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주지취직인가신청과 사유재산처분 관련기록을 함께 편철해 놓은 것이다. 주지취직인가는 용주사, 봉은사, 전등사, 법주사, 보석사, 선암사, 대흥사, 화엄사, 고운사, 은해사, 지림사, 금룡사, 패엽사, 성불사, 영명법흥사, 석왕사 등의 신청관련 첨부기록과 이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인가 공문을 함께 편철한 것이다. 내용상 다른 점은 없으나 봉은사·전등사·법주사·보석사·은해사·지림사·금룡사·영명법흥사의 경우는 신임주지의 이름이 모두 일본 이름이다. 1937년 이후 1940년 초 사이에 창씨개명한 승려들이 상당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주지뿐만 아니라 주지취직인가 신청서에 첨부된 투표명부 등에도 일본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본사 및 말사의 주지급 승려 가운데 상당한 숫자가 창씨개명했던 것이다. 1931년의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본격화된 조선에 대한 일본의 동화정책과 관련하여 조선불교계의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지도급 승려’ 들의 창씨개명 및 친일행위 연구에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사유재산처분 관련은「사찰령」과「사찰령시행규칙」에 의해 사찰소유의 토지나 건물, 귀중품 등의 처분은 조선총독의 인가를 얻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사찰소유의 재산처분과 관련한 사항이 생기면 관련서류를 갖추어서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그 형태는 토지저당권설정·토지매각·토지교환·토지기부·건물개축 등이었다. 내용은 다른 기록물철과 대동소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