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힐링’ 일 것이다. ‘힐링’이란 테마로 쏟아지는 책들, 다양한 여행상품들이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몸과 마음의 ‘힐링’을 원하는지 말해준다. 뜨끈한 물에 긴장된 몸을 담그고 해야 할 일, 중요한 것들에 대한 생각을 늦추는 온천욕은 그야말로 ‘힐링’을 위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우리나라 온천에 관한 기록은 고구려 서천왕(서기 286년경)의 아우가 온천욕을 하였다는 『동사강목(東史綱目)』의 기록이 처음이다.『동국여지승람』에는 세종대왕과 현종, 정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왕들이 ‘온천’을 통해 지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1970년대 온천지역 개발이 이뤄지면서 다양한 피부질환을 가지고 있던 환자들이 온천욕을 통해 완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표 ‘3대 온천’하면, 충주 수안보온천, 온양온천, 울진 백암온천을 꼽는다. 그 중 온양온천은 1971년 5월 20일 관광지로 지정되어 1985년 국민관광지가 되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의 영향이었는데, 당시 ‘온양온천’은 6.25전쟁 후 비약적 발전을 해온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얼굴 역할을 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최규하 대통령은 수안보온천을 자주 찾았다. 수안보란 지명은 보 안쪽에 물탕거리라는 뜻으로, 애칭이 ‘왕의 온천’일 만큼 조선시대 왕들이 자주 찾았던 온천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수안보온천 입구에 기념식수를 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고사(枯死)하였다고 한다. 그 자리에 지금은 나무의 복원을 비는 복원비가 세워져 있다. 최규하 대통령은 명절 연휴기간을 수안보온천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온천을 특히 좋아했다. 수안보온천도 가끔 들렀지만, 가장 즐겨 찾았던 온천은 도고온천이다. 도고온천은 동양 3대 유황 온천 중 하나로 박정희 대통령은 그 주변 지역을 방문할 일 있으면 꼭 도고온천에 들를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반 국민들은 ‘온천’을 어떻게 즐겼을까. 1960~1970년대에는 대표적인 신혼여행지로 온천 지역이 주목을 받았다. 1970년에 결혼한 탤런트 최불암·김민자도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는 당시의 신문기사가 이를 방증한다. 당시 부산의 해운대온천과 동래온천, 충청도 지역의 수안보온천과 온양온천, 도고온천 등이 대표적 신혼여행지로 꼽혔다. 그러다 1981년 정부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새로운 국민관광지 개발에 착수하였다. 1984년 총 10개 지역이 국민관광지역으로 선정되었는데, 이중 온양온천 주변의 신정호가 포함되었다.
온양온천 지역은 1971년 관광지로 선정돼 1979년 관광지 조성계획이 추진 중이었으나, 신정호가 국민관광개발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조성계획은 전면 수정되었다. 신정호가 국민관광지로 선정된 이유는 국내 유수의 온천 관광지인 온양온천이 있는 데다 인접한 곳에 성역 순례지로 유명한 현충사와 이충무공의 묘소가 있고, 그 외 아산호, 삽교호 등의 관광자원이 잘 관리된 지역이란 이유에서였다. 한마디로 온천지역인 온양에 오면 유서 깊은 명소도 볼 수 있고, 자연과 벗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온천을 즐기는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온천은 주변에 명승지나 산행코스를 끼고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온천의 약효를 얻고 관광까지 만끽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온천 전국 명소 올가이드」, 경향신문 1991년 9월 21일자 기사)
1990년대 온천지역과 함께 주변 관광지가 주목받으면서 온천을 겨울철에만 즐길 수 있다는 고정관념 또한 변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주말 나들이를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으로 피로를 푸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여행의 마무리를 온천으로 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 인기는 2000년이 지나면서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온천시설이 1970년대 즈음 개발된 탓에 낙후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타계할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졌고, 이 중 벨기에의 온천인 ‘스파(Spa)'가 우리의 온천 문화와 섞이면서 젊은 층까지 끌어당기게 됐다.
‘지열에 의하여 지하수가 그 지역의 평균 기온 이상으로 데워져 솟아 나오는 샘’. 이것이 온천의 사전적 정의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으로 25℃ 이상의 물을 온천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온천’의 의미는 열천(熱泉), 그 이상이었다.
관광이라는 문화 자체가 자리 잡기 전이었던 1960~1970년대 신혼부부들에게 온천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어주었고, 몸 이곳저곳이 쑤시기 시작한 어르신들에게는 몸이 가뿐해져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신통한 타임머신이 되어주었다. ‘쉼’에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그리고 ‘쉼’ 속엔 차별도 없다. 자연이 빚은 선물인 ‘온천’, 뜨끈한 열탕 속에 몸을 담그면 행복은 그리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