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것 같은 물가, 물가를 잡아라
< 물가정책 >
연말을 앞두고 연일 뉴스에서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코로나 이후 소비침체로 인한 경기 불황을 걱정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물가가 올랐다고 한다. 이번 호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었던 물가정책에 대해 살펴본다.
‘물가’는 재화와 용역이라는 여러 종류의 상품가격을 상품의 중요도 등을 종합하여 평균으로 계산한 가격수준을 말한다. 따라서 물가는 돈의 가치를 알려주는 척도이다. ‘물가지수’는 이러한 물가의 움직임을 알기 쉽게 지수화한 경제지표이다.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소비, 저축, 투자, 생산 등 경제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이 커져서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특히, 생필품의 ‘물가’가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피해를 끼치게 되고, 정치・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물가’는 국가 경제정책의 핵심적인 관리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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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범국민대회(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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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범국민대회날의 거리 표정(1979)
01 정부가 견인하는 경제성장, 적극적인 가격규제 시행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지배, 광복과 전쟁을 거치면서 혹독한 물가인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혼란을 경험하였고,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적 격랑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는 ‘물가’로 인한 사회불안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게 되였다. 1960년대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경제개발이 추진되면서 통화량이 증가되었는데, 이는 물가 급등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경제기반이 다져지기 전의 물가 상승은 사회불안요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임금을 최대한 억제하고, 억제된 임금 하에서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강도 높은 가격규제정책으로 물가를 관리하였다. 최초의 물가관리제도는 8・15직후인 1946년~1947년에 걸쳐 실시된 주요 상품에 대한 최고가격제였다. 이는 군정법령 제90호에 의거한 「중앙물가행정처의 규칙」에 근거하였는데 실효성은 미비하였다.
1960년대 초반 군사정권은 물가급등이 심각해지자 가격억제와 물품수급의 원활화를 위해「물가조절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1961년 11월에 제정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1963년부터 주요 상품에 대해 최고가격제를 실시하였고, 대상품목의 변동은 있었지만 1971년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정부는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물가를 단속하고, 가격을 통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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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조절에 관한 임시조치법 공포의 건(1961)
1970년대에 중화학공업정책을 추진하던 중 두 번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위태롭게 되었고, 기존의 ‘행정지도’ 만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공산품과 유류가격을 조정하는 등 ‘가격사전승인제’를 활용하고, 1974년 1월 14일 긴급조치 2호를 발동하여 가격규제를 실시하였다. 긴급조치는「물가안정에 관한 법률」로 이어졌고, 이 법에 근거하여 쌀값 등 21개 품목에 대해 최고가격 및 기준가격을 지정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독과점 기업들이 가격인상을 일삼자 당시 시행하고 있던 「물가안정법」과 「공정거래법」을 참고하여 1975년「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이듬해에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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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에 관한 법률(1973)
02 물가정책의 변화, ‘규제’에서 ‘자율’로
정부는 규제중심의 정책 추진에 한계를 느끼면서 1979년 민간주도의 경제운영기조를 표방하고, 자율화 정책으로 경제기본방향을 변경하였다. 1980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시장경쟁을 활성화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주요 내용은 가격관리차원의 독과점 가격규제를 없애고, 독과점기업의 독점력 남용의 결과인 가격남용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가격관리기능은「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근거로 남아있지만 규제의 강도는 약화되었고, 1994년 2월 완전히 폐지되었다.
1980년대에는 과거의 통화긴축과 가격통제 중심으로 실시하던 물가관리방식에서 시장의 가격기능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물가는 매우 안정적으로 관리되었는데, 1960년대 물가상승률이 12.1%, 1970년대는 13.4%인 반면 1980년대에는 5.4%로 낮아졌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었고, 1991년에는 물가상승률이 9.3%까지 상승하였다. 이 시기 우리 정부는 통화 공급 안정화 정책, 부동산가격 안정화 정책, 산업 원가상승 압력 억제정책 등을 펼치며 물가안정화에 노력했다. 시중의 통화량을 직접 환수하고, 전력수도 및 도시가스 요금 및 석유류의 가격인하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1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인상은 연 10% 이내로 억제시켰다. 그 결과 1992년에는 물가상승률이 6%대로 하락하고, 1993년에는 4.8%까지 낮아졌다. 이 때 출범한 문민정부는 탈규제와 경제자유화를 표방하였고, ‘물가’에 대한 정부주도의 규제정책도 공식적으로 사라지고 최소한의 정부규제만 남도록 하였다.
1998년 외환위기 시기에 물가는 7.5% 급상승하였고 국제 원유가격 급등이 있었던 2008년에도 4.7%로 비교적 크게 상승하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코로나 이전까지는 저성장 기조로 인해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 이하로 유지되다가 최근 몇 년 간 집값 상승과 더불어 코로나로 인한 공급 부족 문제로 물가가 다시 출렁이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 11월 소비자물가가 3.7% 상승해 9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고 한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기준금리를 0.25% 올리고, 유류세 인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물가와 금리가 오르다 보니 실질소득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그야말로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것 같은 상황이다.
오랫동안 물가는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는데 그럴때마다 정부는 물가정책을 통해 국민들이 먹고 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해 왔다. 이번에 정부에서 내놓은 물가안정정책을 통해 코로나로 힘든 국민들의 삶이 더 팍팍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