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무역의 날 맞아 수출진흥 기록물 공개
12월 4일부터 「기념일과 기록」 온라인 서비스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1964년)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1964년)

우리나라는 1945년 나라를 되찾았지만 가난한 신생국에 불과했다. 더욱이 6.25전쟁의 화마(火魔)가 한반도를 휩쓸며 국민들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출’을 발판삼아 전쟁의 상처와 빈곤의 그늘을 딛고 일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제52주년 무역의 날*을 맞아, 수출산업단지 조성, 수출진흥확대회의 개최, 수출의 날 기념식 등 1950~90년대 우리나라의 수출진흥 관련 기록물 총 30건(동영상 8, 사진 19, 문서 2, 우표 1)을 12월 4일(금)부터 누리집(홈페이지, www.archives.go.kr)을 서비스하고 있다.

* 무역의 날은 1964년 11월 30일 수출 1억 달러 달성을 기념해 ‘수출의 날’로 제정되었다가 1989년 ‘무역의 날’로 명칭이 변경됐다. 2012년부터는 무역규모 1조 달러 달성(2011.12.5.)을 기념하기 위해 날짜를 12월 5일로 변경했다.

  • 일본에 소금 수출(’60), 수출공업단지(’67), 국산 자동차 수출(’76), 포항제철, 철강제품 수출(’79) 등 동영상 8건
  • 수출진흥확대회의(’65), 해외수출공업단지 가발공장(’72), 100억불 수출의 날 기념식(’77), 김영삼 대통령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방문(‘93) 등 사진 19건
  • 1973년도 제1차 수출진흥확대회의 대통령 지시사항(’73) 등 문서 2건
  • 100억불 수출의 날 기념우표(’77) 등 우표 1건
성창기업 수출용 베니어합판 공장(1965년)

성창기업 수출용 베니어합판 공장(1965년)

구로동 수출산업공업단지 준공식(1967년)

구로동 수출산업공업단지 준공식(1967년)

하동환버스회사의 베트남 수출버스 하역작업(1967년)

하동환버스회사의 베트남 수출버스 하역작업(1967년)

우리나라는 1950년대에 전후 복구에 힘쓰는 한편,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 정부는 「무역법」 제정(1957년), 수출장려금 지원, 고령토, 마른 멸치 등 5개 품목에 대한 수출결손액 보상과 같은 수출촉진정책을 실시했으나 수출실적은 저조하였다. 1959년 수출액은 1,900만 달러에 불과했으며, 농수산물, 광산물 등 1차 산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1960~70년대에는 적극적인 수출진흥정책을 추진하여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 1966년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 대통령 주재 수출진흥확대회의 개최 등 정부는 강력한 수출진흥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61년 4,1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의 수출규모는 1964년 1억 달러, 1979년에는 150억 달러를 돌파했다. 수출품목도 1차 산업제품에서 가발, 신발, 섬유, 기계, 선박, 철강 등의 경공업 및 중화학공업 제품들로 변화되었다.

해외수출공업단지 가발공장(1972년)

해외수출공업단지 가발공장(1972년)

GMK 덤프트럭 수출선적(1976년)

GMK 덤프트럭 수출선적(1976년)

구로공단 항공촬영(1976년)

구로공단 항공촬영(1976년)

마산수출자유지역공단 한국실리콘 공장 전경(1976년)

마산수출자유지역공단 한국실리콘 공장 전경(1976년)

100억불 수출의 날 기념식(1977년)

100억불 수출의 날 기념식(1977년)

포니 수출(1978년)

포니 수출(1978년)

1980년대 이후 정부의 경제정책이 ‘고도성장’에서 ‘안정적 성장’으로 변화됨에 따라, 정부주도의 수출지원정책도 점차 축소되어 갔다. 그러나 수출은 1995년에 1천억 달러를 넘어섰고, 2011년에는 처음으로 5천억 달러(무역규모는 1조 달러)를 돌파하여 1961년에 비해 13,000배 이상 증가했다. 수출품목도 자동차, 전기․전자제품, 반도체, 휴대폰 등 고기술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국산 자동차는 1970년대 후반부터 수출을 시작한 이래, 1986년에는 자동차 종주국인 미국시장에 진출했고, 2014년에는 306만대를 수출하여 489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수출액을 기록했다.
한편, 메모리 반도체, 자동차 부품 등 65개 품목은 세계수출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고(2013년 기준), 반도체의 경우 2014년에 620억 달러를 수출하여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 중 1위를 차지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무역의 날을 맞이하여 수출진흥 관련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원동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행사
“대상작, 동심으로 그린 통일염원 신선하고 독창적”
국가기록원, 광복70년 기념 『기록사랑 전국백일장』 시상식 개최
제8회 「기록사랑 전국백일장」 수상자 기념촬영

제8회 「기록사랑 전국백일장」 수상자 기념촬영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12월 3일 정부대전청사에서 광복70년 기념 「기록사랑 전국 백일장」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을 가졌다.
「기록사랑 전국 백일장」은 8회째를 맞이한 행사로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록을 통해 대한민국 미래의 꿈과 희망을 마음껏 표현하는 소통과 공감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광복 70년, 내 삶의 소중한 기록”이라는 주제로 치러졌다.

