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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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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영사관왕복(중화민국 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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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외사 > 각국 영사관 관계
생산년도
: 소화4년 ~ 소화7년(1929년 ~ 1932년)
생산부서
: 외사
관리번호
: CJA0002323
문서번호
: 63
M/F번호
: 88-693
총쪽수
: 8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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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물철은 1929년 11월부터 1932년 3월까지 외사과에서 수합한 조선주재 중화민국 영사관 관련 문서 총 78종을 포함하고 있다. 재경성 중국총영사 및 각 지방 영사가 총독부 외사과에 발송한 문서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중국 및 중국인 관련 문제로 경무국장, 재무국장, 학무국장 등 각 부서에서 외사과에 보낸 문서들과 지방 법원, 지방 행정 부서들이 작성하여 외사과에 보고한 문서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기록물들은 세계공황과 만주사변 등 격변하는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하는 조선총독부의 대중국 정책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중국대륙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장제스(蔣介石)정부에게 유화적인 지원정책을 펴던 일본은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내각이 성립한 이후 중국 대륙진출과 ‘만몽(滿蒙)의 특수권익’ 옹호를 위해 군사적인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하면서 조선 내 일본의 대중국정책은 변화한다. 이 문서들을 살펴보면 겉으로나마 국민정부에 외교적인 유화책을 유지하던 조선총독부의 외교정책은, 만주를 독점지배하려는 일본의 침략정책이 가시화된 1931년 만주사변을 전후로 대중국 강경책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대륙침략 과정에서 일본은 조선인과 중국인의 갈등을 조장, 이용하였으며 민족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조중(朝中)간 소요를 대중운동 탄압의 계기로 이용하고 있었다. 1931년 6월에서 7월 사이 관동군은 창춘(長春) 부근의 만보산에서 조선인을 선동하여 중국인과의 사이에 충돌사건을 일으켰다. 또한 나까무라(中村)대위가 살해된 것을 구실로 현지에 군대를 파견하여 관동군의 무력행동이 유리하도록 정세를 만들었다. 그리고 9월 18일에 훵티앤, 선양성(瀋陽省) 북쪽의 남만주철도 노선이 폭파된 것을 계기로 관동군은 일제히 북대영(北大營) 및 동북 변방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이 만주사변(滿洲事變)에서 관동군은 11월에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을, 1932년 1월초에는 진저우(錦州)도 점령하여 러허성(熱河省)을 제외한 만주 전 지역이 일본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만주사변 직후 국제연맹에서 1931년 9월 21일 국민정부의 제소에 따라 일본군의 만철 부속지 철병(撤兵)을 결의하는 등 중국 내외의 반일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일본은 국민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1932년 1월 상하이의 일본 방적계 회사가 불탄 것을 계기로 일본 함대와 육전대를 상하이에 파견하고 28일 상하이 공격을 감행하여 상하이사변을 일으켰다. 이에 상하이에서는 3월 2일 국민정부군의 철수가 있기까지 전쟁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전운이 감도는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여 당시 조선주재 중국영사관이 발송한 문서들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내용상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는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전 일반적인 외교사무, 재외 국민 행정사무 등을 보여주는 문서들이고, 후반부는 만주사변을 전후한 시기의 악화된 중일관계를 반영한 극비문서 및 첨예한 외교 갈등 내용을 담은 문서들이다. 요컨대, 이 기록물은 만보산사건, 만주사변을 전후한 시기 대륙침략을 꾀하던 일본의 대중국정책과 국민정부의 일본에 대한 대응책이 수록된 외교문서들이다. 이 문서들은 1927년을 전후하여 일본의 대중국정책이 경제침탈에서 직접적 군사적 행동으로 변화한 이래 일본의 대중국정책이 강경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일본측이 중국침탈의 계기로 한·중간의 갈등을 야기하여 이를 조선지배에 이용하는 역사적 과정과 그를 통해서 조선 내의 대중운동세력들을 탄압하고 한·중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과정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는 자료이다. 이 기록물철은 세계공황 직후 외교관계 연구는 물론 이 시기 조선 내 민족갈등의 원인과 그 다양한 양상들을 보여줄 뿐 아니라 외국과의 갈등에 대해서 조선 민족운동과 대중운동이 어떠한 행동과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로써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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