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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총설 배경 조선총독부 관사-1. 설립위치  
배경 다쓰노 긴코의통감관저계획 배경 조선총독부 관사-2. 공간적 특징  
배경 통감부관사 배경 조선총독부 관사-3. 지방행정기관 관사  
배경 총독관저 배경 조선총독부 관사-4. 창성정아파트  
배경 총설
 관사로 분류된 일제시기 건축도면은 모두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및 유관기관의 관리들을 위해 지어진 주택 도면들이다. 이러한 관사 도면은 현재 국가기록원에 모두 1,442매가 소장되어 있으나, 도면의 제목이 자세하지 못하여 그 지어진 위치나 시기를 알 수 없는 도면들이 대부분이며, 상세한 내용은 아래의 표에 기재하였다.

번호 시설명 도면수 해제문
1 통감관저 31 다쓰노 긴코의 통감관저 계획
2 각종 통감부 관사 112 통감부관사
3 용산총독관저 48 총독관저
4 총독관저 23
5 경무대총독관저 7
6 정무총감관저 22 조선총독부 관사- 1.설립과 위치
조선총독부 관사- 2.공간적 특징
조선총독부 관사- 3.지방행정기관 관사
조선총독부 관사- 4.창성정 아파트
7 조선총독부 관사 / 대용관사 566
8 지방행정기관 관사 224
9 공공기관 관사 390
10 미상 19
총계 1,442 7

 따라서 단일 시설에 대한 도면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통감관저’, ‘총독관저’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해제를 서술하였으며, 나머지 관사는 시대에 따라 1910년 이전의 ‘통감부관사’와 이후의 ‘조선총독부 관사’로 나누어 분류하고, ‘조선총독부 관사’에 대해서는 소장도면들을 활용하여 세부 주제에 대한 해제를 수행하였다.

 1906년 통감부의 설치로 국내에 대거 일본인 관리가 등용되면서, 이들을 위한 관사(官舍)가 대량으로 지어졌으며 탁지부 건축소(度支部 建築所)의 설립으로 더욱 본격화되었다.
탁지부 건축소의 설치 이후 1910년까지 수행한 공사의 건수를 보면, 관사 및 제 숙사(諸宿舍)의 비율이 83%로 가장 높아 당시 일제가 관사의 건설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1910년 이후 일본인들의 통치 기구가 정비되면서, 관리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관사의 건설은 더욱 급속히 진행되었는데, 경성부(京城府)의 경우 1919년에는 관사의 수가 1,290호에 달하였고, 1923년에는 각종 관사 1,880호와 회사 사택 1,332호를 합쳐 그 건평이 62,141평에 달하였다고 한다. 당시 경성부는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심각한 주택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관사의 대량 보급은 주택 보급 안정화에도 기여를 하였다. 1921년에 신축된 주택 1,495채 중 관사가 417채로 전체 신축 주택의 약 28%에 달하였다.

 또한 일제시기 한반도 내에 대량으로 지어졌던 조선총독부 관사는 그 거주자의 관등에 따라 상이한 규모와 공간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소장 도면들 중에도 칙임관(勅任官), 주임관(奏任官), 판임관(判任官) 등 관등명이 기재된 관사 도면들이 다수 있어, 관등과 규모에 따라 관사 계획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총독부 관사는 직급과 관등에 따라 그 규모와 설치되는 실의 종류 등에서는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특징도 가지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한·양·일(漢·洋·日) 절충식 공간 구성’이다. 즉, 일본인들을 위한 일본 전래의 주거 형식과 근대기 서구에서 도입된 서구적 공간, 그리고 한국의 기후 등에 적응하기 위한 한국 전통적 공간 특징이 모두 한 주택 내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세 가지 속성은 한 주택 내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되어 사용되는데, 양식 공간은 주로 집 전면의 일부에 응접실, 식당, 서재 등의 공적 공간으로 사용되며, 일식 공간은 나머지 일반 생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실내의 일부 방에는 ‘온돌(溫突)’이라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추운 한국의 겨울에 적응하기 위해서 전래의 온돌 설비를 채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