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상세검색

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 상세검색

기록물 상세내용

인쇄

관유재산매불에 관한 건

기록물 이미지를 준비 중입니다.

분류
: 세무 > 관유재산관계 > 매불, 대부,양여, 교환, 기부 관계 > 관유재산매불에 관한 건
생산년도
: 소화7년 ~ 소화8년(1932년 ~ 1933년)
생산부서
: 재무국 세무과
관리번호
: CJA0004002
문서번호
: 88-63
M/F번호
: 88-885
총쪽수
: 467면

확대 축소

1932년에서 1933년 함경도·평안도·강원도 지역의 관유재산(官有財産)이 어떻게 불하(拂下)되었는가를 알려준다. 표지 다음장에는‘소화(昭和) 7·8년 갑종(甲種) 2,802호’라는 기록물철 번호와 함께 건명목록(件名目錄)이 첨부되어 있다. 위 기록물철들은 1929년에서 1933년 함경도·평안도·황해도·강원도 등 주로 북한지역의 관유재산 매불(賣拂)상황을 알려준다. 관유재산(官有財産)의 매불(買拂)은 각 도(道)의 의견이 존중되어 처리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관유재산의 매불을 요청한 이유를 보면, 면유림(面有林) 조성·학교부지나 운동장 사용·금융조합(金融組合) 사무실 혹은 조합원의 화물창고 건축·삼림조합(森林組合)의 수묘 양성(樹苗養成)·저습지 매립(低濕地埋立) 등 공용(公用)의 목적이 많았다. 그러나 가옥 건축(家屋建築)·주조장(酒造場) 건설·경작지(耕作地) 전용·토지개량·과수 재배(果樹栽培) 등 개인적 이유도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기록물철을 통해 당시 토지 및 건물·선박 등의 공시지가 및 실거래 가격·이용계획·이용주체 등을 파악할 수 있어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전반기 조선의 경제 상황을 엿볼 수도 있다.

목록

번호 기록물건명 생산년도 생산부서 쪽수 공개구분 원문보기
32 영유면 소재관 유재산매불의 건 통첩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2 재무국 세무과 4 공개가능 원문보기
31 색인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2 재무국 세무과 3 공개가능 원문보기
30 신천군 소재관 유재산불하원의 건 통첩(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2 재무국 세무과 15 공개가능 원문보기
29 원춘천수비대고건물매불처분의 건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2 재무국 세무과 7 공개가능 원문보기
28 통천군 소재관 유지매불의 건 통첩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2 재무국 세무과 15 공개가능 원문보기
27 강릉군 소재관 유재산매불의 건(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2 재무국 세무과 10 공개가능 원문보기
26 평양부 소재관 유재산매불의 건 통첩(도면첨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2 재무국 세무과 9 공개가능 원문보기
25 단천군 소재관 유재산매불의 건 통첩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2 재무국 세무과 15 공개가능 원문보기
24 평양부 소재관 유지매불의 건 통첩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2 재무국 세무과 13 공개가능 원문보기
23 함흥부 소재관 유지매불의 건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2 재무국 세무과 37 공개가능 원문보기

키워드 검색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