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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부정선거

역사속으로,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

3.15부정선거 기획과 시행

사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거행되었던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도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경찰이 여당 후보의 득표를 위해 선거에 개입하였고, 야당 후보에 대한 테러와 억압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3·15 부정선거는 이전의 선거 부정과 달리 사전 계획에 의해 자행되었다. 재판기록에 의하면, 최인규가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던 1959년 3월부터 부정선거에 대한 기획과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최인규 내무장관 임명 직후 국방, 내무, 재무, 법무, 농림, 체신부 장관으로 구성된 6인위원회가 만들어져 다가올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 대비했다.

기획과시행

최인규는 내무부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모든 공무원들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며, 차기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자가 당선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훈시는 매월 내무부 전체 직원의 참여 하에 진행되는 월례조회석상에서 반복되었고, 장관의 빈번한 지방 순시 때에도 반복되었다. 최인규 장관과 이강학 치안국장은 국무회의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각 지방 도경찰국 사찰과장 및 경찰서장, 군수, 시장, 구청장을 지역별로 10명 내지 20명씩 내무부로 불러 부정선거 준비를 독려했다.
편 자유당에서는 기획위원회가 부정선거 준비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자유당 기획위원회는 1959년 9월부터 동당 당무위원회로부터 선거자금 조달 임무를 인계받았다.

기획위원회 위원장 한희석은 자유당 정·부통령선거대책위원장을 겸직하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자유당은 효율적인 자금모집과 관리를 위해 이전의 관행과는 달리 자유당 지방지부와 지방관서에서 선거자금을 모집하는 것은 금지했다.
선거자금은 주로 여당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경찰과 공무원들에게 뿌려졌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1960년 2월 반도호텔 809호실에서 내무부 장관 최인규, 치안국장 이강국, 자유당 총무위원장 박용익은 선거자금 11억 환을 각 경찰조직에 배포했다. 서울특별시 및 각도 내무국장 10명에게는 2백만 환, 각 시장에게는 70만환, 군수에게는 1백만 환에서 70만환, 읍장 및 면장에게는 2만환씩 교부되었다. 한편 최인규와 한희석은 1억8천만 환을 반공청년단 단장 신도환에게 단비명목으로 교부했다.

1959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된 부정선거의 기획은 광범위하고 구체적이었다. 부정선거에서 사용된 가장 핵심적인 수단은 4할 사전선거였다. 이는 선거인 명부를 허위기재하거나 유령유권자를 만들고 나아가 유권자를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투표용지를 미리 빼돌리는 것이었다. 그 밖에 3인조 9인조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이 사전에 준비, 계획되었다. 최인규 내무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공무원도 근무시간 이외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설사 위법이라 하더라도 자신은 처벌하지 않겠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한편 2월 13일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통령은 꼭 동일정당에서 나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당선되어도 따르지 않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기획과시행

홍석률(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