제8회 「기록사랑 전국백일장」 지난 10월 17일, 대전·부산·광주·성남 등 전국 4개 권역에서 동시에 열렸다.

제8회 「기록사랑 전국백일장」 지난 10월 17일, 대전·부산·광주·성남 등 전국 4개 권역에서 동시에 열렸다.

지난 10월 17일, 대전·부산·광주·성남 등 전국 4개 권역에서 개최되어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1,200여 명이 참여하였으며, 시상식을 통해 글짓기, 그림그리기 부문에서 입상한 20명의 수상자들이 본 행사에 참가하여 행정자치부장관상(5명)과 국가기록원장상(15명)을 수상했다.
글짓기 산문부문에서는 세종시 연세초 5학년 한정윤 학생의 「기록의 이야기」, 부산 혜화여고 2학년 김규리 학생의 「어제와는 다른 오늘」, 오유진씨의 「어머니의 낡은 수첩」이 행정자치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림부문에서는 내동초 1학년 한지혜 학생의 「대한기록만세」, 대전 봉명중 1학년 홍지나 학생의 「독립기념관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가 행정자치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특히, 그림그리기 대상을 받는 「대한기록만세」는 나라꽃 무궁화와 펄럭이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통일을 염원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통일을 바라는 순수한 동심을 신선하고 독창적으로 잘 그려내어 보는 이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국가기록원은 시상식과 함께 대상인 행정자치부장관상을 비롯해 국가기록원장상과 시·도지사 및 교육감상 등 수상작품 108점을 11월 30일부터 12월 4일까지 정부대전청사 지하 중앙홀에서 전시하였으며, 백일장 수상작품집을 제작 전국 초등학교에 배포하여 기록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행사
실록 내장산 보존터 탐방, 기록보존 정신 기려
오희길, 손홍록 등 민·관이 힘을 모아 안전하게 보존
임진왜란 당시 왜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전주사고의 실록과 어진을 보관했던 내장산 용굴암

임진왜란 당시 왜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전주사고의 실록과 어진을 보관했던 내장산 용굴암

국가기록원 직원일행은 10일 임진왜란 시 부산진 침입 16일 만에 유일본이 된 전주사고 조선왕조실록을 옮겨 보관했던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 보존터와 이안길을 탐방하며 선조들의 기록정신을 기리고 사력을 다한 보존노력을 체험했다.

선조 25년인 1592년 4월 14일 부산진에 상륙한 왜적은 23일 조선왕조실록 4대서고 중 하나인 성주사고를 시작으로 28일 충주사고, 30일 춘추관사고까지 연이어 방화하거나 약탈하여 전쟁발발 16일 만에 전주사고 실록이 유일본이 되자, 전라감영이 5월부터 실록과 어진의 보존을 위해 보존책임자를 선임하고 이안 후보지 답사에 나서는 등 이안대책에 착수했다.

전라감영은 민관이 역할을 분담하기로 하고 관원으로는 오희길, 유인, 김홍무, 한춘, 유생으로는 안의, 손홍록, 손승경이 실록과 어진의 이안·수직을 담당하게 했다. 이들은 지역민 100여명과 말20여필에 나누어 싣고 6월 18일 전주를 출발해 22일 내장산 용굴암에 도착했다.처리시설”은 행정박물·선물실, 디지털 포렌식실 등 총 9개 작업장을 갖추고 있으며, 연말까지 197종 333대의 장비를 설치하여 대통령기록물 보존복원을 위한 특화된 전문 인프라로 구축될 전망이다.

왜적을 피해 전주사고 실록을 보관했던 용굴암은 맨몸으로 오르기도 어려울 만큼 험준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왜적을 피해 전주사고 실록을 보관했던 용굴암은 맨몸으로 오르기도 어려울 만큼 험준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용굴암은 내장산 영은사 서쪽 7리쯤에 위치하고 있으며, 30~4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석굴로 수직에 가까운 바위 절벽 위에 위치한 험준한 곳으로 왜적이 다가옴에 따라 더욱 험절한 은적암, 비래암으로 옮겨졌으며, 다음해 7월 9일까지 이곳에 보존되다가 강화로 이안되었다.

이날 국가기록원 직원일행은 내장산 보존터 3곳을 차례로 탐방할 예정이었으나, 강한 비바람으로 2곳을 취소하고 용굴암만 탐방했다. 수직에 가까운 사다리를 오르며, 실록을 등에 메고 맨손으로 바위절벽을 올랐을 선조들의 숭고한 기록보존정신을 기리며, 기록인으로서의 사명감과 긍지를 더욱 굳건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