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복구와 경제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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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과 UN 국제아동긴급원호재단과의 원조협정 비준에 관한 건

    대한민국과 UN 국제아동긴급원호재단과의
    원조협정 비준에 관한 건(1951), AA00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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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경제원조 계획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 한국재건단의 협약

    한국 경제원조 계획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 한국재건단의 협약(1954), BA0028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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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터 운크라 단장 및 백두진 국무총리 한국운크라 원조 조인식 참석

    콜터 운크라 단장 및
    백두진 국무총리
    한국운크라 원조 조인식 참석(1953), CET003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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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헌장 공포의 건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헌장 공포의 건
    (조약 제26호)(1956), AA0003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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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교과서 인쇄공장, 1954, CZT0000333

    새로운 교과서 인쇄공장, (1954), DTC000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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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어업 복구 후원, 1955 CZT0000335

    한국의 어업 복구 후원, (1955), DTC0000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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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직업훈련학교 1956, CZT0000336

    서울직업훈련학교 (1956), DTC000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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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맹퇴치 재생

    문맹퇴치(1965), CEN000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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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유네스코 활동사진

    한국 유네스코 활동사(1954~1975)(1976), C11M10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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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복구와 재건기

유엔의 다양한 재건활동은 전쟁 휴전 후 1950년대 말까지 지속되어 한국의 전후복구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당시 원조는 한국과 미국간의 양자간 원조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적십자사를 비롯한 비정부기구(NGO)와 함께 유엔기구들도 인도적‧경제적 지원을 통하여 한국의 재건 그리고 발전에 기여하였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광복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총 약 127억 달러에 이르는 원조를 받았다고 한다. 이중 무상원조의 70% 정도가 45년부터 6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발판으로 한국은 전후복구와 경제재건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긴급구호기구의 설치와 활동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과 유엔한국재건단(UNKRA)을 설치하여 복구사업에 착수하였다. 또한 유엔군은 한국민간구호계획(CRIK)을 통하여, 전쟁중 긴급구호를 실시하였다. 이 기관들의 주도와 인도적 국제 비정부기구(NGO)의 협력으로 전쟁 기간중 난민보호, 의료‧구호사업, 식량배급 등 인도적 지원활동이 가능했다.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은 1950년 10월 조직되었고 통일한국의 건설과 민간구호를 목적으로 하였다. 이 기구는 전쟁 중의 긴급구호 및 재건 방안을 강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한편 한국민간구호계획은 전쟁 참전국과 세계보건기구, 유엔아동기금, 적십자사, 세계교회봉사단 등이 참여한 기구였다. 이 단체는 1951년부터 전란 피해자에 대한 긴급구호를 위해 식료품, 의류, 의약품 등 다양한 구호물자를 제공하였다. 1956년까지 이 단체는 약 4억6천만 달러에 달하는 물자를 지원하였는데 자금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제공되었다.

유엔한국재건단(UNKRA)은 1950년 12월 유엔총회의 결의에 의해 설치된 기구였다. 재건단은 1953년부터 사업을 추진하여, 1954년 5월 「한국경제원조계획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재건단과의 협약」을 체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재정은 회원국이 각출한 7천만 달러의 기금으로 출발했는데 1960년까지 약 1억 2천만 달러 이상을 원조하였다. 이 기구는 특히 구호물자의 조달과 함께 산업, 교통, 통신시설 및 주택, 의료, 교육시설 등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부상병과 민간환자의 치료 및 의사와 의료요원의 훈련, 양성을 위하여 국립의료원 건립을 지원하였으며,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한편, 유엔은 전후 복구사업과 함께 경제재건을 위한 계획수립에 돌입, 1953년부터 5개년 동안의 경제재건계획을 수립하였다. 주요 내용은 국민총생산 40%증가, 전력공급 3배 수준 확대, 주택재건 60만호 건설 등이었다.

유엔 산하 전문기구의 활동

전쟁중, 그리고 전쟁후의 복구사업에서 여러 유엔산하기구들의 활동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유엔아동기금(UNICEF)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였다고 할 수 있다. 유엔아동기금은 1948년 한국정부의 수립 직후부터 한국 어린이들의 실태에 관한 기초조사를 하는 등 유엔기구로서는 제일 먼저 한국을 지원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아동과 여성을 위한 긴급구호사업을 전개, 피난민들에게 식량제공, 전염병 방지를 위한 예방접종을 실시하였고, 민간단체들과 협력하여 부산 등 피난지에 분유, 담요, 의류 등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경우, 한국이 6.25전쟁 직전인 1950년 6월 14일에 가입하였는데, 전쟁이 나자 곧바로 한국을 지원하였다. 유네스코의 주요 지원사업은 교육분야였는데 우선적으로 추진된 것은 1951년 6월 한국재건단(UNKRA)과 공동으로 교과서 인쇄공장(후일, '국정교과서주식회사')을 설립하는 일이었다. 이후 1952년 9월 공동교육사절단을 파견하여, 「한국의 교육재건」이라는 보고서를 발간, 교육재건사업의 정책방향을 가다듬기도 하였다. 그 후에는 전후복구를 위한 각종 학교의 설립을 추진하였다. 외국어 교육을 위해 서울대학교에 한국외국어학원을 설치하였으며, 1954년에는 '신생활교육원'을 설립, 농촌지도자 양성에도 힘썼다. 또한 광주‧목포‧서울‧부산‧대전에 직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기술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하여 유네스코는 전쟁 후 한국의 교육재건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 국제연합 한국재건단 양곡도입 관계자 연설

    국제연합 한국재건단
    양곡도입 관계자 연설(1953), CET004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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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의대병원재건(파견된 스위스 출신 의사의 강의 모습) (1954), CZT0000334

    대구의대병원재건
    (파견된 스위스 출신 의사의 강의 모습) (1954), DTC000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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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터 운크라단장 인천 판유리공장 준공식 참석 연설

    콜터 운크라단장 인천
    판유리공장 준공식 참석 연설(1957), CET0030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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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발족식

    유네스코발족식(1954), CET0047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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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유네스코위원회 설치령(안)

    한국유네스코위원회
    설치령(안)(1953), BA0085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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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에서 학용품 기증 재생

    유네스코에서 학용품
    기증(1954), CEN000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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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회관 준공기념식

    유네스코 회관
    준공기념식(1967), CET005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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