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이번 여러분들은 스포츠차원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대회다, 이렇게 생각해요.
이래서 여러분들은 스포츠에 선수뿐만 아니고 이 외교의 사절단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다,
이런 사명감을 여러분들 어깨에 지고 있다 라는 것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될 겁입니다."- 1990년 노태우대통령 태릉선수촌 순시 때
스포츠 선수에게 인생 최대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하면 대체로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 나가 상을 타는 것이라고들 한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다는 개인적 영광도 있겠지만, 자신의 나라 이름을 드높인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세계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 즉 국가대표선수가 되어야 한다.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스포츠선수에게는 꿈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까지는 경제적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국제대회에 나가는 일도 많지 않았고 그런 만큼 스포츠선수들에 대한 지원도 별로 없었다.
태릉선수촌은 국가를 대표할 만한 선수들을 모아서 훈련시켜 국제대회에 참가시키는 훈련기관으로 오늘날까지도 국가대표 선수들의 산실로 계속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에게 태릉선수촌은 꿈의 장소이자 자부심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태릉선수촌은 1966년 6월에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일대 99,000여㎡의 임야에 건립되었다. 일선 지도자 및 국가대표 선수의 강화훈련을 위해 만들어진 종합 선수합숙훈련장인데 대한체육회에서 지었고 관리도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우리나라 아마추어 스포츠 전체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설립 목적은 단체생활을 통한 선수의 자질향상, 선수의 영양관리, 최신설비를 통한 트레이닝의 과학화, 경기에 대한 연구와 실행의 직결, 훈련비의 절감, 일선 지도자의 교육과 최신시설의 활용 등에 있었다.
설립 당시에는 본관 2층, 숙소 4동 등 훈련시설 없이 합숙시설만 완공하였다가, 같은 해 11월에 실내체육관을 건립하였다. 1970년 3월에는 국제실내수영장을 개장하였는데 당시 국제수영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수영장이었다. 이후 태릉선수촌은 그 시설을 꾸준히 확충하였는데, 1970년대 당시 개발제한구역 내 체육관 설립을 특별히 허가받는 등 정부의 배려를 많이 받았다.
1980년대에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유치가 결정되면서 태릉선수촌의 시설 확충도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숙박시설이 확충되고 축구장과 육상 트랙이 개선되는 등 양적인 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개선을 했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는 좀 더 내실을 기해 선수들의 건강을 돌보는 의무실을 숙소에 설치하고 동계스포츠에도 관심을 보여 국제스케이트장을 설립하였다. 이로서 태릉선수촌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유일의 종합선수훈련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1988년 올림픽 유치와 함께 국가대표선수의 경기력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1984년에 경상남도 진해시에 제2의 태릉선수촌이라고 할 수 있는 진해선수촌을 준공하였다. 또 1997년 12월에는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에 대지 42,162㎡에 연건평 2,155㎡의 고지대 훈련장인 태백선수촌을 건립하여 동계스포츠선수들의 훈련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2003년에 진천선수촌을 시공하여 2011년 준공하였고, 현재는 2단계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현재 태릉선수촌은 국가대표 선수와 후보 선수의 발굴, 국가대표 선수의 체계적·과학적 훈련,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우수성적을 거두는 것을 목표로 수많은 선수들을 육성하며 국가발전과 더불어 세계를 향한 한국스포츠의 메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