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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은 내가 지킨다! 향토예비군 창설
'향토예비군의 날' 맞아 관련 기록물 공개
향토예비군 창설식 모습(1968)

향토예비군 창설식 모습(1968)

'흰 고무신에 총을 든 사내부터 정규군 못지않은 멋진 모습으로 시가행진하는 장면까지...', 향토예비군은 1968년 창설 이래 국토 방위에 있어서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4월 3일 '향토예비군의 날(매년 4월 첫째 주 금요일)'을 맞아 1960~70년대 향토예비군 관련 기록물을 홈페이지를 통해 서비스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기록물은 총 34건(동영상 6건, 사진 26건, 문서 2건)으로, 향토예비군의 창설, 훈련 과정, 기념행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향토예비군 창설('68), 향토예비군들의 활약상('70), 여성 예비군 발대식('72), 경북 차동마을 주민과 향토예비군의 비상훈련('73) 여자 향토예비군('78) 등 동영상 6건
  • 향토예비군창설식('68), 총무처 중대 예비군훈련 및 검열('70), 청와대 향토예비군 중대 사격대회('73), 예비군 창설 10주년 기념 시가행진('78) 등 사진 26건
  • 향토예비군 설치법 공포의 건('61), 향토예비군 설치법 개정법률('68) 등 문서 2건
1961년 12월 27일 향토예비군 설치법의 공포를 위한 법제처 문서

향토예비군 설치법 공포의 건 : 1961년 12월 27일 향토예비군 설치법의 공포를 위한 법제처 문서이다. 향토예비군의 설치조직과 편성을 규정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로서, 예비군은 연대, 대대, 중대로 편성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예비군의 훈련, 정치 불관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향토예비군 창설식 모습(1968)

향토예비군 창설식 모습(1968)

부녀예비군 행진 모습(1968)

부녀예비군 행진 모습(1968)

'내 고장은 내가 지킨다'는 기치 아래 향토예비군의 편성·운영을 위해 1961년 「향토예비군 설치법」이 제정되었으나, 예산 부족 등의 문제로 실제 편성되지는 못하다가, 1968년 무장공비 침투 사건(1.21) 이후, 자주적 방위태세 확립을 위해 약 250만 명의 향토예비군이 조직, 창설식(1968.4.1.)이 대전에서 열렸고, 1970년에는 '향토예비군의 날'이 기념일로 지정됐다.

고무신을 신고 훈련을 받는 향토예비군(1968)

고무신을 신고 훈련을 받는 향토예비군(1968)

향토예비군 직장방위 훈련모습(1968)

향토예비군 직장방위 훈련모습(1968)

철도청 향토예비군 직장 방위 시범훈련(1969)

철도청 향토예비군 직장 방위 시범훈련(1969)

향토예비군 덕수궁 중대 훈련 모습(1969)

향토예비군 덕수궁 중대 훈련 모습(1969)

농부에서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향토예비군으로 편성돼 강도 높은 훈련을 수행했다. 예비군들은 훈련 사이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 나와, 논밭을 매고 기계를 돌리던 손에 총을 부여잡고, 때로는 진흙투성이 고무신과 빛바랜 구두를 신고 훈련에 임했다. 향토예비군은 무장공비 소탕작전에도 투입됐다. 창설된 지 2년 동안 울진·삼척 무장공비 소탕작전 등 25회의 대규모 작전에 참여했다.
생업 때문에 예비군 훈련에 참석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보니 예비군 훈련은 대리응소 등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1979년에는 한 번도 예비군 훈련에 빠지지 않았던 출장 간 남편을 위해 부인이 대리 응소하였다가 귀가조치 된 사건도 있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국토방위에 큰 역할을 담당해왔던 향토예비군의 모습이 담긴 기록을 통해 향토방위와 안보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예비군 창설 10주년 기념 시가행진(1978)

예비군 창설 10주년 기념 시가행진(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