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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 서울의 봄, 그리고 광주
  • 화려한 휴가
  • 가자, 도청으로
  • 님을 위한 행진곡
  • 살아오는 광주

그날의 기억 그리고 기록 언론 다시보기 동영상 기록물 일반 기록물 5·18 기념재단

님을 위한 행진곡

5월 동지 뜨거운 맹세, 함성 여러분 우리는 저들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냥 도청을 비워주게 되면 우리가 싸워온 그동안의 투쟁은 헛수고가 되고, 수없이 죽어간 영령들과 역사 앞에 죄인이 됩니다.

아! 윤상원

이 새벽을 넘기면 반드시 아침이 온다.
1980년 5월 25일 계엄군이 무조건 무기반납을 요구하자, 윤상원은 무기반납을 반대하면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했다.
5월 27일 새벽 1시 계엄군이 도청에 진입하자, 새벽 3시 무렵 윤상원은 무기고 앞에서 무기를 나누어주며 마지막 연설을 했다.
“여러분 우리는 저들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냥 도청을 비워주게 되면 우리가 싸워온 그 동안의 투쟁은 헛수고가 되고, 수없이 죽어간 영령들과 역사 앞에 죄인이 됩니다.
……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 이 새벽을 넘기면 반드시 아침이 옵니다.”

관을 뒤로 하고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있고, 뒷줄에는 이장작업을 하고 있는 사진

윤상원은 1980년 5월 28일 시청 청소차에 실려 망월시립묘역에 가매장되었다. ‘관번호 57, 검안번호 4-1, 묘지번호 111'이다.
1982년 2월 20일, 들불 야학 시절 먼저 세상을 떠났던 박기순 열사와 영혼 결혼식 거행. 이때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바쳐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 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비어있는 책상위에 헌화가 있는 사진

‘민주 학원의 새벽 기관차', 박관현

박관현은 ‘민주학원의 새벽기관차'로 나서며 윤상원의 양복에 구두까지 빌려 신고 전남대 총학생회 선거운동을 벌였고 압도적인 지지표를 얻어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박관현은 피신생활에서 검거된 뒤 단식 40일의 처절한 옥중투쟁으로 그의 청춘을 마감하면서 항쟁 동안 자신이 거기에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적극적 회한을 드러냈다.

집필자 <경희대학교 사학과, 김종원교수>