 지출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1936년도 이왕가 세비세입세출 결산을 보면 세입은 경상부 2,381,966원 08전,임시부 635,096원 46전, 합계 3,017,062원 54전이었고 세출은 경상부 2,083,908원 18전, 임시부 277,813원 44전, 합계 2,361,721원 62전으로 세입 초과액이 655,340원 90전이었다. 그 중 241,585원 17전은 다음 해 이월 사용액으로 413,755원 55전은 불용(不用)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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