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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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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여행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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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외사 > 알본의 중국침략 관계
생산년도
: 소화15년 ~ 소화15년(1940년 ~ 1940년)
생산부서
: 외사부 외무과
관리번호
: CJA0002360
문서번호
: 100
M/F번호
: 88-708
총쪽수
: 49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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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물철은 조선총독부 외사부에서 1940년 1월부터 12월까지 취급한 일본인 여행자 관련 문건들을 편철한 것이다. 조선총독부 각 부서, 도지사, 중국·만주 주재 일본대사관 등과 1940년 한해동안 주고 받은 문건들이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1932년 만주국을 수립하고 만주 전역을 주만대사(駐滿大使)를 겸한 관동군 총사령관의 지배 아래 두었다. 특히 일본은 1931년 이후 대륙에 배치된 군사력을 지원할 수 있을 정도의 산업기지를 갖춘 자급경제지역으로 만주를 개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작은 마을이었던 신찡(新京)은 눈 깜짝할 사이에 대규모의 공공건물과 아스팔트 도로를 갖춘 인구 30만 이상의 새로운 수도로 변모했다. 만주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날 즈음 최고도로 공업화되고 군사화된 지역이 되었으며, 공업력에 있어서 일본 다음이었다. 이에 일본은 국내 경제의 희생을 치르면서도 일본본토와 조선을 연결하는 거대한 전략적 복합체 속에 만주를 편입시켰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일만지(日滿支) 3국’ 에 의한 ‘동아 신질서’ 의 건설을 표방하기 시작하여, 1940년 8월 마침내‘대동아공영권’을 처음으로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기록물철은 일제가 만주와 중국을 석권한 뒤 태평양과 동남아로 진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을 무렵, 중국대륙에 활발히 이동하고 있던 당시의 여행자와 관련된 문건을 정리한 것이다. 문건의 내용은 여행시에 필요한 편의제공 요청이 대부분이고, 여행자에 관한 설명이나 여행일정표, 기타 사항들을 첨부하고 있다. 요컨대, 이 기록물철은 일제가 식민지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 가운데 일본, 조선, 만주, 중국을 하나의 체제 속에 묶으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시체제 하에서 지배 기구의 구성원들이 일본과 조선, 중국 대륙 사이를 이동이면서 당시 상황을 시찰하고, 보고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 1940년 당시 일제가 농촌진흥과 산업경제 조사를 위해 여러 지역을 시찰하고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 시기에는 문화와 사상의 통제도 강화되어 가는데, ‘내선일체’ 화 상황을 시찰하고 조선인 문제에 관해 식견을 가진 사람을 초청해서 그 진술을 듣기도 하는 등 일제의 사상 통제의 여러 모습까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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