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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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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상공회의소 설립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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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상공
생산년도
: 소화10년 ~ 소화10년(1935년 ~ 1935년)
생산부서
: 식산국 상공과
관리번호
: CJA0011585
문서번호
: 88-6
M/F번호
: 88-1184
총쪽수
: 1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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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전라북도 도청소재지로 호남의 중앙에 위치한 도시이다. 게다가 1908년에는 전군도로가 개통되었고, 호남선이 완공되던 해인 1914년 전주와 이리 사이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1931년에는 전주와 남원을 잇는 철도가 개통되었고, 경전선(진주~전주)이 호남선의 종관선부터 착수되면서 1936년에는 전주와 순천사이의 철도도 개통되었다. 1935년 10월 1일부터는 부제(府制)가 실시되면서 교통과 행정 그리고 물산(物産)의 중심지가 되었다. 전주의 공업은 전통적 한지공업이 일제시기에도 지속되었으며, 곡창지대의 중심지로서 식품공업과 제사공업도 발달하였다. 이러한 산업적 기반 위에서 일인들 중심의 상공단체인 조마회(造磨會)가 설립되었다가 '전주상공회'로 개편되었다고 한다. ‘전주상공회’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전주상공회의소는 부제 실시 직전인 1935년 9월 30일에 인가되었다는 면에서 특이하다. 상공회의소의 설립구역은 예외규정이 있고 읍지역에 상공회의소가 인가된 선례(대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전주의 부제실시가 어느 정도 예상되었을 1935년 8월 19일 설립인가 신청서를 접수하여 42일 만에 그것도 부제 실시 하루 전인 9월 30일 상공회의소 설립이 인가되었다는 면에서 전주상공회의소의 설립은 주목을 받을 만하다. 아주 수월하게 인가를 받은 경우여서 더욱이 부제 실시 이후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신청한지 6개월이 지난 후에나 상공회의소 설립을 인가 받은 ‘개성상공회의소’(1933년 설립)와 비교하면 처리과정에 상당한 차별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전주상공회의소’는 읍에 설립되는 상공회의소였기에 상공회의소가 이미 설립되어 있는 다른 도시의 인구, 산업, 상공회의소 운영상황 등과 비교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입증하는 자료는「조선상업회의소령」과「동 시행규칙」그리고 1934년 10월 전주읍에서 편찬한《전주읍세일반(全州邑勢一斑)》이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자료를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정밀한 사전조사가 없었다고 추정된다. 즉 전주상공회의소의 설립에 대하여 당국은 조건이나 인원 구성에 별 무리가 없고, 설립 이후에도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인가과정에 반영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1920년 이후부터 활동해 온 ‘전주상공회’에 대한 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경비부담의 정도에 따라 4단계로 구분되어 있던 상공회 회원의 인원수를 조사한 것이 조사내용의 주요부분이고 사업성적은 “월보의 발행, 물가와 기타의 조사발표, 우량점원 표창 등을 행하였다”고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전주상공회’가 전개한 사업이 일제에게 무리 없는 사업이었으며 그 주최자도 문제삼을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록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전주상공회’ 예산 1,438원(1935년도) 중에서 600원을 기부한 ‘칠요회(七曜會)’이다. 이들은 은행과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하며, 재력을 바탕으로 지방사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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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기록물건명 생산년도 생산부서 쪽수 공개구분 원문보기
4 상공회의소 설립인가 신청에 관한 건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5 식산국 상공과 77 공개가능 원문보기
3 표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5 식산국 상공과 1 공개가능 원문보기
2 전주상공회의소 설립인가의 건(대목양작 외31명)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5 식산국 상공과 74 공개가능 원문보기
1 전주상공회의소 정관 공공누리마크 1유형타입 1935 식산국 상공과 77 공개가능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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