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이육사의 기록 복원·공개
국가기록원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 관련 기록을 복원하여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이번에 복원된 기록은 국가기록원이 이육사문학관과 협업을 통해 이육사의 공적·사적 행적에 관한 기록을 발굴함으로써 이루어졌다.
* 이육사(李陸史, 1904~1944) : 본명은 원록(源祿). 일제강점기 중국을 오가며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청포도>, <절정>, <광야> 등의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도 활동함. 1943년 가을 체포되어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함
발굴된 기록은 국가기록원 소장 일제강점기 ‘집행원부’(1929년)와 이육사문학관의 ‘친필 한문편지와 엽서’(1930~1936년), ‘육사시집’ 초판본(1946) 등 총 7건 341매이다. ‘집행원부’는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이 경찰에서 접수한 피의자 1,028명의 처분 결과를 정리한 기록으로서, 원문은 이번에 온라인으로 최초 공개되었다.
당시 일제 경찰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투척사건(1927.10.18.)의 범인으로 지목하여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이육사, 형 이원기와 동생 이원일, 그 외 이정기, 조재만 등을 체포하였다.(1928.1.6.) 기록에는 이육사의 본명인 이원록으로 쓰여 있으며 죄목은 폭발물취체규칙,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치안유지법 위반, 협박과 살인 미수라고 적혀있다.
※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의거의 주역인 독립운동가 장진홍(張鎭弘, 1895~1930) 의사가 1929년에 체포됨으로써 이육사는 범죄 혐의를 면하고 풀려나게 됨.
‘집행원부’의 복원을 통해 이육사의 석방 일자가 1929년 5월 4일인 것을 재확인하였고, 이육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정확한 보석,출감 일자 등도 확인되었다.
중외일보 기자 시절 친척인 이상하에게 보낸 한문편지(1930년)는 이육사의 남아있는 유일한 친필 한문편지로서 현재 이육사문학관에서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 중에 있는 희귀자료이다.
이육사는 당시 이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편지내용을 통해 이육사 가족의 어려웠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친척 이원봉에게 보낸 엽서(1931.11.10.)는 안동을 다녀온 후의 소회와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문우(文友)였던 ‘신석초*에게 보낸 엽서(1936)’는 아름다운 동해의 풍경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친구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적고 있다.
* 신석초(申石艸, 1909~1975) : 본명은 신응식(申應植)이며 석초는 호임. 시인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하였으며, <바라춤>, <폭풍의 노래>, <석초시집> 등의 작품을 남김
이 외에도 1946년 작고 이후 발간된 육사시집 초판본과 이육사가 다닌 보문의숙의 화학·생물 교재(1908)도 복원되었다.
국가기록원은 이육사문학관과 협업하여 기록물 발굴과 공동 활용을 기획하고 작년 9월부터 2개월간 기록물의 훼손상태를 정밀 진단하고 산화된 기록의 중성화를 위한 탈산처리와 원본 재질과 유사한 한지에 천연 염색한 종이를 제작하여 결실부를 보강하는 등 복원처리를 완료했다.
특히, ‘한문편지’의 경우, 전시로 인해 봉투는 해체되고 편지의 뒷면이 배접지로 가려져 변형된 상태였으나, 배접지와 접착제를 제거하여 원형의 상태로 복원함으로써 가려져 있던 부분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복원된 기록물과 원본은 국가기록원 누리집(http://www.archives.go.kr)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암살단 관련 이육사, 이원일, 조우제, 마현석 등 9명의 집행원부 기록과 이육사 친필 편지 및 육사시집 초판본의 이미지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