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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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창설이전 국제기구의 발전

국제기구의 출현

유엔의 창설과 발전은 근대 국제사회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한다. 19세기 들어 국제사회는 유럽을 중심으로 교류가 확대되고 상호의존성이 커지면서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합의점을 도출해야 할 필요성도 점차 커졌다. 특히 전쟁의 방지와 국제질서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필요성은 더욱 시급한 것이었다. 이러한 국제기구 혹은 협의체는 1815년 나폴레옹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비엔나 회의”와 “비엔나체제(유럽협조체제-The Concert of Europe)”가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비엔나체제는 나폴레옹 전쟁 이전의 상태로 다시 유럽을 되돌리는 것에 목표를 두고 그러한 상태하에서 평화를 추구한 강대국 중심의 회의체였다. 그러나 국제안보 및 평화분야의 국제기구는 이후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비해서, 경제 및 사회분야는 보다 큰 진전이 이루어졌다. 18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에 힘입어 19세기에는 통신‧교통의 발달, 무역의 증가 등으로 국가간의 접촉이 빈번해진 때문이었다. 교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라인강, 엘베강 등을 관리하기 위한 국제하천위원회들(River Commissions)이 탄생하였고 통신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1868년에 만국전기통신연합(ITB, 후에 ITU), 1874년에 만국우편엽합(GPU, 후에 UPU)이 국제공공연맹(Public Unions)의 성격으로 설치되었다. 이와 함께 각국에서 인도적, 종교적, 경제적, 과학적, 기술적 문제를 다루는 민간단체들(NGO, 비정부기구) 혹은 국제적십자사(ICRC), 국제노동기구(ILO)와 같은 반관반민(半官半民) 단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제연맹

19세기 여러 국제기구들의 탄생과 발전에 힘입어 1920년 비로소 상설 국제기구로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이 탄생하였다. 국제연맹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참화를 경험한 후, 새로운 차원에서 국제평화를 달성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국제연맹은 이사회, 총회, 사무국의 3개 기관과 국제노동기구(ILO), 상설국제사법재판소(PCIJ) 등 2개의 보조기관으로 이루어졌고, 본부는 제네바에 있었다. 그리고 이 기구는 군축, 분쟁의 평화적 해결, 집단안보, 제재, 위임통치 등의 안보문제는 물론, 노동, 여성, 아동보호, 상업의 자유, 질병통제 등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국제연맹의 이상과 목표에도 불구하고, 실제 활동과 성과에 있어서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특히 국제연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안보 장치는 일본의 만주침략(1931),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1935) 등 국제분쟁에 직면하여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고,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 한계가 명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