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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강제동원 증명할 총독부 보고서 등 희귀 기록 일반에 공개

국가기록원, 총독부 노동력 조사통계, 김광렬 선생 수집 관련 기록 공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조선인 노동력 조사계획 총독부 기록물과 실제 동원된 노동자명부 등 희귀 기록물이 일반에 공개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원장 이소연)은 31일 1940년 조선총독부가 생산한 『노무자원 조사에 관한 건』이란 제목의 기록물 원본을 공개했다. 또, 김광렬 선생이 2017년 국가기록원에 기증한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문서와 사진, 도면 등 총 2,337권 중 일부기록의 원본도 공개했다.

김광렬 선생(金光烈, 1927∼2015)은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 수집가로 1943년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오카(福岡) 지역에서 교직생활을 했다. 고인은 40여 년 동안 일본의 3대 탄광지역이자 대표적인 조선인 강제동원지인 치쿠호(築豊) 지역을 중심으로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을 수집하고 연구한 대표적 전문가로 손꼽힌다.

이날 공개된 『노무자원 조사에 관한 건』문건에는 조선총독부가 조선 전역의 노동력을 조사하기 위해 1940년 3∼9월 각 도에 시달하고 회신 받은 공문과 취합된 통계자료가 담겨있다.

조선총독부는 각 도지사에게 1940년 3월 말을 기준으로 해당 도의 남녀별·연령별 노동력 현황을 조사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1개면()에 5명의 조사원을 투입해 <노무자원조사표>를 활용하여 과잉농가호수와 농업에서 출가(出稼) 또는 전업(轉業)이 가능한 인력 및 희망인력을 남성은 20~45세(20~30세, 31~40세, 41~45세 등 3단계로 구분), 여성은 12~19세까지 조사·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조사결과 동원 가능인력은 남자 92만7,536명, 여자 23만2,641명 등 총 116만177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 조선인 총인구 2,354만7,465명의 5%에 해당하는 것으로, 어린이와 노인, 20세 이상 여성을 제외하면 총 인구의 10%에 해당된다.

또한 전업(轉業) 희망인력은 남자 24만2,314명, 여자 2만767명 등 26만3,081명으로 산출되었다. 일제가 계획한 노무동원계획을 보면 전업 희망인력의 3배가 넘는 인원을 동원하고자 했으므로, 이는 일제의 조선인 인력동원이 강제적으로 수행되었을 것임을 알려주는 통계라고 국가기록원은 설명했다.

이 기록은 그동안 학계 연구논문으로 발표가 된 바 있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처음으로 공개된 것으로, 일제가 조선인의 강제동원을 위해 사전에 얼마나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 노무자원조사표

  • 노무자원조사서

공개된 김광렬 선생의 기증기록물은 ▲『가이지마(貝島) 오노우라(大之浦) 제6·7갱 탄광직원 명부』 원본과 관련 사진 ▲명부 수집 경위가 기록된 『김광렬 선생 일기(1976. 7.~8.)』원본 등이다.

『가이지마 오노우라 제6·7갱 탄광직원명부』는 1900~50년대 탄광직원 인적사항 등을 기록한 것으로, 총 8,486명 중 1,896명이 조선인(본적 기준)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이름, 생년월일, 본적, 호주, 가족관계, 고용연월일, 도주·사망·귀국 등 해고사유, 해고연월일 등을 담고 있어 기존 공개된 명부에는 없는 피해자가 추가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강제동원 현장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오노우라 7갱 노천갱도에서 일하는 조선인 사진 4점이 함께 공개됐다.

가이지마 오노우라 제6·7갱 탄광 직원 명부

  • 가이지마 오노우라 7갱(노천갱)에서 작업 중인 조선인 갱부

  • 가이지마 오노우라 7갱(노천갱)에서 작업중인 조선인 갱부

  • 가이지마 오노우라 7갱(노천갱)에서 작업 중인 조선인 갱부

  • 당시 노천갱 전경(만노우라 제2갱)

『김광렬 선생 일기(1976.7.~8.)』는 명부 수집을 위한 끈질긴 설득 과정, 육체적・정신적 피로, 명부를 준 탄광 노무계 직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 등 수집경위와 당시 심경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이번 자료들은 지난해 기증 당시 일부가 공개됐으나, 대부분은 관련 전문가들조차도 실체 확인이 쉽지 않았던 희귀 기록물로 피해 진상규명과 권리구제, 관련 연구 등에 귀중한 사료”라고 말했다.

한편, 국가기록원은 김광렬 선생 기증 기록물 중 강제동원 근로자명부, 건강보험대장, 공상원부 등 248권에 수록된 약 14만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의 인적사항을 연내에 국가기록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할 예정이다.

(1976.8.6. 금요일. 개임. 소나기. 개임. 밤에 비. 田川에서)
가이지마(貝島)탄광 육갱(六坑) 로무사무소로 나갔다.
어제 계속인 “순직자 명부”, “화장대장”, “광부 이로하 명부”의 사진을 찍었다. 덥고, 배가 고프고, 눈이, 허리가,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장부는 지금까지 극비에 속하며 외부에 보인적도 없는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아마 10월 이후는 불살아 버릴 것이다.
오늘도 또 남았다. 어제로써 퇴직한 OO로인은 없고 OO로인 혼자 남았다. 로인은 나에게 찬물을 내여 주고 선풍기를 돌려도 준다.
친절한 노인이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내일 다시 올 것을 알리고 돌아왔다. 피로 막심하다. 언제나 보다 한 시간 일찍 자리에 누었다.
※ 돌아올 때 로인은 장부 하나를 주면서 <이것은 나의 호의요> 하였다. 7갱의 장부였다. 또 <이것은 필요 없는 것이니>고 하였다.
나는 깊이 생각하고 감사를 드렸다.

김광렬 선생 일기(1976. 7.~8.)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이번 자료들은 지난해 기증 당시 일부가 공개됐으나, 대부분은 관련 전문가들조차도 실체 확인이 쉽지 않았던 희귀 기록물로, 피해 진상규명과 권리구제, 관련 연구 등에 귀중한 사료”라고 말했다.

한편, 국가기록원은 김광렬 선생 기증 기록물 중 강제동원 근로자명부, 건강보험대장, 공상원부 등 247권에 수록된 약 11만 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의 인적사항을 연내에 국가기록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