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컨텐츠 바로가기

MENU CLOSE


국내 기록소식

2020년 12월 국내 기록소식

01히로히토 일왕 장인에 단도 던진 조명하 친필 발견

제강점기 대만에서 히로히토 일왕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육군 대장 척살에 나서 당시 일본을 충격에 빠뜨린 조명하(1905~1928·사진) 의사의 유일한 친필 기록물(사진)이 발견됐다.

조명하 의사 연구회장인 김상호 대만 수핑 과기대 교수는 2일 조 의사가 1927년 11월 직접 쓴 편지 사진을 입수했다. 이 편지 사진은 1928년 8월 일본 도쿄출판이 펴낸 ‘역사 사진’이라는 제목의 화보집에 포함돼 있었다.

김 교수는 대만에서 백방으로 조 의사의 생전 활동 기록을 찾는 과정에서 대만 기자 출신 칼럼리스트인 천러우진 씨가 소장 중이던 이 화보집을 얻게 됐다.

화보집 발행 당시의 주요 역사 사건을 기록한 ‘역사 사진’화보집은 조명하 의사 사건을 다룬 별도의 페이지에 조 의사의 친필 편지 사진을 실었다.

편지에는 “가을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불편을 드렸습니다. 생활 속에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소생은 선생 덕분에 바다와 육지 여행길은 모두 별일 없었습니다. 안심하셔도 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편지는 안부를 전하는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지금껏 발견된 조 의사의 친필 기록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김 교수는 “조 의사는 자신의 의거로 가족에게 화가 미칠 것을 걱정해 일본과 대만에 있는 동안 황해도의 고향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읽고는 반드시 태워 버리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은 독립운동가”라고 설명했다.

그는 “화보집에 개인 간의 편지가 어떻게 공개된 것인지 경위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조 의사의 의거 직후 일제 경찰이 조 의사가 다녔던 학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태준을 찾아내고 그 편지를 확보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독립운동 조직에 속하지 않고 단독 의거에 나선 조 의사는 사진과 서한 등 자신의 삶에 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02123만 명이 ‘청정 태안’되찾는 과정···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
  • 12월 7일 예산 스플라스 리솜에서 열린
    ‘태안 유류피해 극복과정 공유 국제 컨퍼런스’ 참석자가 피해 극복 과정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염원하는 글을 쓰고 있다. 충청남도 제공

충청남도가 사상 최악의 태안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의 피해 극복 전 과정을 담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다.

충남도는 12월 7일 예산의 스플라스 리솜에서 충남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태안 유류피해 극복 과정 공유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태안 유류피해 극복 과정의 세계적 중요성’을 주제로 한 이번 컨퍼런스는 국내·외 사례를 토대로 유네스코 등재 전략 논의와 유류사고 극복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자리로 마련했다.

도가 보유한 태안 유류피해 극복 과정을 담은 기록물은 공공과 민간 부문을 모두 합쳐 20여만 건에 이른다. 2007년 12월 7일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발생부터 대응, 극복 등 전 과정이 담겼다. 특히 피해 극복을 위해 세계 최대 규모인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한 내용도 포함돼있다.

이날 국제 컨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은 국내외 유류사고 사례를 살펴보고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전략을 논의했다. 로슬린 러셀 전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 의장은 ‘재난기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주제로 기조 강연을 했다. 이어 김귀배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본부장의 ‘세계기록유산의 등재 전략과 과제’, 타우픽(M.Taufik) 인도네시아 국가기록원장 ‘인도양 쓰나미 등재 사례’라는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또한 이평주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전 사무국장 ‘유류 오염사고로 인한 아픔과 희망’, 정병관 국립공원연구원 책임연구원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 유출사고 장기 모니터링 자료를 활용한 해양생태계 회복 현황 분석’ 등의 발표가 진행됐다.

충청남도는 컨퍼런스를 통해 수렴된 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태안 유류피해 기록물의 유네스코기록 등재를 위한 논리를 개발·보완할 방침이다.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최악의 유류피해 극복을 위해 123만 명의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기적을 만들어냈다”며 “그 과정을 세계사적 기록으로 남겨 유사 사고 발생 시 대응 매뉴얼로, 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좌표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03‘6·10만세운동’ 국가기념일 지정... 내년부터 정부 행사로

일제강점기 시절 학생들 주도로 일어난 ‘6·10만세운동’ 발생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6·10만세운동은 1919년 3·1운동, 1929년 11·3광주학생항일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 중 하나다.

행정안전부는 6·10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6월 10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8일 밝혔다. 6·10만세운동은 3·1운동 이후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장례식)을 맞아 일제의 강제병합과 식민지배에 항거해 독립 의지를 밝힌 ‘제2의 만세운동’이다. 서울 지역 학생들의 주도로 시작됐으나, 전국 각지로 번져 전국 55개교 동맹휴학과 시위로 이어졌다. 일제는 당시 서울에서만 200여 명, 전국적으로 1,000여 명을 체포했고 이 중 11명을 징역형에 처했다.

6·10만세운동 국가기념일 지정은 제20대 국회에서 관련 결의안이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제21대 국회에서도 44명의 의원이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결의안을 냈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지난 7월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을 행안부에 요청했고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내년 6월 10일은 6·10만세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후 맞는 첫 번째 기념일인 만큼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정부기념행사를 의미 있게 치를 예정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번 기념일 지정을 통해 앞으로 6·10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재평가되고,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후손들에게 계승·발전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