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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차 미ㆍ소공동위원회 개최

    제1차 미ㆍ소공동위원회 개최(미국 아놀드, 소련 슈티코프)(1957), CET0022816(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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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 총회 결의 제 112호 한국문제에 관한 UN 결의집

    「유엔 총회 결의 제 112호」 『한국문제에 관한 UN 결의집』 (1977), C11M28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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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제의 UN상정 및 총선거 결의

한국과 유엔의 인연은 1947년 미국이 한국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유엔총회에 한국문제를 제기함으로서 시작되었다. 1945년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한반도는 곧 이어 남북한으로 분단되고 미국 및 소련이 각각 남한과 북한을 관리하면서 갈등을 겪게 되었다. 남북한 문제해결을 위한 미‧소 공동위원회 활동이 무산되자, 미국은 1947년 9월 '한국독립' 문제를 제2차 유엔 정기총회에 안건으로 제출하였다. 이 안건에 대해 유엔총회 운영위원회에서 소련과 폴란드는 반대, 대만과 영국 등은 찬성하였다. 그 결과 총회는 압도적 다수로 이 건의를 채택하여, 총회 제1위원회(정치위원회, 소총회)에서 토의, 보고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10월 28일부터 유엔에서 미국의 주도로 한국 문제가 본격적으로 토의되자, 소련은 미국의 노력에 제동을 걸었다. 소련은 미국의 논의 제안이 '불법'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오히려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즉 9월 26일 미‧소공동위원회 소련대표를 통하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군대가 1948년 초에 동시에 철수할 것을 제안하였다.

소련의 제안에 대응하여 미국은 10월 17일 총회 정치위원회에 새로운 수정초안을 제시하였다. 즉, 미국은 1948년 3월 31일 이전에 양 점령 지구에서 점령군 주관 하에 선거를 실시할 것과 유엔임시위원단이 이 선거를 감시하여 총회에 보고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제안에 맞서서 소련은 외국군 철수에 관한 결의안을 총회에 제출하였으나, 소련의 초안은 정치위원회와 총회 본회의에서도 대다수 반대로 부결되었다. 그러자 소련은 총회의 한국문제 토의에 한국대표의 참석문제를 제안하였다. 한국문제는 해당관련 국민의 참가 없이는 올바로 해결될 수 없다는 이유로 남북한 국민대표를 초청, 참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에 대하여 유엔총회가 한국민을 대표하는 인사들을 선임하는 것은 불가능함으로 그것을 위해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설립을 제안하였다. 결국 정치위원회는 10월 30일 제91차 회의에서 미국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11월 4일 정치위원회에서 미국이 수정 초안을 제출, 채택되었고, 11월 14일 유엔총회는 정치위원회 결의를 기초로 유엔감시하의 '남북 총선거안'을 결의 안 제112호로서 채택(찬성 43 반대 0, 기권6)하였다. 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인구비례에 따른 비밀투표로 선거를 1948년 3월 31일 이전에 실시, 제헌의회의 구성과 이들에 의한 국회구성 및 헌법제정,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설치, 그리고 점령국들과 90일 이내에 철군문제를 협의하는 것이었다.

  • 8.15당시 복사사진

    8.15당시 복사사진(1954), CET001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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