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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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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 국경부근 관계사건철 경찰보고 제외(1911년 10월에서 19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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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외사 > 중국 동북지역 내 조선인과 조선 관내 중국인 동향 관계
생산년도
: 명치 44년 ~ 명치 45년(1911년 ~ 1912년)
생산부서
: 총독관방 외사국
관리번호
: CJA0002284
문서번호
: 24
M/F번호
: 88-682
총쪽수
: 4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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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물철은 압록강, 두만강 대안(對岸) 일대의 정보를 수집한 문건들을 편철한 것이다. 이 지역은 중국 러시아와의 국경 지역으로 일찍부터 조선인의 이주가 시작된 곳이다. 더구나 1910년 국권 상실 이후에는 일제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을 피해 애국지사를 비롯한 많은 조선인들이 한반도에서 이주하여 거주하던 곳이며, 한편으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일제가 중국 침략의 발판으로 삼은 지역이다. 이 때문에일제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이 지역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이 기록물철의 내용은 1911년 11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의 기간에 수집한 정보를 정리한 것으로, 이 지역에 주재한 조선헌병대와 간도, 창춘(長春), 안뚱(安東), 훵티엔(奉天) 등지의 일본총영사관 및 영사관, 평안도·함경도 지역의 헌병대에서 작성한 문건이다. 작성된 문건은 조선총독부와 군사령관, 사단장 그리고 문건의 해당 지역 헌병대장 등에게 발송하였고, 중요 문건인 경우에는 일본 육군대신이나 참모총장에게 발송하기도 하였다. 이 지역에 대한 정보 가운데 일제가 가장 중시한 것은 조선인의 이주 실태와 이주 조선인의 반일 활동에 대한 정보였다. 1912년 7월 5일 재간도 총영사대리 부영사가 조선총독부 외사국장과 일본 외부대신에게 각각 보낸 <이주 조선인 조사 통계표 사본 송부의 건>과 <이주 조선인 조사 통계표 진상(進上)>은 1911년 11월 1일부터 1912년 6월말까지 간 도에 이주한 조선인의 출신 도·군별 호수와 인구 조사표이다. 이외에 훈춘 일대 이주 조선인의 자산 상태와 교육 시설, 예수교 및 천주교의 교세, 간도의 조선인에 대한 출신지·이주 동기·이주 목적·종교별 일람표가 작성되고, 쑹화지앙 상류지방 이주 조선인의 호구와 생활 상태 및 관행 풍습도 조사되어 있다. 조선인 집주 지역인 푸쏭(撫松) 및 멍지앙촨( 江川) 등 몇 곳의 약도가 첨부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 일제는 조선인의 항일활동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이들을 염탐하기위해 각지에 밀정을 풀어 놓고 있다. 밀정들에 의해 감시의 대상이 된 조선인 가운데 서간도의 이동녕(李東寧), 류리암(柳理菴), 홍용기(洪容基), 이시영(李始榮), 이석대(李碩大), 윤세복(尹世復), 함능관(咸能寬), 양기하(梁基河), 김경북(金京北), 김원진(金元鎭), 김윤혁(金潤赫), 조택제(趙宅濟), 신심수(申心秀), 김병준(金炳俊), 이성규(李星奎), 나성삼(羅成三) 등과 혜산진 대안 장백산 부근에서 천여명의 무리를 이끌고 항일무장투쟁을 펼친 차도선(車道善), 홍범도(洪範道) 등의 이름이 눈에 띈다. 또 조선인 조직이나 기독교·천주교 교회를 이용한 조선인 반일활동에도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외에 중국인 사회의 정치적 동향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 1911년 10월에 시작된 중국 신해혁명이 이 지역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이나 위안스카이(袁世凱) 등 중국 군벌의 동향, 일본에 대한 중국인들의 여론, 이주 조선인에 대한 중국 관헌 및 중국인의 반응, 이곳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등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경 근처 평안북도에 이주한 청국인에 대해서도 상세히 조사하고 있다. 기타 웅기, 훈춘 지역 상인들의 민원, 마적의 출몰, 지주소작관계, 지린(吉林)성의 방곡령, 일본인의 생활 실태, 무산군에서 있었던 청국 순사의 비행 등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한 정보 문건들이 있다. 이 기록물철에서 일제가 특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조선인의 해외 이주와 그 속에서 고조되는 항일투쟁의 기운이다. 따라서 이 문서는 압록강과 두만강대안(對岸)의 조선인 사회에 대한 구체적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이면서, 동시에 동포 사회를 기반으로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조선인 항일투쟁의 초기 모습을 알 수 있게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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